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는 제작 단계부터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의 흥행을 등에 업고 크게 주목받았다. 영화가 베일을 벗은 20일, 18만 관객이 ‘사바하’를 관람했다. 촘촘하고 세밀하게 짜인 영화의 완성도에 기뻐하는 팬도 있었고, 영화가 다루는 종교관과 개인의 종교관 차이에 아쉬움을 표하는 팬도 있었다. 어쨌든 화제성 높은 영화임은 틀림없다. 잘 짜여진 등장인물과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종교들, 그리고 배우들의 열연까지.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재현 감독과 문답을 가졌다. ‘사바하’에서 비롯된 수많은 궁금증들과 그의 답.
Q. ‘검은 사제들’ 때부터 뭐 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걸 만드나 하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대체 뭐 하던 사람입니까.
A. 저는 그저 ‘오타쿠’일 뿐입니다. 하하. 어디에서는 제가 신학교 나온 게 아니냐는 의심도 하시더라고요. 저는 종교적인 소재를 지식적으로 이해하는 걸 예전부터 재미있어하던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영화 ‘다빈치 코드’를 보면, 그림 보면서 퍼즐을 풀잖아요. 영화 속에서 그 퍼즐이 어디서 기인하는지, 그 문제가 가지고 있는 정서가 어떤 것인지 하는 설명을 더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었어요. ‘사바하’에서도 종교적 장치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영화에 꽤 있죠.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으면 해서 후반부에는 감정적 장면을 많이 쏟아부었어요.
어쨌든, 저는 모태신앙을 가진 기독교도 유신론자인데,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지만 ‘사바하’를 준비하면서부터는 세상에 불만이 좀 많았어요. 그 불만들을 담은 영화랄까요.
Q. ‘사바하’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A.저는 보고 싶은 장면을 가장 먼저 상상하고, 그 다음에는 그 장면이 가진 이야기의 엔딩을 상상해요. 엔딩의 느낌이 미력하게나마 완성되는 순간 거기에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하죠. 그러면서 인물을 만들고, 그림과 장면들을 쌓아올린 후 장르를 결정하고 서사를 메꾸는 거예요.
‘사바하’의 시작은 ‘검은 사제들’의 무대인사까지 다 끝난 12월이었어요. 차를 타고 가며 눈이 오는 바깥을 보는데, 좀 우울한 노래가 들리더라고요. 아, 이런 느낌의 엔딩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게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검은 사제들’ 인텨뷰 때도 많이 얘기했지만 종교 관련 서적을 읽으며 불교를 좀 파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거기에 제가 평소 갖고 있던, 성경의 비극들에 관한 담론을 결합시켰죠.
Q. ‘사바하’를 보고 감독이 전작의 장점을 발전시켰다는 호평이 많아요. ‘검은 사제들’때부터 여러가지로 주목받았고, 기대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본인에게는 어떤 도전이었나요? “내가 잘 하는 걸 하겠어!”라는 느낌이었나요? 아니면 ‘사바하’는 전혀 새로운 도전이었나요?
A.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게 있죠. 하하. 저는 근데 거기 크게 얽매이지는 않았어요. 감독이란 족속들이 욕망이 많아서 이 직업을 택하곤 하는데, 저는 제가 만들고 싶은 영화보다는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거든요. 무슨 말이냐면, 영화관에서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는 영화예요. 기존 흥행영화들은 다 제 취향에 맞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영화’ 혹은 ‘내가 돈 주고 볼 것 같은 영화’죠. 시작할 때도 그런 느낌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전작에 얽매일 여지가 별로 없었어요. 그저 제가 보고 싶은 영화를 향해 시나리오의 방향을 잡고, 장르와 속도, 캐릭터를 결정했죠.
Q. 솔직히 ‘검은 사제들’은 주연배우인 강동원 씨에 대한 주목도도 굉장히 높았어요. 어느 정도냐면 강동원씨 등장할 때, 없었던 특수효과도 있었다고 할 정도로요. 하지만 ‘사바하’에서는 캐릭터나 영화 속 스타 배우에 주목을 할 만한 여지가 별로 없어요. 배우들을 장기말처럼 사용했달까.
A. 배우를 그저 도구처럼 쓰지는 않았어요. 하하. 감독의 첫 번째 덕목은 배우를 사랑하는 겁니다. 다만 시나리오에서 의도한 바와 맞아떨어지는 감상이기는 해요. 아마 ‘사바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주연배우들은 ‘내가 튀면 안 되겠다’고 느꼈을 거예요. 왜냐하면 최근 한국 박스오피스의 90%정도는 캐릭터를 따라가는 영화거든요. 하지만 ‘사바하’는 캐릭터보다는 전체 서사를 더 위에 두고 썼어요.
여담이지만 ‘사바하’를 만들면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영화가 있는데, 바로 ‘스포트라이트’(감독 토마스 맥카시)예요. 주인공이 없지만 그 서사와 정서, 골격은 대단하잖아요. 그 영화 대사를 필사까지 해 가면서 몇 번이나 봤어요. 그래서 ‘사바하’도 꽤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물론 배우들이 밸런스를 정말 잘 잡아준 것도 있죠. 그래서 더더욱 영화를 잘 만들어야겠다는 압박감을 많이 느꼈고요.
Q. 주인공인 박목사는 관찰자이자 서술자예요. 서사가 드러나면 안 되는 캐릭터지만, 영화의 관객은 박목사의 동기가 궁금할 것 같아요. 이 사람이 정말 작품 초반에 나온 것처럼 돈만 필요하고 바라는 사람이라면 중간에 손을 뗐을 거예요. 혹은 신부가 아니라 사업가가 됐겠죠. 이 사람의 동기는 뭘까요.
A. 기본적으로 박목사 캐릭터는 사실 저의 자아가 빙의된 캐릭터라고 보시면 돼요. 감독 장재현의 자아를 좀 쪼개 넣었달까요. 영화 속에도 나오는, 박목사의 아는 선교사 이야기는 사실 실제로 제가 NGO단체에서 일하던 시절 벌어졌던 이야기예요. 그런 경험을 한 유신론자로서, 신을 믿고 있기는 하지만 가끔 신이 원망스러운 거예요.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는 이 세상에서, 과연 신이 있을까? 예수님이 태어나기 위해 불쌍한 아기들이 죽는 것을 신께서는 왜 보고만 계셨을까? 하는 의문을 심어넣은 것이 박목사죠.
사이비 종교를 찾는 박목사의 내면에는, ‘내가 이렇게 가짜들을 찾아 헤매다 보면 그 안에 진짜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하는 욕망이 있어요. 신을 만나서 이 불합리한 세상에 관해 따지고 싶은 욕망이 녹아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사실 서사도 많고 분량도 많았지만 영화의 밸런스를 위해서 과감히 지웠어요.
Q. 영화를 본 관객으로서 성선설에 대해 생각해보게 돼요. ‘신은 가장 낮은 곳에 임하신다’는 말도 있잖아요. 영화에서 담은 메시지나 의도한 텍스트가 있을까요.
A. 인간은 선한 존재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하하. 다만 많은 희생이 있을 동안 신은 뭘 했나 하는 아이러니함에 대해 다뤄보고 싶었죠. 하지만 제가 의도한 텍스트는 없다고 생각하고 그냥 편안히 영화를 보셨으면 싶어요. 일부러 그런 기호나 메시지를 생각하지 않고, 넣으려고도 하지 않았어요. 좀 촌스럽잖아요. 하하.
영화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감정선이 다 다른 만큼 관객들의 이입에 따라서 영화의 엔딩도 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거예요. 운이 좋아 이 영화가 마음에 드신 관객이라면, 그래서 두 번째 보고 싶어지셨다면 그 때는 첫 관람 때와는 다른 캐릭터에 주목해 보셨으면 좋겠어요. 결말만큼은 꽉 닫힌 결말이지만, 감정적으로는 다르게 느껴지실 거예요.
Q. 이 영화를 대체 아직 보지 않은 관객에게는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요? 스포일러가 되지 않게 설명한다면.
A. 쉽게 생각하시면 돼요. 권선징악적 영화요. 저희 어머니께는 ‘다빈치 코드’를 생각하시면 된다고 말씀드렸어요. 저도 이 영화를 어떻게 홍보해야 할까? 싶어서 레퍼런스를 찾아봤는데 비슷한 영화가 잘 없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또 소재로서 영화를 표현하는 건 좀 겁이 나요. 선입견을 드리게 될까봐요. 그냥 종교적 퍼즐을 맞춰가는 미스터리 스릴러라고 생각해주시면 좋겠어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