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여고 탐정단’부터 ‘응답하라 1994’까지. 종횡무진 브라운관을 누비던 혜리가 극장가를 찾는다. 영화 ‘물괴’(감독 허종호)와 함께 스크린을 찾은 기분은 어떨까. 영화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혜리는 “예전에 내가 찍은 광고가 영화 시작 전에 나오는 걸 구경한 적은 있었는데, 그 때와 기분이 완전히 다르다”며 웃었다. “얼굴이 너무 크게 나와서 부끄럽고요, 이상하고 손이 떨리는 기분이었어요.”
혜리가 ‘물괴’ 시나리오를 받은 것은 지난해 봄이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윤겸(김명민)이 주워 기른 딸 명. 명이는 언뜻 ‘응답하라’의 덕선이와 캐릭터가 겹치는 듯 하지만, 훨씬 용감하고 당찬 소녀다. 덕선이는 물괴를 보면 바로 도망칠 테지만, 명이는 물괴를 보면 화살을 겨눌 아이라는 점이 확연히 다르다.
“첫 영화인데 사극이고, 여러 가지 할 일이 많아서 어렵거나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지만 ‘할 수 있다!’는 열정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명이 캐릭터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고민이 많았죠. 한양에 살아서 정통 사극 말투를 쓰는 친구도 아니고 산골에서 아버지랑 삼촌과 셋이서만 살았던 소녀거든요. 그래서 흔히 생각할만한 진중한 말투보다는 편안하게 말하는 타입이라고 생각했어요.”
처음 해 보는게 많은 극이었다. 혜리에게는 설레는 도전이었다. 사극이고, 괴물이 나오는 크리처 장르고, 액션도 해야 되는데 캐릭터도 잊지 말아야 했다. 왜 이렇게 부담스러운 도전을 했을까 싶지만, 혜리 본인은 어려운 것을 하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게 여겼다고.
“제가 8개월 정도 활동 없이 작품을 쉬는 시기가 있었어요. ‘물괴’는 그때 보게 된 작품이에요. 단순히 놀기만 한 건 아니고 다양한 대본을 많이 받아봤는데, 대부분의 대본에 대해서 하고싶다는 생각이 별로 없었죠. 그런데 ‘물괴’는 달랐어요. 단순히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느낌보다는 장면 하나 하나를 상상해가며 읽었죠. 처음부터 ‘물괴’가 궁금했고, 그 속에서 연기할 제 모습도 궁금해졌어요.”
막상 뚜껑이 열리고 나니 본인 연기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혜리는 말했다. 원래 자신의 무대나 연기가 만든 결과물에 쉽게 만족하는 타입이 아니란다.
“저는 사실 이혜리라는 사람을 굉장히 좋아해요. 자기애가 큰 사람이라서 제가 해왔던 모든 결과물을 사랑으로 감싸안죠.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려고도 노력해요. 이건 잘 했고 저건 못 했고 하는 것을 생각해가며 더 발전하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요. 제일 먼저 ‘물괴’를 보고 든 생각은 ‘지금 찍으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였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또 찍으면 더 잘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싶죠.
‘물괴’는 배우로서의 혜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질만한 작품이다. 본인이 속해 있는 그룹 걸스데이 멤버들도 각자의 길을 가려 하고 있고, 혜리 본인도 새로운 길을 걸어야 하는 시기다. 그러던 중 하게 된 ‘물괴’라는 작품은 혜리에게는 분명 한발자국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었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은 ‘뭐 하지?’라는 거예요. 어떻게 들리실지는 모르겠지만, ‘물괴’를 택할 때 ‘내가 이 작품을 한다면 또 다른 방향의 길을 모색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분명 했거든요. 캐릭터만 봤을 때는 아직 제가 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넓지 않지만, 시간이 흐른 다음 아주 나중에 제 필모그래피를 보면 ‘물괴’는 제가 여러 곳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시작점 중 하나가 되어주지 않을까 싶어요.”
‘물괴’는 오는 12일 개봉한다.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