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20대 끝자락에 골거대세포종 진단을 받았습니다. 골거대세포종이라는 병을 들어보셨나요. 골거대세포종이 바로 100만 명 당 한 명 꼴로 생기는 극희귀질환입니다.
제가 진단을 받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3년 전입니다. 저는 요리사였습니다. 요리는 체력 소모가 큰일입니다. 그래서 목뼈가 아프기 시작했을 때, 큰 키 때문에 늘 구부정한 자세로 바쁘게 일한 탓이라고 여겼습니다.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뭔가 심각한 병이 생겨서 아픈 건 아닐까 의심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저도 그랬습니다. 한의원에서 침 치료를 받으며 버텨봤지만 X-Ray를 찍은 동네 병원에서 큰 병원에 가 보라고 말했을 때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골거대세포종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제 목뼈가 아팠던 것은 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새 자라난 종양은 목뼈의 일부를 거의 으스러뜨릴 정도로 자라 있었습니다.
골거대세포종은 주로 손가락이나 발가락, 무릎과 같은 관절 부위에 생깁니다. 저처럼 목뼈에 종양이 자라는 케이스는 흔치 않다고 합니다. 골거대세포종은 수술로 종양이 잘 제거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는 병이지만 저에게 찾아온 골거대세포종은 달랐습니다.
저는 요리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수술로 종양을 떼 내고 방사선 치료를 받고, 일 년 동안을 집에서 쉬었습니다. 사회에 자리를 잡아야 할 나이에 병을 치료하기 위해 요양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했지만 잘 추스르고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 바람과 다르게 종양은 재발했습니다. 재발한 종양은 목안을 꽉 채울 정도로 커져있었습니다. 통증 때문에 하루에 삼십 분도 걷기가 힘들 정도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수술도 할 수 없었습니다. 종양을 제거하면 신경까지 제거돼 팔 한쪽을 못 쓰게 된다고 했습니다. 요리가 직업인 제게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였습니다. 만일 그 때 저처럼 수술이 불가능한 골거대세포종 환자에게 쓸 수 있는 신약이 없었더라면 저는 하루하루 자라나는 종양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봐야 했을 것입니다.
다행히 저와 같은 환자들을 위해 쓸 수 있는 신약이 나타났고, 치료 효과가 바로 나타나 종양이 더 이상 자라나지 않게 되었습니다.
희귀질환은 열에 아홉이 치료제 자체가 없다고 합니다. 0.000001%의 확률로 생기는 희귀질환에 쓸 수 있는 치료제가 개발된다는 것은 얼마나 까마득한 확률인지 모릅니다. 극소수의 골거대세포종 환자들 중에서도 약 20%는 저처럼 수술이 어려운 환자들입니다. 저와 같이 수술이 불가능한 골거대세포종 환자들에게는 이 새로 나온 신약이 사실상 유일한 희망입니다.
저는 다시 건강해져서 골거대세포종이 제게 찾아오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 치료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막막한 하루하루를 이겨내야 하는 사람은 저 혼자가 아닙니다. 소수이지만, 분명히 여러분의 주변에 있습니다.
1∙2호선이 지나는 신도림역에는 하루에만 5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닌다고 합니다. 만일 이틀 동안 만이라도 그 곳을 지나셨다면 그 중 한 사람은 저와 같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희귀질환에 고통 받고 있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겁니다.
올 여름에 정부에서 희귀질환 환자들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많은 국민들과는 무관한 이야기일겁니다. 그러나 희귀질환 환자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입니다. 그것도 언제 올지 모르는 단비입니다.
저와 같이 수술을 택할 수 없는 골거대세포종 환자들은 종양이 억제되어 무사히 병을 이겨낼 수 있기를 바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건강보험이 적용 되지 않는 신약에 의존해야하기에 경제적 부담 또한 커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극희귀질환은 누군가에게는 까마득한 확률 속 숫자이겠지만 저희 환자들에게는 당장 지금 눈앞에 펼쳐진 현실입니다. 정부의 지원이, 사회의 도움이 늦기 전에 저와 같은 극희귀질환 환자들에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울시 강지원(가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