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옥’(감독 이안규)은 제목 때문에 미옥(김혜수)을 주인공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한 명이 더 있다. 바로 상훈(이선균)이다. 이선균은 미옥을 지키고 싶은 남자 상훈으로 분해 느와르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미옥’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마주앉은 이선균은 가장 먼저 아쉬움을 표현했다. 자신이 생각했던 그림과 영화의 결과물이 다소 달라서다.
“‘미옥’은 2년 전에 찍은 작품이에요. 2년 만에 스크린에 올라갈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싶긴 하지만, 편집 방향이 제가 처음 대본을 보고 받은 느낌과는 사뭇 다르더라고요. 본래는 드라마 중심의 영화가 아니었어요. 느와르 특유의 답답하면서도 묵직한 공기가 좋아 하겠다고 했는데, 제가 움직이는 드라마 위주의 작품이 돼 버려서 아쉽죠. 다른 배우들이나 감독들도 그럴 것 같아요.”
영화는 출연 인물들의 관점마다 모두 장르가 달라진다. 미옥의 입장에서는 잔혹한 느와르지만 상훈의 입장에서는 지독한 멜로극이다.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관해 이선균은 “내게 많이 주어지는 장르나 캐릭터가 아니었기 때문에 신선했다”고 단언했다.
“제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훑어보면, 제게 어울린다 싶은 인물이 있는 반면에 ‘이걸 나한테 대체 왜 줬지?’ 싶은 캐릭터들이 있어요. 상훈은 후자였죠. 느와르라는 장르에 도전한다는 것도 의미가 있었고요. 물론 주저했던 부분도 없잖아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고사했어요. 그렇지만 고사하고 나니 ‘이런 장르가 언제 또다시 내게 주어질까?’ 싶기도 했죠. 김혜수 선배가 저보다 먼저 캐스팅됐다는 것이 제 부담감을 덜어주는 계기가 됐어요. 인물도 많은 데다가 선배가 있으니 부담감을 좀 나눠가지면 좋게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이선균에게 상훈은 ‘미옥’속 인물들 중 가장 마음이 안쓰러운 캐릭터였다고 했다. 자신이 연기해서가 아니라, 결핍이 가장 큰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선균은 상훈을 유기견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털어놨다. 한 번 버림받았다가 주인을 만났지만, 또다시 버림받을까봐 주인을 오히려 물어버리는 개.
“처음 ‘미옥’ 시나리오를 봤을 때, 가을에 개봉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잔인해도 11월에 어울리지 않나요? 장면들이 세지만 씁쓸하고, 아픈 이들의 사랑이 진하게 담겨 있잖아요. 가을의 고독함과 씁쓸함을 느끼고 싶은 사람이나,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싶은 이들이 ‘미옥’을 보면 좋겠어요.”
“최근 저 자신에 관해 모든 게 부족하다고 느꼈어요. 나이 들수록 겁 나는 일이 많아진다고 하나? 언제까지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점점 연기를 할 수록 관객들에게 믿음을 드려야 하고, 믿을 수 있는 배우가 돼야 하는데 한계가 오는 것 같아 고민이에요. 잘 늙어가면서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좋은 역할, 좋은 작품을 넘어서서 저 자체가 좋은 사람으로서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습니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