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뇨리아 광장을 장식하고 있는 바다의 신 넵튠이나 베키오 궁전 앞에 있는 다비드와 헤라클레스, 로지아 델라 시뇨리아에 있는 폴리세나 등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전망 좋은 방’의 여주인공 루시에게 마법을 걸어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현실이 되게 만들었던 것처럼 광장을 찾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마법을 거는 것은 아니겠지?
루시는 “입구가 셋 있는 동굴처럼 보이는 로지아 안쪽에서는 그림자에 잠긴 불멸의 신들이 인간들의 왕래를 바라보고 있었다”라고 적었다. 밤에 보면 더욱 으스스한 느낌이 들까? 아니면 이들이 보여주는 마법에 기대를 할까?
시뇨리아 광장을 떠나 좁은 골목을 누비다보니 산타 크로체 성당이다. 민트탑까지는 벌써 익숙해진 느낌이 드는 길이다. 그 사이에 로마 시대의 신전이 있던 장소라는 설명을 들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2시 50분 로마를 향해 떠났다. 로마로 가는 길은 로마에 도착해서 북쪽으로 향할 때 탔던 E35번 고속도로이다.
가는 길에 다시 언덕 위에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오르비에토와 오르테 등의 마을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피렌체에서 로마까지는 약 3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하는데, 도로 사정이 원활해서인지 6시 무렵 세상의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에 들어섰다. 서편 하늘가로 떨어지는 해가 쓸쓸해 보인다.
멀리 언덕 위에 늘어선 나무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나무의 줄기는 가냘프게 생겼는데, 잔가지가 많은 듯 우산모양으로 솔잎이 조밀하다. 그래서 우산소나무라고 하는가보다. 생긴 모양만보면 우리나라의 반송을 닮았는데, 차이라고 한다면 반송은 대체로 땅위에 소담스럽게 퍼지는 것과는 달리 우산소나무는 줄기가 기다랗게 뻗은 위에 우산을 펼쳐놓은 듯 한 모습이다.
다복솔이라고도 하는 반송은 적송 계통의 변종으로 학명은 var. globosa Mayer이다. 우리나라와 중국의 정원에서 인기를 끄는 수종이다. 특히 생김새가 고고(孤高)하고 변함없이 푸르러서 선비들이 애호한 나무이기도 하다.
로마 가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산소나무(학명: Pinus Pinea)는 돌소나무, 피네아 소나무, 지중해소나무 등으로도 부른다.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로 남유럽을 비롯해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등지, 북아프리카 등에서도 자생한다. 카나리아 제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오스트레일리아의 뉴사우스웨일즈로도 전파됐다.
최대 25m의 높이까지 자라기도 하지만 보통은 12~20m 정도 자라며 어릴 때는 우리나라의 다복솔 모양으로 수북한 형태를 취하다가, 자라면서 굵은 줄기 위에 우산을 펼쳐놓은 모양이 된다. 다 자라면 너비 8m 이상으로 넓고 납작한 형태가 된다.
로마제국 시절 만든 아피아 가도를 비롯한 도로망에 우산소나무를 가로수로 심은 것은 넓게 펼쳐진 가지들이 따가운 햇볕을 차단하기 때문에 행군을 하는 군사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 정원에서도 관상수로 애호되던 수종이다.
6시 반 버스가 아파트촌으로 들어선다. 저녁을 먹으려면 식당으로 가야하는데 식당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에 일행을 내려준다. 컴컴한 주차장에서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길을 찾아가다 보니 상가건물에 위치한 린칸토 마리노(L'Incanto Marino)식당에 도착했다. 이른 시간인 듯 식당에는 우리 일행밖에 없었다.(이탈리아 사람들이 저녁을 먹는 시간은 8시부터라고 한다.) 식당 안에 있는 커다란 수조에는 바다가재가 여러 마리 들어있었다.
이날 저녁은 마짱꼴레(mazzancolle)라고 하는 이탈리아식 해산물 특식을 먹는다고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어로 마짱콜레는 새우를 말한다. 연어 회, 문어숙회, 생굴, 삶은 오징어와 새우, 새우구이, 홍합탕, 오징어 튀김 등 다양한 해산물이 푸짐하게 나왔다. 백포도주까지 여덟 명 기준으로 2병이 나왔지만 한 병도 채 비우지 못했다. 아마도 술을 좋아하는 분이 별로 없었나 보다. 1시간 정도 저녁을 즐기고 숙소로 향했다.
이탈리아 여행 6일째다. 이날은 나폴리를 거쳐 폼페이를 구경하고, 소렌토에서 배를 타고 선택관광상품인 카프리섬을 들렸다 나폴리로 나와 다시 로마로 돌아오는 대단한 일정을 소화해야 한다. 7시 10분에 숙소를 나서기로 했다. 다행인 점은 SHG 호텔 안토넬라에서 다시 묵을 예정이기 때문에 하루 종일 필요한 것들만 챙기면 된다. 그래도 5시 반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는 짐을 챙겨 식당으로 가야했고, 식사를 하고는 바로 버스를 탔다.
이날은 구름이 조금 깔렸지만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으니 좋았다. 아침 기온이 10도 정도로 조금은 쌀쌀했다. 숙소가 로마의 변두리에 있는 탓인지 금세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로마에서 나폴리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흔히 ‘태양의 길(Strada del Sole)’이라고 부르는 A1고속도로(Autostrada A1)다. 밀라노에서 볼로냐, 피렌체, 로마를 거쳐 나폴리에 이르는 754㎞를 잇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고속도로이다.
1956년 착공해 1964년 완공됐다. 로마에서 나폴리 사이의 도로는 원래 A2고속도로 명명됐다가 1988년 A1도로로 통합됐다. 지도를 보면 밀라노에서 로마까지는 E35로, 로마에서 나폴리까지는 E45로 번호가 붙여져 있는데, 이는 유럽의 도로체계를 적용한 탓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나폴리의 빛나는 태양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남북을 잇는 첫 번째 고속도로의 이름을 ‘태양의 길’이라고 부른 것 아닐까 싶다. 확인된 것은 아니다. 구글에 ‘스트라다 델 솔레(Strada del Sole)’를 검색하면 오스트리아 가수 라인하르드 펜드리히(Rainhard Fendrich)가 1981년에 발표한 ‘스트라다 델 솔레(Strada del Sole)’가 주로 나온다.
비엔나 독일어로 된 가사 때문에 주로 오스트리아에서만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나는 태양의 길의 열기 속에 지쳐 서 있다(I steh in da Hitz an da Strada del sole)’라고 시작하는 가사의 내용은 실연의 비탄을 담고 있다. 비엔나에서 온 젊은이가 이탈리아 여자 친구와 휴가를 갔는데, 이탈리아 남자의 유혹에 넘어간 여자 친구가 그 남자와 떠났다는 내용이다. 잘 생기고 언변이 좋은 이탈리아 남성에게 넘어가지 않을 여성이 있겠느냐고 하는 것을 보면, 멋모르고 여자 친구와 이탈리아를 여행하다가 이런 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
숙소를 떠나 1시간쯤 달렸을까, 버스를 갓길에 세운다. 버스 뒤편 기계실에서 연기가 나고 있어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별 문제가 없었던 모양으로 금세 출발했다. 나폴리에 가까워지면서 가이드는 마피아에 대해 설명했다. 위키백과는 ‘마피아(Mafia)는 보호세 갈취, 범죄자 간의 분쟁 중재, 불법적 합의 및 거래의 조직과 감독을 주요 사업으로 하는 신디케이트형 조직범죄’라고 정의한다.
마피아라 하면 시칠리아 마피아를 의미하며, 나라마다 이런 유형의 범죄조직을 이르는 말이 있다. 멕시코에서는 ‘라 엠므(La Eme, 마피아의 머리문자 M을 이르는 스페인어)’, 일본에서는 ‘야쿠자’, 중국에서는 ‘삼합회’,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직폭력배’를 줄인 조폭이라는 이름이 그에 해당될 수도 있겠다.
시칠리아에서 유래한 마피아라는 용어가 국제적으로 사용된 것은 1875년 이후이다. 마피아(Mafia)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오랜 세월동안 무법상태에 있던 시칠리아에서 지주들이 강도로부터 토지를 보호한 자구책으로 운용하던 소규모의 사병 조직 마피에(MAFIE)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하나다.
그런가 하면 1282년 시칠리아 만종사건 당시 시칠리아를 지배하던 프랑스 앙주가문에 대항해 일어났던 시칠리아의 기사들이 내세웠던 구호, “이탈리아는 열망한다. 프랑스인의 죽음을! (Morte alla Francia Italia Anela)”에서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13세기 신성로마제국과 대립하던 우루바누스 4세 교황은 우호세력인 프랑스 앙주 백작 샤를에게 시칠리아왕국의 계승권을 인정했다. 1266년 신성로마제국과의 베네벤토전투에서 승리한 샤를백작은 카를루 1세로 시칠리아 왕국의 왕위에 올랐다. 칼를루1세는 시칠리아를 식민지로 경영하면서 시칠리아 귀족들은 배제하고, 프랑스와 나폴리 출신들만 중용했다. 뿐만 아니라 비잔틴제국과의 전쟁에 대비해 시칠리아에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는데, 이에 분노한 시칠리아 사람들이 일으킨 반란이 시칠리아 만종사건이다.
마피아라는 용어에 대해 국제적 범죄조직을 칭하는 마피아(Mafia)와 시칠리아 사람들 특유의 정신을 이르는 마피아(mafia)를 구별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고 위키백과는 정리한다.
“마피아(mafia)는 모든 시칠리아 사람들에게 퍼져있는 정신상태, 생활 철학, 사회에 대한 개념, 도덕적 규약, 특수한 감수성을 말한다. 그들은 그것을 요람에서부터 배워서, 아니면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다. 그들은 서로 도와야 하며 친구가 틀리고 적들이 옳다고 할지라도 친구의 편을 들어 적에 대항해 싸워야 한다. 각 개인은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아주 사소한 모욕이라도 복수하지 않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들은 비밀을 지켜야 하며, 공권력이나 법률에 대해서는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예정표대로라면 로마에서 폼페이까지 3시간 30분 걸린다는데 고속도로 사정이 원활했던 탓에 3시간을 조금 넘겨 폼페이에 도착했다. 1787년 2월에 마차를 타고 로마에서 나폴리까지 나흘 걸려 당도했던 니체와 비교해보면 눈 깜짝할 사이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