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아지는 ‘가계 통신비’를 잡기 위해 놓은 ‘단말기 완전자급제’라는 덫에 되려 소비자가 걸려들 가능성이 제기된다. 분리공시제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오는 6월 분리공시제가 시행된다. 분리공시제는 고객이 구매하는 단말기 지원금 중 제조사와 이동통신사 재원을 구분하는 제도다. 제조사가 이통사와 대리점에 지급하는 장려금의 규모 및 세부 내역을 파악할 수 있다.
정부는 해당 제도가 안착하면 단말기 가격이 인하될 것이라고 기대 중이다. 지원금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만큼 자연스레 업체 간 경쟁이 일어 가계통신비가 낮아질 것이란 계산이다. 또 단말기 지원금의 구체적인 내용을 소비자가 알 수 있는 만큼, 출고가 인하에 대한 여론 압박이 거세질 가능성도 있다.
업계 반응은 다소 냉담하다. 정부가 의도하는 바와 정 반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가격으로 경쟁할 경우 소비자는 더 낮은 가격에 제품을 살 수 있다. 문제는 가격 경쟁이 계속될 수록 기업들의 손해도 막심해진다는 것이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기업들끼리 가격 담합을 진행할 가능성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렇게 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가 짊어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분리공시제는 국내 시장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단말기를 판매하는 기업들에게 사업 전략을 공개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방통위가 분리공시제에 앞서 오는 5월 시행하기로 한 ‘비교공시제’도 가계 통신비 인하에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비교공시제는 국내에 출시되는 프리미엄 단말기의 해외 출고가와 비교해 알려주는 제도다. 외국보다 비싼 출시가를 꼬집기 위한 제도지만 오히려 국내 소비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출시된 삼성전자 ‘갤럭시노트8’의 경우 국내 출고가는 109만4500원이지만 미국 출고가는 1056달러(한화 113만원)이다. 한국보다 미국의 출고가가 비싼 상황에서 비교 공시제를 시행해봐야 실효성이 있을 리 만무하다.
단말기 완전자급제가 실제로 소비자들에게 단말기 가격 인하라는 결과물로 돌아갈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가계비 인하’라는 프레임에만 갇혀 있을 것이 아니라 시행하려는 제도들이 가진 파급효과에 대해서 다시금 성찰해볼 때다.
이승희 기자 aga445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