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종영한 MBC 월화극 ‘봄밤’은 안판석 감독의 작품답게 입체적으로 그려진 인물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중 권기석(김준한)은 연인인 이정인(한지민)에게 무서운 집착을 보이는 인물로,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시청자의 입길에 올랐다. 누군가는 그를 지질하고 한심하다고 평했고, 누군가는 불쌍히 여겼다. 한 인물을 두고 다양한 목소리가 쏟아진 것이다.
최근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난 김준한은 자신이 연기한 기석 역할에 관해 “다양한 시선이 존재했다”면서 “(인물을 둘러싼) 다양한 반응들이 ‘봄밤’만의 매력인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인물이나 상황을 규정하기보다 시청자에게 생각할만한 여지를 남겼다는 설명이다.
“기석을 두고 ‘불쌍하다’부터 ‘꼴 보기 싫다’ ‘왜 저렇게까지 하느냐’ 등 다양한 반응이 있었어요. 이렇게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작품의 흥미로운 점 같아요. 작품 안에서 어떤 것을 정의하거나 강요하는 분위기를 내지 않았죠. 덕분에 인물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안판석 PD님이 그런 견해로 작품을 만들어서, 시청자 반응도 다양했던 것 같고요.”
이야기가 진행되면 될수록 극단으로 치닫는 기석이 김준한의 눈엔 어떻게 보였을까. 김준한은 “배우로서 자신이 맡은 인물을 이해할 수 없으면, 연기에 임할 수 없다”면서 “인물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미루고 연기를 할 때만큼은 기석을 이해하려 노력했다”고 귀띔했다.
“인물에 관한 판단은 배제하며 연기했어요. 자칫 잘못하면 그를 바라보는 신의 관점으로 연기하게 될 수도 있거든요. 작품이 나오고 나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각각의 평가들이 일리있는 의견이라는 생각은 들었어요. 작품과 인물의 어떤 부분을 주목해서 보느냐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한 작품을 두고 여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유독 자연스러웠던 인물 표현에 대한 공은 안판석 PD에게 돌렸다. 김준한은 안 PD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너무 좋은 분”이라는 말을 반복하며 “배우를 존중하고,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분”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번에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안판석 PD님 작품에선 배우가 모두 자연스럽게 연기하잖아요. 그게 안 PD님의 역량이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자면 배우가 반복 연기를 하지 않도록, 딱 필요한 것만 한 번에 촬영하세요. 애초에 배우들도 딱 한 번만 촬영한다는 걸 알아서, 최선을 다하죠. 사실 처음엔 작업 방법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무엇인가 예쁘게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처럼 가자고 생각을 고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촬영하면서 실수가 있어도 마치 일상에서 그런 것처럼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더라고요.”
‘봄밤’ 이전에도 주로 말끔히 양복을 차려입은 역할을 했던 김준한은 “주변 사람들은 나를 ‘슈트’ 느낌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하며 웃음을 보였다. 일상에서의 김준한은 ‘허당’에 가깝고 서툰 부분이 많다는 것. 실제 연애에 대한 솔직한 속내도 털어놨다. 권기석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저는 연애할 때도 서툴러요. 그런데 서툴다는 걸 알고 조금씩 나아지려고 해요.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제가 연기한 송지원을 보면서 이렇게 하는 게 멋진 거고, 따뜻하다는 것을 배우는 거죠. 반면에 권기석 같은 어설프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가진 인물을 보면서 왜 이렇게 하면 안 되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거죠. 사랑은 마음 이끌리는 대로 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계속 상대를 눈여겨 봐주고, 상대를 위해 노력해야 해요. 그래야 관계가 오래 지속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사랑은 계속 변하니까, 함께 변화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하는 거죠.”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씨엘엔컴퍼니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