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닭’, ‘빨갱이’, ‘프로불편러’…. 노동조합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은 얼추 이런 단어들로 치환될 것이다.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나순자, 이하 보건의료노조)은 국내 보건의료 분야의 블랙리스트가 있다면 모르긴 몰라도 상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을 터다. 그만큼 이들의 활동은 전방위적이고 집요하다.
이 말을 반대로 하면, 어려움을 겪은 병원 노동자가 언제고 문을 두드릴 곳이란 의미이다. 간호사를 동원해 술접대를 시키고, 몸을 더듬고, 막말과 폭언을 예사로 던지는 병원 사업자라면 보건의료노조는 저승사자와 동급이다. (그리고 이 사례는 실제 지방 소재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최근 노조는 최근 새로운 방식의 노동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반응은 아직 ‘뜨뜻 미지근’하다. 온라인 노동 운동은 거리 선전전 등 전통적인 노조 활동과는 퍽 다르게 진행됐기 때문일까? 새로운 운동의 정체는 4out 대국민청원운동이다. 이는 병원 내에서 빈번하게 자행되는 ‘공짜노동’, ‘태움 갑질’, ‘속임 인증’, ‘비정규직 정규직화’ 등을 끝내자며 시작됐다. 동시에 ‘이게 병원입니까? 의료사고 없는 안전한 병원 만들어주세요’ 제하의 청와대 청원에는 현재까지 1만6000여명의 국민들이 동참하고 있다.
청원 운동 20여일째. 이들은 운동의 중간 결과를 어떻게 판단할까. 한미정 사무처장은 “남은 열흘이 뜨거워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운동을 기획했죠. 교섭흐름을 맞추면서 시기를 결정했습니다. 조합원들 입장에선 절실한 문제이지만, 온라인 공간을 통한 참여에 다소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아요. 병원 노동자들은 신문과 뉴스도 못보고 지내는 경우도 많고요.”
궁금했다. 밀양 요양병원 화재,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 사태, 서울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등 의료기관 사건·사고가 한참 빈번할 때 청원운동이 이뤄졌으면 국민들의 참여가 더 크지 않았을까? 한 사무처장은 “조직적인 계획과 준비가 필요하다”며 고개를 저었다.
“시기 선택에 있어서 논란이 클 당시와는 아무래도 체감 온도 차이가 있겠죠. 그러나 대국민 운동은 체계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고, 시류에 편승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가란 의문도 있었죠. 이제 운동 마감까지 열흘의 시간이 남았는데, 경험상 조합원들이 막판에 불이 붙는 경향이 있어요. 앞으로 뜨거운 열흘이 될 거에요.”
온라인 정치 참여의 문턱은 아직 높았다. 박민숙 부위원장도 이 점에 대해 공감했다. “온라인 운동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설명도 쉽진 않았어요. 서울 홍대 인근에서 거리 선전전을 하니 적잖은 젊은이들이 국민청원에 이해를 못하더군요. 온라인 정치 참여의 어려움이랄까요.”
보건의료 분야의 사건·사고는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온다. 원인은 간명하다. 폐쇄적이고 수직적인 병원 문화와 만성화된 인력부족은 병원과 그 안의 구성원을 건강이나 안전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 이끌고 있다. 위험의 만성화다.
이런 위험의 퇴출을 목표로 시작된 보건의료노조의 대국민청원운동이 ‘매우 성공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실패했다고 단언키도 어렵다. 아직 운동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방대한 인터넷의 공간에서 온라인 노동 운동 역시 한 점에 지나지 않는다. 점이 모여 선이 된다. 날카로운 선이 가르는 의미는 하나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