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정시 강화는 공정한 해결책인가?

수능 정시 강화는 공정한 해결책인가?

기사승인 2017-06-07 16:33:53 업데이트 2017-06-07 16:33:56

누구나 공정함을 원한다. 특히 대학입학이 인생의 많은 것을 좌우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에서 입시의 공정함이 갖는 중요성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EBS 다큐프라임 <대학입시의 진실>은 반복해서 현행 입시제도 중 학생부 종합전형의 불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학생부 종합전형은 왜 불공정한가?

방송에서는 무엇보다 정보가 불공정하게 주어진다는 점을 지적한다. 소득이 높아 사교육을 이용할 수 있고, 부모의 배경이 좋은 경우 더 많은 고급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이는 입시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주장이다. 물론 사교육업자들의 홍보성 주장이나 부모들의 카더라 통신에 의해 부풀려진 면이 많지만 과거 입시제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해진 전형은 부모들에게 혼란과 부담을 안겨주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교사들 역시 아직은 학생부 작성에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고, 지나친 업무 부담 때문에 학생부 작성에 들이는 시간이 충분치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사교육 업자나 열성 부모들이 끼어들 여지가 있고 결국 불공정하다고 의심 받을만한 상황이 되고 만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그저 학생부 종합전형을 없애면 되는 것일까? 만들어진지 몇 년 되지 않아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은 제도를 다시 관 속에 넣어 없애고 과거로 돌아가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방송에서는 제도를 보완하고 문제점을 해결할 방법은 찾지 않는다. 그저 ‘불공정한 제도, 비윤리적 행위를 유발하는 제도’라고 딱지를 붙이고 폐기 처분하자고 몰고 간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역동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첫발을 떼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학생부 종합전형이 아닌 다른 입시 전형은 문제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일까? 이번 글에선 다른 입시 전형이 지난 문제점을 살펴보려 한다. 다른 전형의 문제를 살펴보는 이유는 그들 전형을 없애자는 주장은 아니다. 모든 전형이 나름의 문제를 지니고 있으며 해결할 과제도 갖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아직은 전 국민이 안심하고 채택할만한 완벽한 입시제도는 없다.

우선 학생부 교과전형을 먼저 살펴보자. 학생부 교과전형은 순수하게 교과내신 성적만으로 뽑거나 교과내신으로 선발한 후 수능최저등급을 확인해 합격을 확정하는 방법이다. 수능최저등급이 아주 높은 경우 엄밀한 의미에서 학생부 전형이라 하기는 어렵다.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받을 아이를 미리 선발하기 위한 방법으로도 볼 수 있다. 어쨌든 현행 학생부 교과전형은 상대 평가에 기반하고 있다. 내신 상대 평가로 모든 아이의 대학 입학이 결정된다면 아이들은 교실 내에서 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이 경쟁은 상대를 끌어내려야 내가 이긴다. 어차피 함께 잘할 수는 없다. 교실을 전쟁터로 만들다보니 교육은 엉망이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내신 절대평가를 도입하자는 의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입시의 공정성에 대한 EBS의 문제 제기는 타당하다. 입시라는 중요한 경험에서 아이들이 불공정을 느낀다면 그 상처는 오래 가기 마련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 교육 주체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입시의 공정성을 확보하려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EBS 다큐프라임 팀의 문제의식은 거기서 엉뚱하게 한발 더 내딛는다. 학생부 종합 전형이 불공정의 주된 원인이기에 수능 위주의 전형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암시한다. 그렇게 불공정을 줄여야 격차 사회로의 진행을 막을 수 있고 사회의 불평등을 줄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던, 지금보다는 공정했던 입시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친다.

그런데 내신 절대평가 역시 시행된 적도 없지만 비판을 받고 있다. 비판론자들은 학교가 비윤리적으로 성적을 과대포장하면 막을 수 있겠냐고 지적한다. 고등학교들이 정직하게 내신 점수를 산정할 것인가 하는 공정성 문제는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특목고, 자사고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제도라는 비판도 있다. 상당히 타당성이 있는 얘기다. 대학은 변별력이 부족하니 내신만으로는 곤란하다고 고개를 젓고 학생들은 모든 과목을 빠짐없이 잘 해야 대학을 갈 수 있다면 너무 힘들다고 호소한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조금 다른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는 호소도 있고 한번 삐끗해서 시험을 망치면 자퇴 밖에는 답이 없어 자퇴가 늘 것이란 예측도 있다. 쉽지 않다.

수능시험 위주의 정시 전형도 문제가 있다. 고등학교를 학력고사 내지 수학능력시험으로 묶어 놓으면 고등학교 교육은 황폐화된다. 대학입시라는 블랙홀이 버티고 있는 한 학교는 암기와 문제풀이 기관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수업은 수능시험에 나오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교사들의 자율적인 수업 진행이나 아이들의 수업 참여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 교육은 오랫동안 이런 굴레에 사로잡혀 있었다. 교육의 혁신은 이뤄지기 어려웠고 아이들은 자신이 보내는 3년이라는 시간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물어왔다. 무려 31년 전인 1986년, 한 아이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며 목숨을 버렸다. 그런데 오늘 날도 비슷한 자살은 이어지고 있다. 엊그제 6월 모의평가를 마치고 한 아이가 목숨을 끊었다. 안타까운 죽음들 앞에 우리는 여전히 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만 묻는 것이 아니다. 대학도, 산업현장도 창의성 있는 인재, 자율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한 인재가 필요한데 언제까지 고리타분한 암기 위주 공부만 할 것이냐고 질문하고 있다. 학생부 종합 전형이 나온 배경에는 어떻게든 교실을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이 들어있다. 방송에서도 한 고등학교 교사가 이야기한다. 학생부 종합 전형이 그래도 학교를 살린다는 관점에서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입시보다 긍정적이라고. 물론 학생부 종합 전형을 시행하며 여러 가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그 문제들 역시 무시할 문제는 아니다.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공정성이라는 한 가지 가치를 위해 교실이 계속 죽은 교육의 현장으로 머무는 상황을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시험을 잘 치기 위한 교육이라면 학교가 사교육 기관을 이길 수 없다. 사교육기관은 모든 거추장스러운 것을 버리고 오직 시험, 오직 높은 점수를 얻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 사교육 기관의 입장에서는 혁신이 곧 돈이기에 더 나은 교수법, 암기법, 더 철저한 학생 관리에 집중하기 마련이고 이를 공교육이 따라잡기란 어렵다. 공교육에 수업 능력이 뛰어난 교사가 나온다고 해도 사교육은 걱정하지 않는다. 고액을 들여 스카우트를 시도한다. 수업 준비만 해도 기업적인 마인드로 무장하여 유머 코드까지 계산하며 수업을 하나의 쇼로 만들어 낸다.

학생부 전형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동시에 나오는 이야기가 ‘쉬운 수능’이다. 영어 절대평가가 올해 실시되고 다른 과목도 절대평가를 늦출 수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실은 학생부 전형이 입시의 중심에 놓이면서 '쉬운 수능'이 가능해졌다. 만약 학생부 전형 없이 수능 하나로만 대입을 치른다면 수능이 쉬워서는 곤란하다. 변별력을 만들려면 수능은 어려워야 하고 갈수록 어려워져야 한다. 과거 30년 전 학력고사 시절, 서울대학교 상위권 학과에 합격하기 위한 커트라인은 100점 환산 90점 정도였다. 지금 서울대학교 상위권 학과를 합격하려면 100점 환산 98점 이상을 맞아야 한다. 그렇다고 시험 문제가 쉬워졌나? 당장 수능 영어시험지를 펴보면 안다. 과거 학력고사 시절 영어시험에 비해 훨씬 어렵다. 그럼에도 아이들의 점수는 높아졌다. 1개 틀리면 2등급으로 내려갈 수 있어 (즉, 만점이 4%가 넘는다는 말) 벌벌 떤다. 틀리지 않으려고 상위권 아이들은 샅샅이 구석구석을 공부하고 실수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불안에 시달린다. 정시 전형 중심으로 입시를 진행하면 수능은 갈수록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예전에 과외가 금지되었던 태평성대가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조기교육으로 단련되고, 사교육으로 무장한 아이들이 입시라는 전쟁터에서 격전을 치루고 있다.

형식적 공정성과 사회적 정의는 이어지지 않는다. 방송에서 계속 주장한 정보의 불균형은 학생부 때문에 생기는 것만도 아니다. 시험으로 당락을 결정해도 어느 분야에서 출제가 될지, 난이도는 어떨지, 문제 유형은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한 정보는 불균형하게 분배될 것이다. 과거 학력고사 시절에도 족집게 고액 과외가 있었고 문제가 되곤 했다. 과외 금지 시대에도 강남에서는 과외가 흥했고 가끔 신문 사회면을 장식하곤 했다.

이젠 더 이상 과외 금지 시대도 아니다. 방송에서는 사교육 업자의 발만 보여주는 몰래카메라 영상이 나온다. 사교육 업자는 은밀하게 말한다. 우리는 어느 학교의 어느 교수가 사정관으로 참여하고, 그 교수는 무엇을 중요시 여긴다는 정보를 갖고 있다고. 그 정보를 알면 그 학교에 확실히 붙을 수 있다고. 과연 그 정보가 사실일지도 확인할 수 없지만 (이런 자극적 정보를 확인도 없이 내보내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사실이라고 해보자. 그럼 단판의 시험으로 승부하면 이 상황이 해결될 수 있을까?

상상력을 발휘해본다. 정시 전형을 전면화하면 강남 어느 곳의 고액 사교육 시장에선 이런 이야기가 나돌지 모른다. ‘이번에 누가 수능 출제위원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이 평소 전공분야는 이쪽이다. 검토위원으로 들어간 고등학교 교사가 학교에서 냈던 문제가 이런 문제다. 교육과정평가원의 정보원에 의하면 올해 출제의 방향성은 이쪽이다. 평가원에 있는 해당 과목 연구원이 올해 낸 논문이 이쪽에 있다. 요즘 대학교수들이 관심을 쏟는 분야는 이 방면이어서 이 단원을 집중해서 파야한다.’ 이런 사교육 업자의 말이 맞던 맞지 않던 그 정보를 비싼 돈으로 거래하는 사람은 존재할 것이다. 그런 정보를 들을 수 있는 학원은 인기를 끌 것이다. 현재 사교육시장의 수준이라면 이 정도 작업은 잘 해낼 능력이 있다. 시험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한두 문제로 승부가 갈린다면 정보의 가치는 크고 가격은 비싸게 매겨질 것이다. 결국 그 때도 많은 사람들은 정보의 불균형을 탓하고,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원망할 것이다.

방송은 마무리에 이런 말을 남긴다. 입시 제도의 변화가 공정하고 역동성이 있는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 될 수 있다고. 정말 그렇게 믿는 것일까? 공정성도 중요하고, 사회의 역동성도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그 두 가지는 입시 제도의 변화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송에는 지금 우리 교육이 갖고 있는 온갖 문제, 부모들이 당면하고 있는 엄청난 불안이 나열된다. 배경음악은 고음을 내며 긴장을 유발하고 인터뷰들은 자극적이다. 모두 심각한 문제고 우리 모두가 진지하게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이슈다. 그런데 방송은 그저 하나의 결론으로만 시청자를 이끈다. 일단은 입시 제도의 공정성을 확보하자고. 정보의 불균형을 줄이기 위해선 단판 승부의 시험으로 승부하는 것이 공정성를 확보할 수 있다고. 그래야 교육이 소득 격차를 더 벌리지 않고 사회의 역동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나 역시 소망한다. 전 세계가 골머리를 앓는 격차사회의 심화에 대한 이렇게 쉽고 간단한 해결책이 있기를. 또 나는 소망한다. 이런 허술한 논리에 기대어 잠시라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길. 그리고 정말 소망하는데, EBS가 수능교재 판매라는 사업적 이득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정시 옹호 논리를 편다는 세간의 의혹은 그저 억측에 불과하길 바란다. 나는 적어도 EBS와 제작진이 그 정도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함께 진지하게 문제를 들여다보며 좋은 해결책을 찾아갔으면 싶다. 입시 제도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정보의 불균형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학생부가 엉터리로 작성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하고 어떤 고3 담임교사를 만나는지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격차 사회로의 진행을 막기 위해 지금 우리가 채택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정책이 무엇인지도 합의가 필요하다. 입시 정책이든, 학교 정책이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격차 사회는 정말 큰 문제이고 국민의 희망을 무너뜨리고 사회적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다.

물론 단순한 해결책으론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다. 단순하게 해결될 일이라면 벌써 해결되었을 것이다. 작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복잡하고 섬세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 한번 해결책을 찾는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끊임없이 따라잡으며 업데이트를 해서 최적화해야 유지된다. 문제를 드러내는 것은 좋다. 하지만 거기서 그치면 곤란하다. 사회적 논의의 수준을 높여 제대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영수 기자
juny@kukinews.com
이영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