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성 키아라 성당(Basilica di Santa Chiara)을 만날 수 있다. 아씨시의 키아라 성녀(키아라는 이탈리어 이름이며, 클레어 성녀, 혹은 클라라 성녀로도 부른다)의 유체를 모신 성당이다. 필리포 캄펠로 (Filippo Campello)가 건축을 맡았다. 키아라 성녀의 유해는 성당이 완공된 1260년 10월 3일, 산 조르지오(San Giorgio) 성당에서 옮겨와 이 교회의 제단 아래에 묻혔다.
아씨시의 키아라 성녀는 1194년 고대 로마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독실한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면서 자랐다. 성년이 됐을 때 프란체스코 성인의 설교를 듣고 감동을 받아 그를 따르기로 했고, 프란체스코 성인은 그녀가 베네딕토 수녀원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이후 그녀는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전통을 따르는 여성들의 수도회, 작은 자매회를 창설하면서 그녀들의 생활규칙을 정했다. 그녀는 1253년 선종했고, 1255년 교황 알렉산데르 4세는 그녀를 시성했다. 교황 우르바노 4세는 1263년 가난한 자매회의 명칭을 성 클라라 수도회로 바꿨다.
4시 무렵 아씨시를 떠나 숙소가 있는 피렌체로 향했다. 원래는 키안치아노 테르메에 있는 숙소로 갈 예정이었으나 조금 더 가기로 한 모양이다. 아씨시에서 피렌체까지는 2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중간에 인솔자가 플리트비체국립공원을 여행 중이던 50대 한국 여성이 절벽 아래로 추락사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언제나 그렇지만 특히 해외여행을 할 때는 안전이 최선이다. 피렌체 못 미쳐 있는 호텔에서 저녁을 먹은 뒤 골프장 안에 있다는 숙소로 이동했다. 이미 어두워진 탓인지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물 흐르는 소리가 흡사 귀곡산장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탈리아 여행 둘째 날이다. 이날도 새벽 2시쯤 카톡이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 깼다. 유럽을 여행할 때 한국과의 시차 때문에 생기는 불편한 일 가운데 하나다. 7시에 아침을 먹으러 가면서 전날 밤 어둠 속에서 나던 물 흐르는 소리의 정체를 파악했다. 호텔 뒤로 높직한 산이 있고, 흘러내리는 물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에는 눈이 살짝 덮여 있다. 이탈리아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가 보다. 다만 어제보다는 덜하지만 아침부터 비가 촉촉하게 내리고 있으니 봄이 멀지 않았나보다. 봄을 재촉하는 비라고는 하지만, ‘전망 좋은 방’의 주인공 루시가 이야기한 “피렌체에서 깨어나는 일. 햇살 비쳐드는 객실에서 눈을 뜨는 유쾌한 일”을 경험할 수 없어 아쉽다.
이날은 8시 반에 숙소를 나섰기 때문에 아침에 시간여유가 있었다. 오늘 구경할 베네치아까지는 3시간 10분 정도 걸릴 예정이다. 숙소를 나선 뒤 20여분이 지나고부터 버스가 아펜니노 산맥을 오르기 시작했다. 남북의 길이가 1899㎞라는 이탈리아 반도의 북쪽은 알프스산맥이 차지하고, 반도의 중심에는 아펜니노산맥이 마치 등뼈처럼 누워있다.
이탈리아는 국토의 75%가 산악지형으로 돼있다. 본격적으로 아펜니노 산맥을 오르는 듯 빗줄기가 눈발로 바뀐다. 인솔자는 이거 미친 날씨라고 동동거린다. 눈발은 점점 굵어지고 출발해서 1시간 쯤 지나서부터는 버스가 속도를 내지 못한다. 눈보라 때문인지 아니면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공화정에서 제국으로 전환된 이후의 이탈리아 역사를 이어간다. 로마제국은 마르쿠스 울피우스 트라야누스(Marcus Uppius Traianus) 황제 시절, 스코틀랜드를 제외한 브리튼섬 전체, 동유럽의 북부를 제외한 발칸반도 등 유럽대륙의 전체, 소아시아반도를 지나 카스피해에 이르는 중동서부와 북부, 모로코로부터 이집트, 에티오피아에 이르는 아프리카 북부를 모두 아우르는 최대의 강역을 차지하는 전성기를 맞게 된다.
트라야누스 황제의 선대인 마르쿠스 코케이우스 네르바(Marcus Cocceius Nerva), 그리고 트라야누스의 제위를 이어받은 푸블리우스 아일리우스 하드리아누스(Publius Aelius Hadrianus), 그 뒤를 이은 티투스 아우렐리우스 풀비우스 보이오니우스 아리우스 안토니누스 피우스(Titus Aurelius Fulvius Boionius Arrius Antoninus Pius) 그 다음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Marcus Aurelius Antoninus)에 이르는 다섯 황제는 로마제국의 최전성기를 이끌어 오현제라고 불린다.
오현제의 전성기를 지난 로마제국은 군인이 황제에 오르는 등 영향력이 커지면서 오랜 기간 혼란을 겪다가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발레리우스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urelius Valerius Diocletianus) 황제가 사태를 수습한 뒤, 서기 293년에는 제국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각각 황제와 부제를 두어 지배하는 사두체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황제와 부제들의 권력다툼이 이어지다가 서기 395년에는 비잔티움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완전히 갈라졌다.
4세기 무렵 훈족의 서진으로 시작된 게르만의 대이동 결과로 제국 영토에 들어온 서고트족이 로마를 침략하는 사건이 있었고, 반달족은 로마의 속주인 갈리아, 히스파니아, 북아프리카를 침략했다. 서기 476년 게르만족의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를 폐위시킨 것을 끝으로 서로마제국은 멸망했다. 제국의 멸망 뒤에 이탈리아 반도는 사르데냐왕국, 시칠리아왕국, 밀라노공국 등 수많은 왕국들과 베네치아공화국 등 도시국가들로 분열되었다. 뒷이야기는 밀라노에서 다시 잇기로 하고 줄인다.
숙소를 나서 1시간 40여분이 지날 무렵 휴게소에 들렀다. 운전자 휴식에 관한 IDC규정 때문이다. 산에서 많이 내려왔는지 눈도 그쳤다. 화장실에도 들리고 커피라도 한 잔 마시려 했는데 사람이 엄청 많아 오가는 것도 힘들다. 커피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섰다가 결국은 포기하고 버스에 다시 올랐다.
점심은 11시반경 베네치아 도착해서 먹었다. 고속도로가 밀렸던 것은 출근시간대 교통 혼잡 때문이었다고 한다. 메뉴는 파스타 한 접시를 곁들인 생선찜이었다. 가자미 같은데 간만해서 찜을 하고 야채를 곁들였다. 비리지는 않았지만 양념이 없어 우리 입에는 밍밍했다. 고추장을 뻘겋게 발라서 굽던지 하다못해 간장으로 양념을 했더라면 좋았을 듯하다. 하지만 유럽 사람들은 재료 본연의 맛을 즐길 수 있는 요리법을 최상의 것으로 삼는다니 어쩔 수가 없다.
점심을 먹고 다시 20여분을 달려 베네치아 공영주차장에 도착했다. 베네치아는 두 번째 방문이다. 이곳에서 현지가이드를 만나서 수상버스로 갈아타고는 베네치아 본섬으로 이동한다. 오전에는 폭풍설이 장난이 아니다가 오후 들어 비로 바뀐 것이라고 한다. 기온도 영상 5도 정도로 차갑다. 목도리는 했지만 정작 가방에 넣었던 패딩을 깜박하고 버스에 두고 내려 도움을 받지는 못했다. 어떻든 맑았던 지난번과는 다른 날씨라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수상버스가 산 마르코광장 부근에 있는 선착장으로 이동하는데 보니 잔뜩 찌푸린 하늘 때문에 베네치아는 바다에 가라앉은 것처럼 보인다. 그 가운데 레덴토레 교회(Il Redentore)가 눈에 띈다. 가장 신성한 구세주 교회(Church of the Most Holy Redeemer)라는 의미의 키에사 델 산티시모 레덴토레(Chiesa del Santissimo Redentore)는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의 설계로 1577년 착공해 1592년 완공됐다. 1575년부터 1576년까지 무려 4만6000명의 베네치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흑사병이 종식된 것에 감사하기 위해 베네치아 상원의 결정에 따라 봉헌된 것이다.
수상버스에서 내려 비발디가 세례를 받았다는 산 지오바니 인 브라고라(San Giovanni in Bragora)성당이 있는 광장으로 이동하는 것도 지난번과 같았지만, 되돌아 나왔던 지난번과는 달리 이번에는 신부였던 비발디가 주석한 성당(Chiesa della Pietà - Santa Maria della Visitazione)과 그가 음악교육을 맡았던 보육원 사이의 골목으로 나왔다. 두 건물 사이에는 2층을 연결하는 통로가 있는데 보육원 아이들이 교회 가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배려였단다. 어린이까지도 배려하는 베네치아 사람들의 시민의식에 감탄하게 된다.
다시 선착장으로 나와 총독궁 방향으로 왼쪽으로 가다가 처음 만나는 다리에 서면 기울어 가는 그리스 정교회(Chiesa San Giogio dei Greci)의 종탑을 볼 수 있다. 이 종탑이 피사의 사탑처럼 기우는 것은 서로 지지하는 건물이 옆에 없는 탓이라고 한다.
다리를 건너가면 호텔(Hotel Londra Palace)로 개조된 귀족의 집이 나오고 그 앞에는 이탈리아 통일을 이룬 비토리오 임마누엘의 동상이 서있다. 이어서 감옥이 나오고 유명한 탄식의 다리를 구경했다. 총독궁의 회랑을 걸어 나가면 정면에 도서관이다. 도서관 사이에서 가이드가 설명하는 사이에도 총독궁 중간에 칼을 든 여신의 두상을 확인했다. 존 러스킨과 관련된 전시가 있을 예정이라는 걸개가 바람에 접혀있다. 존 러스킨은 베네치아의 건축 양식에 관한 ‘베네치아의 돌’을 써 베네치아와 관련이 있다.
도서관 앞 회랑을 따라 카페 플로리안 앞에서는 핫초코 이야기를 한참 한 다음 나폴레옹 집무실을 거쳐 공중화장실 위치까지 소개한 것이 2시, 그리고 4시 20분까지 자유시간이다. 자유 시간에는 베네치아의 골목에 들어가지 말라고 가이드는 강조한다. 길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길을 잃었음을 자각하는 순간 여행은 시작된다’라는 헬렌 루크의 말이 아니더라도, 단체여행만 아니면 길을 잃는 경험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닐 터이다. 다음에 베네치아를 찾아오게 된다면 골목길을 찾아들어가 볼 일이다. 아내와 나를 포함한 세 사람을 제외하고 큰 아이를 포함한 나머지 일행들은 선택관광상품인 곤돌라를 타러갔다. 우리는 지난번에 왔을 때 이미 타보았기에 그 시간에 다른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