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청와대 국민청원, ‘놀이’면 어때서

[기자수첩] 청와대 국민청원, ‘놀이’면 어때서

기사승인 2019-05-17 05:00:00

지난 월요일 아침 일이다. 7년 만에 회귀한 ‘동물국회’ 정국에 겨우 막 숨을 돌리던 참이었다. 실시간 검색어에 ‘국민청원’ 키워드가 오르기 시작했다. 급작스러운 트래픽 증가로 게시판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

수차례 시도 끝에 접속폭주의 원인을 찾아냈다. ‘자유한국당을 해체해주세요’ 다소 어처구니없는 청원이었다. 동의자 수가 20만 명이든, 100만 명이든 행정부가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삼권분립의 침해라며 게시판의 취지를 깎아내렸다. 청원이 놀이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서 해당 청원들을 필터링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직접민주주의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물론 직접민주주의가 도드라지면 생기는 부작용들이 있다. 집회와 시위의 일상화로 대의정치는 힘을 잃는다. 정부가 직접 해결하는 국민청원은 법치주의를 위축시킨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대개 과소해서 문제가 되었지, 과잉되어 문제였던 적은 적다.

오히려 청원 놀이는 정치에 대한 국민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이바지했다. 투표 날 SNS에 인증샷을 찍어 올리며 투표를 독려하듯 국민청원은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들을 놀이처럼 쉽고 재미있게 끌어당겼다.

이미 필터링은 충분히 이뤄졌다. 청원 규정에 따르면 ▲비속어를 사용한 경우 ▲폭력·선정적·혐오 표현 등 유해한 내용을 담은 경우 ▲개인정보·허위사실·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에는 글을 삭제·숨김 처리할 수 있다. 

해답이 나지 않음에도 청원 게시판이 성업을 이루는 건 국회가 국민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국회는 국민대표자 회의의 준말이다. 공전(空轉)을 거듭하는 국회에서는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할 길이 없다. 공전의 이유가 먹고사는 일과 동떨어져 있다 보니 피부에 와 닿지도 않는다.

답답한 국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오롯이 낼 수 있고 ‘할 수 없다’라는 답변이라도 들을 수 있는 장이 국민청원 게시판이다. 놀이면 어떤가. 국민은 계속해서 청원하고 지적해야 한다. 개선의 대상은 게시판이 아닌 국회다.

엄예림 기자 yerimuhm@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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