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급 차이가 나는 상대를 이기기는 쉽지 않다. 지는 것이 당연할 정도의 페널티다. ‘헤비급’ 넷플릭스, 유튜브 등과 경쟁하려는 국내 방송업계의 처지가 그렇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22일 정보통신방송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지난해 일몰된 ‘유료방송 합산규제’ 재도입 관련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해당 규제는 특정 기업 계열사들의 유료방송시장 점유율 총합이 3분의 1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IPTV업계인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는 각각 20.67%, 13.97%, 11.41%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케이블업계에서는 13.02%의 CJ헬로를 필두로 티브로드(9.86%), 딜라이브(6.45%) 등이 뒤를 잇는다. 유일한 위성방송인 KT스카이라이프의 점유율은 10.19%다.
KT그룹의 경우 IPTV와 위성방송을 합치면 30.86%로 3분의 1에 근접한 상황이다. 만일 합산규제가 재도입되면 KT는 더 이상 몸집을 불릴 수 없다. 실제로 KT는 딜라이브 인수를 타진 중이지만, 관련 논의 결과에 따라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반면 다른 업체의 경우 인수합병이 이뤄지더라도 33%를 넘기지 않기 때문에 협상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편이다.
합산규제는 도입 당시 특정 기업의 방송시장 독점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인터넷동영상서비스(OTT) 기업들이 급성장하면서 방송시장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 시장 1위인 넷플릭스는 세계적으로 1억500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고, 유튜브의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OTT 기업들은 합산규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는 이미 내수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글로벌 기업과 규제에 발목 잡히는 국내 기업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일각에서 역차별 논란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국내 기업 간 입장 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KT의 경우 합산규제를 당연히 반대하지만, 나머지 기업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KT를 견제할 수 있다는 이점과 본인들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따라서 방송업계가 한마음 한뜻으로 합산규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도 합산규제와 비슷한 제도를 시행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009년 미국 유선방송사업자 컴캐스트가 점유율 상한제를 폐지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 관련 제도는 사라졌다. 이후 컴캐스트는 영국 위성방송 스카이를 인수하고, AT&T는 타임워너와 합병하는 등 미국 유료방송시장의 규모는 급성장했다.
국내에서도 합산규제를 폐지한다면 시장의 몸집을 키우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면 국내 기업 역시 체급을 맞춰야 한다.
합산규제 논의까지 일주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무리한 다이어트는 소탐대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김도현 기자 dobest@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