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의 실사 영화 '알라딘'(감독 가이 리치)이 개봉 20일이 지난 지금도 흥행 순풍 가도를 달리고 있다. 14일(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 '알라딘'의 좌석점유율은 20.8%.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박스오피스에서 선전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엄청난 수치다.주말이었던 지난 9일에는 52.1%라는 좌석판매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원작 애니메이션은 1992년 개봉한 것으로, 속된 말로 ‘볼 사람 다 본’ 내용이다. 하지만 ‘알라딘’이 이처럼 선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잘 만들었다’. 단순히 영화의 그래픽이나 배우들의 연기, 만듦새를 이야기하는 것뿐만은 아니다. ‘알라딘’은 기존 애니메이션의 공식을 답습하지 않고 최근 트렌드인 여성주의에 맞춰 남녀평등적 관점에서 새롭게 구성됐다는 점에서 평단과 관객에게 동시에 호평받았다. 주인공 자스민(나오미 스콧)은 ‘여성들은 말하지 말라’는 악습을 깨고 스스로가 술탄이 된다는 점이 원작과 가장 다른 점이다.
월트 디즈니가 아동을 대상으로 여성주의를 담은 작품을 제작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라푼젤’(2010) ‘메리다와 마법의 숲’(2012) ‘겨울왕국’(2014) ‘모아나’(2016)등이 그 라인업이다. 디즈니에서 제작해왔던 예전 애니메이션들과는 달리 구시대적인 여성관을 답습하지 않는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왕자를 기다리던 백설공주(1937)나 오로라 공주(1959)와 달리 최근 디즈니 동화 속 여성 주인공들은 모험을 떠나거나 가족을 구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나선다.
2017년 영국의 컨설턴트인 사라 홀은 자신이 두 아이의 어머니임을 밝히며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던 중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어린 아이들에게 잘못된 성 관념을 갖게 하며 무책임하다고 주장했다. 홀은 왕자가 키스로 공주를 깨우는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잘못된 성적 행동과 더불어 여성주의에 대해 논하며 해당 동화를 저학년의 독서목록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처음 읽어주는 이야기인 동화들이 다음 세대에 구시대적 여성관을 전하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월트 디즈니 또한 이러한 가치관을 작품 속에 녹여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어린 아이들이 가장 많이 보는 매체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감안할 때, 21세기의 아이들이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그대로 접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개봉을 앞둔 ‘토이스토리 4’에서도 이 같은 변화가 가장 눈에 띈다. ‘토이스토리 1’(1995)에서 우디의 여자친구로 나오던 아름다운 도자기 인형 보핍은 ‘토이스토리 4’에서 드레스를 벗어던지고 우디를 모험의 세계로 이끈다. 머뭇거리는 우디와 달리 보핍은 진취적인 태도로 일관하며,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요즘 디즈니 공주들의 모습을 보인다.
여성주의 바람은 비단 아동 대상뿐만은 아니다. 최근 할리우드를 위시한 국내 작품까지, 많은 작품에서 여성주의의 약진이 눈에 띈다. 지난 3월 개봉한 마블 히어로 영화 ‘캡틴 마블’은 캐롤 댄버스 대위(브리 라슨)의 개인적 성장담을 다루며 ‘페미니즘 영화’로 거론됐다. 국내에서는 본의 아니게 평점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최근 개봉한 ‘맨 인 블랙: 인터내셔널’의 경우 예고편에서 ‘맨 인 블랙’이라는 단체의 이름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인공 몰리(테사 톰슨)와 에이전트 O(엠마 톰슨)의 문답이 담기기도 했다. “맨 인 블랙에 온 걸 환영한다.” “‘맨’(MAN)인 블랙이요?” “나도 알아. 바꾸려고 노력 중이야.”라는 두 사람의 웃음 나오는 대화는, ‘맨’이라는 남성대명사가 더 이상 인류를 대변하는 시대가 아님을 시사한다.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