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인터뷰] '비스트' 이성민 "한수 역, 연기하며 늘 스트레스 쌓였다"

[쿠키인터뷰] '비스트' 이성민 "한수 역, 연기하며 늘 스트레스 쌓였다"

'비스트' 이성민 "한수 역, 연기하며 늘 스트레스 쌓였다"

기사승인 2019-06-25 07:00:00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영화 ‘비스트’(감독 이정호) 개봉을 앞두고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성민은 연신 같은 말을 되뇌었다. 영화는 잘 나왔지만 배역도 힘들었고, 에너지도 많이 썼고, 스트레스도 엄청나게 쌓였다는 것이다. “영화를 찍는 내내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 가는데, 대체 엔딩에서는 얼마만큼의 폭발력을 보여줘야 할지도 걱정됐고요. ‘지금 이러면 나중에는 어쩌나’ 싶은 마음이 있어 여러 가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비스트’의 시나리오를 보고 이성민은 예전에 배우 이선균이 주연했던 영화 ‘끝까지 간다’를 떠올렸다고 한다. 하나하나 사건이 꼬이면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주인공을 주변 상황이 쪼아댄다는 점에서는 ‘비스트’도 결이 같다. 하지만 ‘비스트’는 사건을 따라가기보다는 그 사건 때문에 바뀌는 인물의 감정, 심리를 따라가는 영화다. 이성민은 ‘비스트’의 시나리오를 보고 사건 위주로 갈 것이라고 생각했고, 막상 영화 크랭크인 후에는 감정 소모가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아 당황했다고 말했다.

“이정호 감독님은 항상 배우가 생각한 이상으로 연기하게 만드는 분이세요. 배우가 ‘이렇게 연기해야지’하고 예상치를 잡고 현장에 가면 그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분이랄까요. 그러다 보니 같은 장면이라도 첫 촬영과 마지막 촬영의 감정 차이가 많이 나는 편이에요. 그런 지점을 하나하나 배우로서 찾아가는 과정이 매력적이기도 하지만, 배우에게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일이니 부담스럽기도 하죠.”

‘비스트’를 찍으며 이성민은 희한한 경험을 했다고 털어놨다. 배우들의 경우 자신이 맡은 역할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성민은 대부분 그런 경우가 없는 편이다. 하지만 ‘비스트’의 한수는 조금 달랐다. “저는 배역처럼 되는 것을 견지하는 스타일이라 컷 소리가 나면 빨리 빠져나와요. 그런데 한수 역은 제가 연기하며 좀 동화됐던 기억이 나요. 평소에 누굴 때리거나 하는 사람도 아니라, 늘 배역을 하며 느끼는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던 것 같아요.”

이성민의 말을 빌리자면 정한수는 그와 맞지 않는 캐릭터다, 영화 ‘비스트’의 제목은 “누구나 마음 속에 짐승 한 마리쯤은 키우고 있다”는 영화 속 대사에 기인한 것이지만, 이성민 스스로는 그런 것이 별로 없는 사람이라고. 악하거나 못된, 혹은 남에게 잔인하게 구는 면이 거의 없는데도 극히 작은 부분을 끄집어내서 확대해 연기하다 보니 정한수를 연기하며 겪는 스트레스는 엄청났다. 예민해지면서도 피곤해 촬영 내내 어찌 보면 늘 피곤한 정한수와 동일한 모습이 되어갔는지도 모른다고 이성민은 말했다. 

“한수는 경찰 일을 오래 하며 피로감이 쌓인 사람이에요. 악당이 없고 건강하고 밝은 사회를 꿈꾸며 경찰이 됐지만 범죄자는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고, 한계에 다다르니 피곤한데 반장님이 ‘이 사건만 맡아라’라며 꼬신 거죠. 한수는 이 일을 빨리 그만두고 편안해지고 싶은 갈망이 있는 캐릭터예요. 이야기가 결국은 파국으로 가게 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큰 이유는 한수의 ‘쉬고싶은 마음’이죠. 꿈꾸고 있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 빨리 사건을 봉합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크달까요.”

‘믿고 보는 배우’를 꼽으라면 분명 그의 이름을 말하는 데 그 누구도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만큼 인정받고 여러 작품을 해온 그이지만, 바쁜 만큼 이미지 소비나 고착화에 대한 고민도 분명 있을 것이다. ‘보안관’ ‘공작’ ‘목격자’등 결도 다르고 각자 개성도 다른 이들을 섬세하게 연기해왔지만, 누군가는 그 섬세함에 아랑곳하지 않고 ‘아저씨들 많이 나오는 어두운 영화’로  축약해버리곤 하기 때문이다. 40대 남자 배우로서 쓰일 곳이 많다는 건 축복이지만 관성적인 연기를 하게 될 가능성을 언제나 염두에 두어야 하는 피로함에 비하면, 다소 억울하게도 느껴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저는 캐릭터가 고착화될 염려를 크게 하진 않아요. 같은 배우가 연기한다고 해서 같은 캐릭터가 될 수는 없거든요. 하지만 캐스팅 측면에서는 분명 그런 지점이 없지 않아요. 우리나라의 드라마나 영화 캐스팅은 대부분 이미지 캐스팅으로 이뤄지거든요. ‘검사 역’ 하면 누구를 떠올리는 것처럼, 그 배우의 이미지를 가져다 쓰는 경향이 좀 있죠. 저 같은 경우에도 비슷한 이미지의 역할이 주로 들어오지, 평소 보여준 역할에 비해 색다른 이미지가 들어오는 일이 드물어요.”

“예를 들자면 제가 드라마 ‘골든타임’ 대본을 받았던 때가 있겠네요. 그 무렵의 저는 코믹한 캐릭터를 많이 했어요. 그 때 갑작스럽게 ‘골든타임’ 대본을 받고 깜짝 놀랐죠. 아, 이 작가님이 혹은 감독님이 나를 이렇게도 봐주는구나 하고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사실 캐스팅이라는 건 배우의 문제도 있겠지만 제작자나 연출자, 작가의 문제일 수도 있거든요. 같은 이미지로만 캐스팅하지 않고, 변주를 하는 시도를 다들 한다면 배우들도 같은 이미지를 소모하지 않게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제작자로서는 위험한 발상일 수 있으니까, 관객분들 보시기에는 비슷한 영화가 나오게 되는 것일 듯 해요.”

마지막으로 이성민은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작품을 선택할 때 제게 역할이 오는 것이 감사하고, 뭐든 해야 하는 입장이긴 해요. 하지만 역시 첫 번째로 보는 건 이야기예요. 제가 할 수 있느냐, 그리고 얼마나 흥미있는 이야기인가가 중요하죠. ‘비스트’도 이야기가 좋았고 재미있었어요. 이 정도의 한수라면 제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발을 들여놓고 나니 힘들긴 했지만요. 꽉 조이는, 긴장감 있는 스릴러 영화가 보고 싶다면 비스트를 선택하시라고 말씀드릴 수 있어요.”

‘비스트’는 오는 26일 개봉한다. 15세가.

이은지 기자 onbg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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