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변산’(감독 이준익)의 주인공은 노래방에서 ‘흑역사’를 생성했지만, ‘변산’ 촬영팀은 노래방에서 역사를 만들었다. 배우 및 스태프들은 촬영 중 틈만 나면 노래방을 찾아 노래를 부르고 대화를 나눴다. 영화 속 학수와 선미,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최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삼청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고은은 “촬영장 분위기가 마치 중·고등학교 동창회 같았다”고 회상했다. 떠올리기만 해도 재미있는지, 배우들과 노래방에 갔던 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배우들 각자의 성격은 뚜렷한데, 좋아하는 것의 코드가 잘 맞아 즐거운 현장이었어요. 촬영 전 처음 배우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구동성으로 ‘2차는 노래방’이라고 외치는 것을 보며 속으로 ‘대박’이라고 생각했죠. 저는 노래방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잖아요. 다들 좋아하는 덕분에 촬영 내내 노래방을 자주 찾았어요. 거의 점심식사 시간 이전에 촬영이 끝났고 이후엔 모두 모여서 놀았죠. 그 편안함이 영화에 잘 녹아든 것 같아요.”
‘변산’은 바쁘게 달려오던 7년차 배우 김고은에게도 영향을 줬다. 김고은은 ‘변산’을 촬영하며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고 털어놨다. 이전엔 자신이 겪는 어려움이나 상처 등을 민첩하게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김고은은 “예전엔 맡은 역할에 비해 부족하다고 판단해 스스로를 몰아세우던 때도 있었다”며 “힘든 순간을 부정하고 넘겨버리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제는 스스로를 다독이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영화에서 잊고 싶은 ‘흑역사’가 나오니까 그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아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저는 창피한 순간을 빨리 잊는 것 같아요. 지금까진 그게 더 편하다고 생각하며 살아 온 거죠. 슬픔이나 상처 같은 건 빨리 떨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안 좋은 부분을 치우는 식으로 치부하면 안 된다는 걸 최근에 알았어요.”
이 같은 변화는 ‘변산’을 촬영하며 숱하게 오갔던 대화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김고은은 ‘변산’을 촬영하며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이준익 감독과의 대화, 영화 자체가 가진 유쾌한 분위기가 큰 위안으로 다가왔다는 설명이다. 중학교 시절 친구처럼 서로를 놀리며 빠르게 친해진 배우들의 존재도 마찬가지다.
“‘변산’은 저에게 위로를 준 현장이에요. 이준익 감독님과 정말 많은 대화를 했는데, 감독님이 하는 말이 모두 저에겐 가르침으로 다가왔어요. 감독님은 가르치려고 하는 말이 아닌데도 그랬죠. 그리고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내가 힘든 걸 타인에게 조금은 이야기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제가 힘든 걸 굳이 남에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고 그걸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조금씩 해 버릇하려고요.”
마지막으로 김고은은 ‘변산’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위로를 주는 영화”라고 정의했다. 더불어 동창생처럼 호흡을 맞춘 배우들의 연기를 주목해서 봐달라고 강조했다.
“저와 박정민 선배뿐 아니라 여러 배우들이 나와요. 모두 연기를 정말 재미있게 잘 해주셨어요. 배우들의 연기합을 보는 재미가 분명 있을 거예요. 그리고 코미디적 요소와 감동이 거대하진 않지만 자연스럽다는 것도 ‘변산’의 장점이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내용에 따라서 보는 분의 마음도 편안하게 변할 거예요.”
‘변산’은 고향을 잊고 싶었던 무명 래퍼 학수(박정민)가 짝사랑 선미(김고은)에게 낚여 고향인 변산에 강제 소환돼, 옛 친구들을 만나며 반갑지만은 않은 사건을 겪는 이야기다. 다음달 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