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크라이스트처치 거리를 떠나 베일리얼 칼리지 근처를 지날 때면 창밖에 서 있는 옥스퍼드 순교자 기념탑(Martyrs' Memorial)을 만나게 된다. 16세기 영국교회 순교자를 기념하는 이 탑은 막달렌 거리(Magdalen Street)와 뷰몬트 거리(Beaumont Street)가 만나는 세인트 길레스(St Giles’) 교차로에 서 있다.
헨리8세의 욕망이 개입됐다고는 하지만, 영국교회가 로마 가톨릭교회와의 관계를 단절한 것은 당시 유럽대륙에서 몰아친 개신교 주도의 종교개혁과 궤를 같이 하는 바가 있다. 헨리8세의 사후 왕위를 이어받은 에드워드6세가 죽자, 왕위에 오른 메리여왕은 영국의 국교를 성공회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되돌리려 했다. 재위기간 동안 288명을 화형에 처해 ‘피의 여왕 메리(Bloody Queen Mary)’라는 별명을 얻은 그 메리여왕이었다.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영국 성공회는 여왕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토머스 크랜머 (Thomas Cranmer, 1489~1556) 캔터베리 대주교를 비롯해 휴 라티머 주교(Hugh Latimer 1483~1555) 그리고 니콜라스 리들리 주교(Nicholas Ridley, 1500~1555) 등 세 명의 사제는 메리여왕의 회유를 물리치고 가톨릭으로의 회귀에 끝까지 동의하지 않았다. 결국 메리 여왕은 세 사제들을 화형에 처하고 말았다. 역설적으로 이들의 순교가 있었기에 영국 성공회는 희망을 이어갈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300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서야 이들의 순교를 기리기 위한 움직임이 일었다. 조지 길버트 스캇(George Gilbert Scott)이 빅토리아 고딕양식으로 설계한 순교기념탑은 기금을 모아 2년의 공사를 거쳐 1843년 완공된 것이다. 영국 성공회의 위상을 고려한다면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11시반, 일행이 탄 버스는 옥스퍼드를 떠나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븐으로 향한다. 창밖으로는 완만하게 경사를 이룬 언덕 위로 구획정리가 잘 된 초지가 펼쳐지고, 소떼나 양떼가 풀을 뜯고 있다. 영국의 남부는 농경지도 비교적 평탄한데가 기후가 온화해 2모작이 가능하다. 주로, 밀, 보리, 유채를 심는데, 유채는 말사료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12시경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븐(Stratford upon avon) 가까운 곳에서 식사를 했다. 식당은 영국 전통의 튜더양식의 건물에 자리해있었다. 점심메뉴는 피시앤칩스(Fish&Chips)였다. 바삭한 식감이 살아있는 비교적 만족스러운 점심이었다. 사실 피시앤칩스는 영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려져 ‘영국의 요리수준은 형편없다’라는 선입견을 만든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음식은 이름대로 생선과 감자를 각각 튀겨서 한 접시에 담아내는 요리다. 주로 대구와 같은 흰살 생선을 넓게 포로 뜨고, 튀김옷을 입힌 다음 튀기면 피시가 된다. 감자 역시 두툼하게 썰어서 튀기면 칩스가 된다. 참고로, 미국에서 칩스(Chips)라고 부르는, 감자를 얇게 썰어 튀긴 것을 영국에서는 크리스피(Crisps)라고 한다.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븐은 워윅(Warwick)주에 속하는 인구 2만7000명 정도인 작은 마을이다. 런던에서 북쪽으로 146㎞떨어진 에이븐 강가에 있다. 마을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지형과 관련이 있다. 스트라트는 라틴어로 거리를 의미하는 스트라툼(Stratum)에서 왔고, 포드는 옥스퍼드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개울이 얕아서 걸어서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을 의미한다. 에이븐은 셀틱어로 강을 의미한다.
이곳도 7세기 무렵 앵글로-색슨족이 이주해 들어와 정착하면서 시작됐다. 12세기까지 와체스터(Worchester)교회가 대부분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다. 1196년 리차드1세 왕이 매주 시장을 열 수 있도록 허가하면서 교역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에이븐강을 가로지르는 클롭톤(Clopton) 다리가 교역을 활성화하는데 기여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 마을에서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 25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들도록 만든 것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왕립 셰익스피어 사가 이곳에 왕립 셰익스피어 극장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이윽고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븐에 도착했다. 금강산도 역시 식후경이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평소 같으면 인솔자를 쫓느라 바빴을 시선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정원 가운데 셰익스피어 동상이 있는 윌리엄 셰익스피어-고어 기념관을 지난다. 스코틀랜드 자유당 정치인이자, 작가며 조각가였던 로드 로날드 고어(Lord Ronald Gower)의 1888년 작품이다.
기념탑의 맨 위에는 십자형 의자의 가장자리에 셰익스피어가 앉아 있다. 등 뒤로 젖힌 왼손에 원고를 들고 있다. 그의 발아래에 동서남북의 방향으로 화환이 받쳐져있다. 원통형 기둥 아래 사각형의 좌대에는 역시 동서남북으로 4개의 청동가면이 걸려있다. 가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가면의 주제를 나타내는 동상들이 서 있는데, 모두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청동가면 옆으로는 주제와 관련된 작품에 등장하는 대사가 새겨져 있다.
첫 번째 역사(history)를 상징하는 인물은 헨리4세의 장남인 웨일즈의 할(Hal)왕자다. 나중에 헨리5세로 등장한다. 청동가면에는 영국을 상징하는 장미와 프랑스를 상징하는 백합이 조각돼있다. 비문에는 『헨리5세』에 나오는 “깊은 생각은 천사처럼 와서 불쾌한 마음을 쫓아낸다.(consideration like an angel came and whipt the offending adam out of him)”라는 대목이 적혔다.
두 번째 희극(comedy)을 상징하는 인물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3편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 존(John Falstaff)경이다. 청동가면은 홉과 장미로 장식돼있다. 비문에는 『헨리4세』에 나오는 “나 자신도 재치 있을 뿐 아니라 타인도 재치 있게 만든다.(I am not only witty in myself, but the cause that wit is in other men)”라는 문구가 새겨져있다.
세 번째 비극(tragedy)을 상징하는 인물은 맥베스(Macbeth)부인이다. 비극 『맥베스』에서 맥베스의 아내로 나중에 스코틀랜드의 여왕이 된다. 청동가면은 양귀비와 모란으로 장식됐다. 비문에는 『맥베스』에 나오는 “삶은 그저 걷는 그림자일 뿐, 불쌍한 인간은 평생을 바쳐 뽐내듯 성마르게 걷지만, 그저 빈손 뿐(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이라는 대목이 기록돼있다.
네 번째 철학(philosophy)을 상징하는 인물은 역시 햄릿(Hamlet)이다. 비극 『햄릿』의 주인공인 덴마크 왕자 햄릿은 상대주의론자, 실존주의론자 혹은 회의론자로 묘사돼 철학적 성격을 띤다. 청동가면은 아이비와 노송나무로 꾸며져 있다. 비문에는 “안녕 나의 왕자 / 하늘을 나는 천사가 당신이 쉴 수 있도록 노래하네(good night sweet prince and flights of angels sing thee to thy rest)”라는 『햄릿』의 대사가 적혀있다.
가이드가 셰익스피어 기념관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바람에 겨우 사진 한 장을 찍고는 허겁지겁 뒤따랐다. 이럴 때는 자유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로열셰익스피어극단 앞을 지나며 설명을 들었다. 1932년 이곳에 문을 연 셰익스피어 기념극장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 극단은 1961년 지금의 이름으로 발족했다. 1060개 좌석을 가진 왕립 셰익스피어극장(Royal Shakespeare Theatre)과 461석을 가진 백조극장(Swan Theatre)을 가지고 있으며 연간 20편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다.
이어서 셰익스피어가 다녔다는 문법학교, 킹 에드워드6세 학교를 찾았다. 들어가 볼 수는 없도록 돼 있는 모양이다. 들은 바로는 13세기 초 성 십자군의 길드가 설립한 교육시설이 현재의 위치에 있었다고 한다. 1553년 에드워드6세왕의 재정지원을 받는 마지막 학교로 이곳이 선정돼 다시 설립됐다. 셰익스피어가 이 학교를 다녔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만, 그가 살던 곳에 있던 유일한 학교인 만큼 7~14살 사이에 이 학교를 다녔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1893년부터 이 학교 학생들과 교사들은 매년 한 차례, 학교에서 성 트리니티 교회까지 가서 셰익스피어의 무덤에 꽃을 바친다. 설립 이후 전통적으로 소년들만을 위한 학교였지만, 2013년 9월부터는 정원의 25%범위 안에서 소녀들도 입학할 수 있게 됐다. 생각보다 남녀 차별이 여전히 심한 모양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글·양기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진료심사평가위원회 평가수석위원
1984 가톨릭의대 임상병리학 전임강사
1991 동 대학 조교수
1994 지방공사 남원의료원 병리과장
1998 을지의대 병리학 교수
2000 식품의약품안전청, 국립독성연구원 일반독성부장
2005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2009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상근평가위원
2018 동 기관 평가수석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