[쿠키뉴스 경주=김희정 기자] 경주 보문단지에서 불국사 가는 길에 경주민속공예촌이 있다. 토함산 자락에 약 2만평(6만6116㎡)으로 꾸며놓은 민속공예촌은 입구부터 다양한 종류의 공방들이 줄지어 있다. 1991년 대한민국 토기 명장으로 선정된 배용석 작가의 작품과 소박한 작업실도 그곳에 있다.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토기전시장은 ‘보산토기공방’ 한쪽에 있다. 그의 대표 작품인 기마 인물 토기, 장경호, 불기 외에도 다양한 표정의 토우들이 전시 중이다.
섬세한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 작품은 토굴에서 금방 꺼낸 신라 토기처럼 생명의 온기가 느껴진다. 삶의 지난한 굴곡을 보내고 이제는 평온을 찾은 장인의 미소처럼 순박한 신라 토기는 보면 볼수록 정겹다.
◆ 50년 세월 함께한 가마인물 토기
공방에 관람객들이 오면 그는 1300여 종의 토기 작품 중 장경호, 불기, 토우, 영락잔, 오리 모양의 압형 토기, 서수형 토기 등을 보여주며 신라 토기의 역사와 특징을 꼼꼼하게 설명해준다.
민속공예촌 조성 당시부터 입주해 작업해온 그는 기마인물 토기만 50년이 넘도록 만들었다. 그와 평생을 함께한 물레는 골동품이 됐지만 지금도 품격 있는 신라 토기를 빚어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신라 토기 중에서 기마 인물상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그는 신라 토기의 재현과 완성에 평생을 바쳤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토기에 맞는 흙을 찾아내고 몇 천도의 불을 다스려 흙의 성정을 깨닫는데 20년이라는 세월을 쏟아 부었지요.”
그가 찾아낸 영천 봉정의 흙은 1300도의 온도에서도 터지지 않고 내남 노곡의 흙은 산소와 탄소가 결합해 검은 색을 내기 좋으며, 안강 노당의 흙은 접착력이 좋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흙을 찾아다닌 10년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고 했다.
토기 장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묵직하게 느껴지는 말이다.
부여와 진주, 공주, 마산 등 전국의 국립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신라 토기는 물론 백제와 가야 토기에 대한 연구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토기를 만들 때도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하고 생활상을 알아야 제대로 토기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치열한 연구 끝에 신라 토기의 비밀도 알아냈다.
“오직 소나무로 불을 지피고 천천히 열을 가하면서 1300~1700도의 열을 넘겨야 원형에 가까운 토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또 소나무의 높은 열로 생긴 재가 자연유약 역할을 해 검은 색을 만들어낸다는 것과 소나무 장작으로 구워야 산소와 탄소가 그릇에 배어 토기의 장점이 살아난다는 것도 알았죠.”
그래서 토기 옹기에 고추장, 된장 등을 넣어두면 맛이 변하지 않을뿐더러 맛이 더 깊어진다고 했다. 그는 물 한잔을 마셔도 토기 잔에 마셔야 물맛이 좋아진다고 말한다.
“신라 토기는 대단한 그릇입니다. 신라 토기에 물을 담으면 정화가 되기 때문에 물맛이 좋아지고 음식을 담아도 음식 맛이 변하지 않아요. 오로지 흙과 불이 만들어낸 순수한 이로움 덕분입니다.”
◆ 신라 토기는 내 삶의 운명
신라 토기를 만들며 신라인들의 지혜로움에 감탄한다는 그의 토기사랑은 가마 속 온도보다 뜨겁다.
좁은 작업실 안에서 이뤄지는 장인의 작업은 치열하다. 오랜 세월 토기를 만들다 보니 토기 속으로 들어가는 손과 팔도 토기를 만드는 것에 익숙하게 굽어졌다.
전통 물레가 빙글빙글 돌아가면, 그의 손끝에서 흙 반죽의 변화무쌍한 작업이 시작된다. 예전엔 새벽부터 종일 작업했지만, 이제는 컨디션을 조절하며 일한다.
장경호에 문양을 그려 넣거나 토우를 만들어 항아리에 붙이는 등 정교한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속세의 근심도 모두 잊는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물레에서 오롯이 탄생하는 토기를 바라보는 장인의 눈빛은 평화롭고 잔잔하다. 말랑한 흙을 만져 물레를 돌리는 동안 삶의 고단한 무게도 창작의 고뇌도 사라지고 토기의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널리 알리고픈 장인의 꿈만 남는다.
그가 아버지 옹기 공장 마당에서 조물조물 뭔가 만들었을 때부터 흙 반죽은 이미 신라 토우와 닮아있었을지도 모른다.
“신라 토기는 제 삶에 운명처럼 다가왔습니다.”
신라 토기 명장, 배용석 작가는 회상하듯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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