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기생충' 이정은 "문광 마지막 대사?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

[쿠키인터뷰] '기생충' 이정은 "문광 마지막 대사?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

'기생충' 이정은 "문광 마지막 대사?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

기사승인 2019-06-14 00:00:00

영화 기생충’(감독 봉준호)에서 가장 기괴하면서도 극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이 문광 역의 이정은이라는 데에는 어떤 관객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비 오는 날, 행복하던 가족들 머리 위에 울려 퍼지는 벨소리와, 빗속에서 나타난 문광의 모습은 기이함 그 자체다. “저는 제가 귀엽게 생겨서 별로 무섭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게 오히려 더 이상했나 봐요.” 최근 서울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은의 말이다.

이정은의 기괴함이 가장 잘, 그리고 먼저 드러나는 장면은 뭐니뭐니해도 식량 창고에서 문을 미는 부분이다. 온 몸을 꿈틀거리며 문을 미는 이정은의 모습은 영화 제목 그대로 기생충 같기도 하고, 사람 같지 않은 그로테스크함을 내뿜는다. 봉준호 감독이 이정은에게 가장 먼저 보낸 콘티도 바로 그 장면이었다고 이정은은 말했다.

“‘옥자개봉 당시에 제게 내년에 스케줄 좀 비워주셨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셨어요. 그 이야기를 잊을 때쯤에 제게 봉준호 감독이 콘티를 몇 장 보냈죠. 문광이 문을 미는 스케치였는데, 문도 없고 뭔가 미는 여자 모습만 있으니까 이게 뭔가 싶었어요. 뭘 여는 건가? 사람이 누운 모습인가? 싶기도 하고. 저도 처음엔 그게 뭔지 몰라 감독님께 물으니 서울 가면 해 볼 모습이다라는 거예요. 기계체조를 평소에 연습해둬야 하나 싶기도 했죠.”

이정은 본인도 문광 역이 그렇게 영화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줄은 몰랐다고 답했다. 지문에는 그저 술에 취해 상처입은 얼굴로 찾아온다고 적혀있었다. 감독의 디렉팅은 최대한 예의바르고 친절하게’. 이정은은 자신이 술에 취해 남에게 예의바르게 굴 때를 떠올렸고, 그렇게 연기했다. 그리고 결과는 그야말로 성공적으로 애매모호했다. 관객 모두 문광을 보며 저 사람이 대체 뭘 하러 왔을까?’ 하고 궁금해하게 된 것이다.

문광은 캐릭터의 끝까지 관객들에게 궁금함을 남긴다. 그녀를 죽인 것은 충숙의 발길질이지만, 문광은 자신의 남편에게 충숙 언니가 나를 발로 찼어라고 말하면서도 그녀를 좋은 언니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그토록 해를 입힌 사람의 행위를 말하면서도 좋은 사람이라니. 아이러니하지만 이정은은 그것이 문광의 사람다운 면이라고 말한다.

“‘충숙이 나에게 그랬던 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건 알지만, 알아둬. 그 사람이 나를 밀었어.’ 그런 뜻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그게 문광의 가장 사람다운 말이라고 생각해요. 이중적인 말들이죠. 남편에게 복수를 해달라는 뜻은 절대 아니지만 이것만은 알아둬라라는 의미 같아요. 문광의 목표는 사실 처음부터 기태 가족과 공생하려던 거였는데, 그런 상태가 돼 버렸잖아요.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라는 아쉬움도 담겨있었겠죠.” 

신 스틸러라는 별명을 가진 이정은이지만 정작 그녀는 조연과 주연을 나누지 않는다. 이야기 안에서 자신이 맡은 인물의 처음과 끝에 대해 항상 열어놓고 생각하며, 그 인물이 이야기 속에서 맡은 역할이 이야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만 고려한다. 

제가 어떤 이야기에서 어떤 역을 맡아도, ‘나는 이 이야기가 너무 좋아!’라고 생각할만한 연기를 하고 싶어요. 공생하는 이야기, 이기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가장 선호하죠. ‘기생충은 그래서 제게는 좀 놀라운 작품이긴 해요. 그간 해왔던 얘기들과 결이 다르거든요.”

“‘기생충을 하며 가장 인상깊었던 건 봉준호 감독의 말이었어요. 저와 동년배신데, ‘제가 남은 기간동안 영화를 몇 편이나 찍을 수 있을까요? 작품을 많이 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앞으로는 정말 재미있는 영화만 몇 편 찍을 겁니다.’라고 말씀하셨죠. 저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 덕분인지 시나리오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이 영화가 대체 어떤 그림으로 완성될까?’하는 기대감이 더 큰 상태로 작업할 수 있었어요.”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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