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배우 주지훈은 바빴다. 자신이 출연한 영화만 ‘신과함께-인과 연’, ‘공작’, ‘암수살인’까지 세 편이 개봉했다. ‘신과함께-인과 연’은 1200만 관객을 돌파했고, ‘공작’으로 영평상과 부일영화상 등 다수의 영화상을 차지했다. ‘암수살인’에서 삭발을 하고 보여준 연쇄살인마 연기로 호평받기도 했다.
그가 출연작이 또 있다. 주지훈이 왕세자 이창역을 맡은 넷플릭스 ‘킹덤’이 지난달 25일 베일을 벗었다. 궁궐 내 정치싸움에 휘말려 역모를 꾸몄다는 죄목으로 쫓기는 왕자 역할이었다. ‘킹덤’은 동영상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 작품답게 190개국에서 27개의 언어로 동시 공개됐다. 자연히 해외에서의 반응도 뜨거웠다. 유명 미국드라마인 ‘왕좌의 게임’, ‘워킹데드’와 비교되는가 하면, 극 중 인물들이 착용한 조선시대 모자가 화제를 모았다.
지난 12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주지훈 역시 이 같은 해외반응을 모두 알고 있었다. “‘킹덤’의 인기가 와닿진 않는다”면서도 “우리가 열심히 한 걸 좋아해주고 있구나 싶다”고 말했다.
“해외반응이 좋은 이유요? 재밌으니까요. 다른 말이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거고 재밌는 건 재밌게 보는 건 전 세계 공통이잖아요. 한국의 금수강산이나 의상, 갓 같은 것들이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외국에선 신비롭고 신선하게 느끼는 거 같아요. 예상치 못한 반응들이 정말 재밌더라고요. 어떤 사람이 ‘킹덤’에서 ‘모자가 별로인 사람들은 다 목이 잘린다’고 적은 글을 봤어요. 또 저희가 쓰는 모자를 가리키며 갓(God)이라고 하는 반응들이 재밌고 유쾌했어요. 외국인의 시선에서 보면 ‘쟤네는 집에서 신발은 벗는데 모자는 안 벗는다’고도 해요. 저희에겐 당연한 건데 그들에겐 이상한 거죠. 작품을 하면서 어떤 반응이 올지 철저히 계산하고 힘을 줘도 전혀 다른 곳에서 올 때가 많아요. 역시 가늠할 수가 없구나 싶어요.”
주지훈은 15일부터 ‘킹덤’ 시즌2 촬영에 합류한다. 주인공인 이창 역할을 연기하지만 막상 “욕심낼 것이 없다”고 했다. 이창의 시선과 표정이 곧 ‘킹덤’ 전체의 흐름을 보여주기 때문에 배우로서 나서서 보여줄 게 없다는 얘기다. 동료 배우 배두나의 연기력 논란 얘기가 나오자 주지훈은 반대로 극찬을 쏟아냈다.
“전 (배두나의 연기가) 정말 좋아요. 두나 누나와 처음 연기를 하고 3일 정도 고민에 빠졌어요. 왜 난 저렇게 변화를 못 주지, 왜 난 사극 틀에 갇혀있지 싶었죠. ‘킹덤’은 제 네 번째 사극이에요. 제 나이 또래 배우 중 저만큼 사극을 많이 한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래서 자신있다고 생각했는데 자만했구나 싶었죠. 정말 많이 고민하고 김성훈 감독님과 계속 얘기를 나누면서 어떻게든 바꿔보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좌절했어요.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배두나는 대단한 배우예요. 만약 배두나 누나가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면 연기에 대한 불호는 줄었을 수 있으나 전체적인 긴장감은 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배두나 누나가 그 짐을 자처해서 짊어지고 간 거죠.”
넷플릭스와의 첫 작업 소감도 궁금했다. 국내 영화, 드라마 제작사와 미국 콘텐츠 기업인 넷플릭스는 다른 점이 있지 않았을까. 주지훈은 “감독과 작가, 배우, 제작자, 투자배급사까지 같은 생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똘똘 뭉쳤을 때 얼마나 단단해질 수 있는지를 느꼈다”고 했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힘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게 우연이 아닌 의도적인 작업의 결과였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6부작 드라마로 공개됐지만 영화를 찍는단 생각으로 작업했다고도 했다.
“플랫폼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영화처럼 찍었어요. 영화를 촬영할 때 준비시간이 긴 건 스크린이 크기 때문이에요. 구석구석 조명 하나까지 디테일을 살리거든요. 넷플릭스는 주로 작은 화면에서 본다는 걸 알지만 영화 감독님이 오시면서 영화 같은 퀄리티로 찍게 됐어요. 물론 제작환경이 영화와 완전히 똑같진 않았어요. 영화가 1이고 드라마가 10이라면 2~3정도 됐죠. 또 드라마는 한 회에 기승전결이 있어요. 그런데 ‘킹덤’은 300분을 하나의 서사로 갔죠. 그래서 6부작이지만 300분 분량의 영화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올해도 주지훈은 쉬지 않는다. 지난 11일 첫 방송된 MBC ‘아이템’을 사전제작으로 모두 찍은 주지훈은 쉼 없이 ‘킹덤’ 시즌2 촬영에 돌입한다. 소처럼 일한다고 ‘소지훈’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다. 주지훈은 좋은 작품들이 오면 안 할 수가 없다고 했다.
“20대 때 청춘물을 한 작품이라도 더 찍어놓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들마다 로망이 있잖아요. 전 그게 느와르였어요. 20대 때부터 느와르를 하고 싶었죠.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영화 ‘좋은 친구들’부터 ‘아수라’까지 끝냈을 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MBC ‘궁 2’를 찍었다고 ‘아수라’를 찍지 못했을까. 30대에 할 수 있는 역할은 30대에 해야 하는구나 싶었죠.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니까 똑같이 피곤한 것도 재밌다고 느낄 수 있게 됐어요. 촬영 도중에 쉬는 날 작가님을 만나서 대본을 갖고 놀면서 농담을 주고받다가 ‘이거 네 번째 장면에 쓰면 재밌을 거 같지 않아요?’라고 하는 거죠. 저한텐 이게 재밌는 놀이예요. 재밌으니까 피로로 다가오지도 않고요. 거기에 엄청난 행운처럼 좋은 작품들을 자꾸 주시니까 안 할 이유가 없죠.”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넷플릭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