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서울 시내 도로는 몹시 붐볐다. 택시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서울 시청과 광화문 일대에 신고된 집회만 여러 개였다. 고막을 두드리는 격앙된 스피치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도로에는 경찰의 통제로 꽉 막혀 있자 참다못한 택시 기사가 한마디 내뱉었다. “뭐할라꼬….”
가까스로 목적지인 서울역사문화박물관에 도착했다. 기사는 또 다른 집회를 준비하던 이들을 향해 같은 말을 뱉었다. 뭐할라꼬. 그의 말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한 풀 꺾인 폭염에 하늘은 푸르고, 그늘에선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나들이 가기 안성맞춤인 토요일 오후, 아스팔트 위의 집회 취재에 불만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리고 수 시간 뒤 이들의 행렬을 쫓으며 나는 얼굴이 붉어짐을 느꼈다. 달궈진 아스팔트의 열기가 전해진 것인지, 부끄러움 때문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날 서울역사박물관 앞 도로는 속속 집회에 참석코자 자리를 메운 사람들로 장관을 이뤘다.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연단에 선 발언자들은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무죄를 판결한 법원의 결정을 비토했다.
언론보도에 달린 수많은 댓글을 보며 나는 이 사안을 둘러싼 대중의 분노를 절감한다. 집회에 참석한 수 보다 더 많은 이들은 피해자 김지은씨와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고 있었다. 김지은씨도 이날 편지글을 통해 말했다. 도와달라고, 자신에게는 아무도 없다고.
사법부의 ‘지엄한’ 결정은 김지은에게 칼날로 돌아온다. 동시에 안희정에게는 면죄부가 된다. 가해자가 안 전 지사가 아니었다면, 가해자가 차기 유력 대권 후보가 아니었다면 그 결과가 지금과는 달랐으리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다만, 피해자가 꽃뱀으로, 불륜으로 몰리고 다수의 공격과 2차 가해를 지금처럼 당했을까.
이날 현장에서 만난 여러 시민들에게 여러 번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지금 당신 앞에 안 전 지사가 서 있다면 무슨 말을 전하고 싶느냐는 물음에 기자가 만난 여러 시민들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지금도 김지은씨에게 미안하냐고 말이다.
나는 이날 대중의 분노가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맹렬한 적의보다 차가운 분노가 운집한 2만여 명의 가슴에 들어찼다고 생각한다.
위력 관계였어도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아니었다는 사법부의 판결이 말장난 수준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흡사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웃지 못 할 판결. 이로 인해 김지은씨를 비롯해 어렵게 용기를 낸 전국의 미투 폭로자들이 현저히 위축되고 있음을 재판부는 과연 알까.
이날 2만여 명의 외침이 전체 여론을 대변하는 건 아니다. 이날 거리에 나선 여성들이 전체 여성은 아니다. 다만, 이날 뜨거워진 2만개의 가슴과 4만개의 눈동자에서, 나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아픔을 느낀다.
뭐할라꼬 청명한 주말 오후 사람들은 외출대신 거리로 나섰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2심 재판부는 좀 더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2만개의 가슴이 타들어간 분노와 슬픔을 직시해야 한다.
김양균 기자 ange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