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망치한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라는 의미다. 가까운 사이의 한쪽이 망(亡)하면 다른 한쪽도 그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할 때 쓰인다.
춘추전국시대에 유래된 이 고사성어는 20세기 현대에 와서는 중국공산당이 한국전쟁에 중공군을 파견할 때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둥)은 ‘순망치한(脣亡齒寒)’이란 명분으로 400만 중공군을 참전시켰다. 미국이 북진통일을 이룰 경우 군사적 압박이 중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한쪽이 흔들리면 밀접한 관계에 있는 다른 한쪽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근 금융지주사 회장 연임 여부와 계열사 내부 역학관계도 비슷한 상황이다. 국내 금융기업은 금융지주의 컨트롤타워 아래 보험, 증권, 캐피탈 등이 종속돼 있다. 이 같은 구조는 금융지주 회장의 거취에 따라 계열사 내 임원들의 인사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회장직을 두고 금융당국(금융감독원)과 미묘한 갈등을 벌이는 하나금융지주가 이같은 사례 중 하나다.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012년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후임으로 하나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됐다. 그의 임기는 올해 3월까지다.
그는 취임 이후 이른바 김승유 사단이라고 불리는 이들을 대폭 교체했다. 2014년 임창섭 전 하나대투증권 사장, 윤용로 전 외환은행장 등이 물러났다. 이로 인해 김정태 회장과 김승유 전 회장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흘러 김정태 회장이 연임 여부가 금융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차기 회장 선출 절차를 놓고 금융당국과 갈등 중이다. 금감원은 최근 부당대출 의혹 등을 문제삼으며 하나금융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을 미뤄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하나금융 측은 곧바로 절차에 돌입했다. 이달 22일 차기 회장 후보 1명이 확정된다.
금융업계에 따르면 김정태 회장이 차기 회장 후보로 낙점될 가능성은 높다. 얼마 전 ‘금융지주사 셀프연임’ 논란이 불거질 만큼 지주회사 회장의 영향력은 어느 때보다 공고해서다.
다만 변수는 있다. 차기 회장 후보로 낙점된다고 해도 과연 정부와 금융당국의 압박에 버틸 수 있을지 관건이다. ‘왕회장’이라 불리던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도 정권이 바뀌자 직간접적 압박으로 연임을 포기한 바 있다. 또한 최흥식 금융감독원장은 18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하나금융지주 회장) 후보가 결정나면 적격성 검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태 회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문제, 아이카이스트 부실대출 의혹에 연루돼 있다. 금감원은 아이카이스트 부실대출과 관련한 검사에 들어간 상태다.
김정태 회장의 거취 여부에 따라 계열사 인사들의 연임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김정태 회장과 같은 ‘성시경(성균관대) 라인’으로 불리는 이진국 하나금융투자 사장의 연임 여부도 주목된다. 이진국 사장은 경쟁사인 신한금융투자 부사장 출신으로 김정태 회장이 직접 발탁한 인물이다.
문제는 지주회사 회장의 연임 여부가 계열사 인사까지 조정된다는 점이다. 금융투자업계 및 하나금융투자 내부 관계자는 “이진국 사장에 대한 업계 내부 평판은 나쁘지 않은 편이다. 특별한 과오도 없고, 실적도 무난하다. 다만 하나금융투자는 하나금융지주에 종속된 기업이다. 이는 개인이 극복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지주사의 경영정책이나 가치가 변해야 하는데 그것이 변하지 않으면 계열사 임원들은 뜻을 펼치기 어렵다고 본다”면서 “계열사 사장의 임명권은 회장이 갖고 있기에 회장의 의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반론도 있다. 이진국 사장은 지난 2016년 초에 사장으로 임명돼 임기 기간이 짧다는 점이다. 딱히 그가 용퇴할 만한 명분은 없다는 것이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금융지주사에는 CEO(최고경영자) 선임에 영향을 미칠 특정 대주주가 없어서 현 CEO가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로 이사회를 구성해 본인의 연임을 유리하게 한다는 논란이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또한 금융지주회사 회장의 권한이 포괄적인 반면 자회사에 대한 부당한 영향력 행사에 대한 제재는 미비하다고 봤다.
금융권 내 대대적인 개혁은 환영한다. 특히 금융지주 인사 개편이 자회사까지 여파를 미치는 구조는 개선할 필요는 있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