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뺑반’에서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배우 류준열과 조정석이 함께 등장할 때다. 극 중 두 배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캐릭터를 쌓아간다. 누구에게도 굽히거나 굴복하지 않을 것 같은 두 인물이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해질 때쯤 본격적인 대결 구도가 펼쳐진다. 캐릭터의 대결 못지 않게 배우의 연기 대결 역시 팽팽하다. 예측하지 못했을 의외의 행동과 대사가 나와도 상대 배우가 자연스럽게 맞받아치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그들의 앙상블이 만들어내는 긴장감과 재미를 지켜보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류준열은 상대 배우였던 조정석의 이야기가 나오자 눈을 반짝였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류준열은 조정석과 첫 대본 리딩을 하는 순간을 회상하며 “놀랐다”고 했다.
“‘뺑반’을 시작하기 전부터 조정석, 공효진과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이 컸어요. 이분들만 할 수 있는 독특한 연기법과 캐릭터가 있잖아요, 그게 굉장히 기대가 됐죠. 영화 속 캐릭터를 어떻게 준비해올지 너무 궁금했는데 두 분 다 예상을 깨고 독특한 인물을 갖고 오셨더라고요. 조정석 형은 이상한 사람에 가까운 캐릭터를 갖고 왔어요. 제가 생각한 건 그냥 악역이었거든요. 대본 리딩이 끝나고 ‘이렇게 준비하셨구나. 그럼 서민재는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했어요. 괜히 조정석이 아니더라고요.”
대본 리딩은 시작에 불과했다. 류준열은 촬영 현장에서도 관객의 입장이 되어 조정석의 연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봤다. 틀에 박히지 않은 연기를 하는 조정석을 상대하려면 류준열도 변화가 필요했다.
“영화를 보면 두 사람이 카센터에서 만나는 장면이 있어요. 서로 불꽃 튀는 대사들을 시작하는데 그때 정석이 형의 연기를 보는 게 정말 재밌었어요. 워낙 다이나믹하고 틀에 박히지 않은 날 것의 연기를 하시더라고요. 가만히 서서 연기하지 않고 저와 가까이 붙었다가 떨어졌다가 계속 움직이면서 하시는데 베테랑의 몸짓을 보는 기분이었어요. 전 준비했던 연기를 그대로 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정석이 형을 보면 조금씩 바꾸면서 했어요.”
조정석에 대한 류준열의 이야기는 영화 밖으로도 이어졌다. 사석에서 밥을 같이 먹을 때는 두려워하지 말고 계속 많은 작품에 도전하라는 얘기를 들었단다. 배우는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만나야 한다는 내용의 이야기였다.
“정석이 형을 보고 있으면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이런 게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 에너지가 엄청나시거든요. 정석이 형이 ‘뺑반’에 합류한 게 드라마를 마친 직후였어요. 그 이후에 한달 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에 뮤지컬을 하나 하고 오시더라고요. 이건 그냥 연기가 좋아서 선택한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어요. 제가 함부로 얘기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또 남자가 봐도 멋있는 남자예요. 굉장히 예민하고 섬세하신데도 남자다운 모습이 있죠.”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쇼박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