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광장의 초입에 있는 스페인 대사관 앞에는 높다란 원주가 서있다. 순결한 성모의 원주(Colonna dell'Immacolata)다. 1857년 성모 마리아 축일인 12월 8일 헌정된 기념탑은 나폴리왕국이 주권자인 교황에게 바치던 공물(Chinea)을 폐지함으로서 빚어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나폴리왕 페르디난드 7세가 건설한 것이다. 1059년에 나폴리의 노르만(Norman) 왕이 바치기 시작한 공물은 18세기 후반에는 은화 7000두카트 규모에 달했다.
성경에 나오는 4명의 인물을 네 귀퉁이에 둔 정사각형의 대리석 기반 위에 높이가 11.8m에 달하는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주세페 오비시(Giuseppe Obici)가 조각한 성모 마리아 동상을 세웠다. 코린트양식으로 주두를 장식한 기둥은 고대 로마시절에 키폴리노(Cipollino) 대리석으로 만든 것으로 1777년 인근에 있는 순결한 성모(Santa Maria della Concezione) 수도원을 건설하면서 발견된 것이다.
원래는 기둥의 꼭대기에 방패를 든 미네르바 여신의 상이 서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주세페 오비시가 조각한 성모상은 순결한 수태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지구본 위에 얹은 초승달 위에 선 성모께서(성모 마리아를 제외한 아담과 이브 이후에 모든 인간에게 원죄를 가져온) 뱀을 때리는 모습이다.
기단에는 아담 타돌리니(Adam Tadolini)가 조각한 다윗왕, 살바토레 레벨리(Salvatore Revelli)가 조각한 예언자 이사야, 카를로 첼리(Carlo Chelli)가 조각한 예언자 에스겔, 이그나지오 자코메티(Ignazio Jacometti)가 조각한 모세의 상 등을 세웠다.
매년 12월 8일 성모마리아의 축일에는 이탈리아 소방청장이 성모의 원주에 헌화를 한다. SPQR 표시로 장식한 꽃다발은 동상의 바닥에, 그리고 또 다른 꽃다발은 성모 동상의 오른팔에 각각 헌정하는데 “플라마스 도마무스, 도나무스 코르다(Flammas domamus, donamus Corda)”라고 외친다. ‘우리는 불을 끄고, 우리의 마음을 드린다’라는 의미다.
스페인 대사관 모퉁이의 골목을 조금 지난 지점을 중심으로 보면 스페인광장은 완전 비대칭의 나비넥타이 모양이다. 성모의 원주가 있는 쪽이 작은 날개가 되고, 스페인 계단이 있는 쪽 광장이 몇 배나 넓다. 그래서인지 스페인계단이 있는 쪽에 사람들이 많이 몰린다. 하지만 스페인 광장 자체는 생각보다 넓지는 않다.
135개의 층계가 들어있는 스페인 계단은 부르봉 왕가의 스페인 대사관과 트리니타 데이 몬티(Trinità dei Monti)교회를 연결하기 위해 건설했다. 1721년부터 1725년 사이에 프랑스의 자금지원을 받아 만들었고, 1725년 희년을 맞아 교황 베네딕토 13세가 축성했다.
교회가 있는 핀치오(Pincio) 언덕과 광장 사이에 있는 가파른 경사를 연결하는 방법을 두고 격론을 벌인 끝에 알레산드로 스페치(Alessandro Specchi)와 프란체스코 데 산크티스(Francesco De Sanctis)의 설계에 따라 바로크 양식의 계단을 건설하게 됐다. 특히 봄에서 여름으로 이어지는 계절에는 화려한 꽃으로 장식해 주변의 전망과 조화를 이뤄 화려하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스페인 계단의 위에는 살루스티아노(Sallustiano) 오벨리스크가 서있다. 받침대를 포함한 높이가 30.45m이고, 오벨리스크만 13.91m에 달한다. 이 오벨리스크는 핀치오(Pincio) 언덕의 살루스트(Sallust) 정원이 있던 장소의 땅속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살루스티아노 오벨리스크라고 부른다.
이집트 오벨리스크를 모방한 점, 살루스트 정원이 서기 410년 아라릭(Alaric) 왕이 이끄는 서고트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 파괴된 점을 고려한다면, 1세기에서 4세기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집트의 파라오, 세티 1세와 람세스 2세 때 상형 문자가 새겨진 점으로 보아 포폴로 광장에 서 있는 플라미니오 오벨리스크(Flaminio Obelisk)를 복제했을 것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이 오벨리스크를 1789년 스페인계단 위에 설치하는 것에 대해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오벨리스크 보다 위쪽으로는 트리니타 데이 몬티(Trinità dei Monti)라고 줄여 부르기도 하는 산티시마 트리니타 데이 몬티(Santissima Trinità dei Monti)교회가 있다. 1494년 파올라(Paola)의 프란시스 성인은 교황 Alexander 6세의 승인을 받아 핀치오 언덕 위에 ‘가장 작은 수도사(Minimite Fiars)’의 수도원을 세웠다.
1502년 프랑스의 루이 12세는 나폴리 침공을 기념하기 위해 수도원 옆에 트리니타 데이 몬티(Trinità dei Monti)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했다. 프랑스풍의 후기 고딕양식으로 짓기 시작했지만, 공사가 지연되면서 결국 현재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 건물로 1585년 완공돼 교황 식스투스 5세에 의해 봉헌됐다. 오른쪽의 첫 번째 예배당에는 피렌체의 매너주의 화가인 지암바티스타 날디니(Giambattista Naldini)가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를 비롯해 세례 요한의 삶을 묘사한 그림들이 걸려 있다.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면 계단 밑 광장에 작은 연못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와 들여다보았더니 작은 배를 형상화해 물에 띄워놓았다. 바라카치아 분수(Fontana della Barcaccia)다. 스페인이 바다를 지배한 것은 작은 배를 띄우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봤다. 바라카치아 분수는 교황 우르바누스 8세가 1623년 피에트로 베르니니(Pietro Bernini)에게 내린 로마의 모든 주요 광장에 분수대를 세우라는 지시에 따라 1627년에서 1629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이다.
분수는 물이 들어차 반쯤 침몰하고 있는 배에서 흘러나온 물이 웅덩이로 떨어지는 모습으로 제작됐다. 일설에 의하면 1598년 티베르 강이 범람했을 때, 작은 배가 스페인광장에 까지 밀려왔고, 물이 빠졌을 때 광장 가운데 좌초돼 있었던 것을 보고 베르니니가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했다.
바라카치아 분수에 공급되는 물은 기원전 19년에 설치된 아쿠아 베르기네를 통해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수압이 낮았다. 따라서 베르니니는 거리보다 약간 낮게 분수대를 설치했다. 모두 7곳에서 물이 흘러나오는데 중앙에 있는 난간동자와 두 군데 있는 태양 모양을 한 사람의 얼굴에서 배 안쪽으로, 그리고 그 밖의 네 군데에서는 배 바깥쪽으로 떨어진다.
스페인 계단의 바로 왼쪽에 있는 건물 2층에는 키츠와 셀리의 박물관이 있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는 폐결핵으로 투병하던 중에 1820년 11월 따듯한 기후가 건강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로마로 와서 이 집에 지냈다. 이미 말기 폐결핵으로 로마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는지 1821년 2월 23일 25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보건당국은 키츠가 지내던 방에 남아있던 모든 것들은 물론 벽까지 긁어내 즉시 불태웠다. 1903년 미국의 시인 로버트 언더우드 존슨이 주동해 키츠가 살던 방 2개짜리 아파트를 구입 복원하는 움직임이 성공을 거두어 미국, 영국, 이탈리아 등에서 후원을 받을 수 있었다. 1906년에 이 집을 구입해 1909년 4월 키츠와 셀리의 기념관으로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이 기념관에는 키츠와 셀리는 물론 바이런, 워즈워스, 로버트 브라우닝, 엘리자베스 바렛 브라우닝, 오스카 와일드 등 많은 작가들의 기념품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다.
스페인 계단의 바로 왼쪽에 있는 집 1층에는 바빙턴(Babington)이라는 영국식 전통찻집이 있다. 이탈리아에 놀러왔던 이사벨 카길(Isabel Cargill)과 앤 마리 바빙턴(Anne Marie Babington)이라는 2명의 영국 여성이 1893년에 창업한 곳으로, 로마에 있는 영어권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가 됐다.
처음에는 두에 마켈리(Due Macelli) 거리에 있던 식당이 잘 되자 주인이 이 장소로 옮길 것을 추천했다고 한다. 생각 같아선 들어가 영국식 차라도 한 모금 맛을 보고 싶었지만 너무 짧은 자유 시간으로는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문을 빼꼼히 열고 실내 분위기를 살피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사실 바빙턴 찻집은 프랑스 소설가 기욤 뮈소가 한국 사람에게는 특별한 장소로 기억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꼭 들어가 앉아보고 싶었다. 기욤 뮈소의 장편소설 ‘종이여자’에서는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는 여주인공 빌리의 목숨을 구하려면 남주인공 밀로가 쓴 책을 손에 넣어야 하는 상황이 나온다.
한권만 남은 이 책은 미국을 전전하다 이탈리아 로마까지 흘러들어 바빙턴 찻집의 서가에 꽂히게 됐고, 한국에서 온 여대생 박이슬이 이를 발견하고 가져가게 된다. 이화여자대학으로 돌아온 박이슬은 미국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이 책을 보내 책은 결국 출발지로 돌아가게 된다. 책을 읽고 공공장소에 놓아 또 다른 사람이 읽을 수 있게 하는 일도 참 재미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