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이준범 기자] KBS2 수목드라마 ‘7일의 왕비’가 다룬 이야기는 조선 역사에 기록된 실제 비극이다. 단 7일 동안 왕비 자리에 앉았다가 폐비된 비운의 여인 단경왕후 신씨(박민영)와 그녀를 둘러싸고 중종(연우진)과 연산(이동건)이 벌이는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다.
그 중에서도 배우 박민영이 맡은 신채경은 비극의 핵심 인물이다. 덕분에 박민영은 드라마가 진행되는 내내 매회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감정을 쏟아냈다. 지난 7일 서울 논현로 한 카페에서 만난 박민영은 배우로서 더 성장하기 위해 힘든 줄 알면서도 도전한 작품이라고 털어놨다.
“처음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부터 연기적으로 제게 많은 압박감과 스트레스를 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이렇게까지 깊은 슬픔을 연기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죠. 예를 들면 KBS2 ‘성균관 스캔들’은 한 소녀가 인생을 살다가 벽에 부딪히거나, 여자라서 눈물을 흘리는 정도였어요. 하지만 ‘7일의 왕비’는 가족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생존 로맨스이기 때문에 이전의 감정보다 어려울 것 같았죠. 제가 그 정도 깊이를 표현해 본 적이 없어서 큰 도전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이번에 감정의 바닥을 경험한 것 같아요.”
큰 도전에는 많은 숙제가 뒤따랐다. 채경이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표현하려면 어릴 때부터의 서사와 연결고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아야 했다. 자연스럽게 대본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다른 드라마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길어졌다. 사극 특유의 긴 대사도 많았다.
“어려운 장면이 여러 개 있었는데 그 중 이역(중종)의 반정이 시작되고 저한테 찾아와서 어떻게 해야 할지 설명하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러다가 갑자기 이융(연산)이 들이닥쳐서 저 혼자 시간을 끌어야 하는 상황이었죠. 뜬금없이 ‘달이 보고 싶다’는 대사로 시작해서 8페이지 분량의 대사를 저 혼자 읊어야 했어요. 자칫하면 거짓말처럼 보일 수도 있고, 완전히 거짓말로 표현하기에는 그 안에 채경이의 진심도 있고, 또 위기를 넘기기 위한 수단이기도 한 복잡한 장면이었죠. 이 장면을 충남 부여에서 촬영했는데 내려가는 차 안에서 한숨도 못자고 대본을 잡고 있었어요. 다행히 촬영에 들어가서는 한 번의 NG도 없이 소화했어요. 끝나고 주저앉을 뻔했죠. 스트레스가 컸던 장면을 잘 끝냈다는 생각에 확 풀어진 느낌이 들었거든요.”
박민영의 작품 선택 기준 1순위는 잘 읽히는 대본이다. 그 다음에 대본을 영상화했을 때 어떤 느낌이 날지, 캐릭터는 어떨지를 상상해본다. 그 다음에 자신이 연기적으로 보여줄 것이 있는지, 배우로서 얻을 것이 있는지도 고려한다. 대신 상대 배우가 누군지를 보거나 자신의 이미지를 생각하지는 않는다. 차기작에서는 밝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을 드러냈다.
“‘7일의 왕비’를 하면서 3년 치 흘릴 눈물은 다 흘린 것 같아요. 이제는 3년 치 웃을 것 다 웃는 작품을 하고 싶어요. 예쁜 코미디가 아니어도 괜찮아요. 원래 뻔뻔한 연기나 코미디를 좋아하고 욕심이 있는데, 이상하게 진중한 역할을 계속 하다보니까 제가 코미디를 했다는 사실이 잊혀졌더라고요. 지금쯤 다시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망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요. 오히려 화장 안하고 막춤 추는 연기를 할 때가 마음이 더 편해요.”
박민영은 ‘7일의 왕비’을 돌아보며 연기 수업이라는 표현을 썼다. 시청률은 좋지 않았지만, 배우로서 힘든 도전이었고 얻은 게 많았다는 얘기였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는 점도 강조했다.
“연기 하드트레이닝을 받은 느낌이에요. 제가 작가님에게 장난으로 ’진짜 사나이‘처럼 연기 수업을 받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제 연기를 더 깊이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어서 감사해요. 제 연기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최선을 다했다는 건 당당하게 말씀드릴 수 있어요. 하루에 한 시간도 안 자면서 대본에 매달렸고, 한 번도 대본에 소홀한 적 없이 최선을 다해서 찍었어요. 그에 대한 만족도가 컸죠. 어려운 걸 해낼수록 느껴지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체력적인 고통을 이길 만큼 행복했어요. 항상 나중에 제 딸한테 보여주고 싶은 작품만 찍을 거라고 얘기했는데 ’7일의 왕비‘는 꼭 보여주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