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한 의사, 치료받지 못한 환자, 고소당한 기자 [안기종의 환자샤우팅]

사직한 의사, 치료받지 못한 환자, 고소당한 기자 [안기종의 환자샤우팅]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기사승인 2025-12-30 09:52:01
나는 최근 보건복지부 대통령 업무 보고와 관련해 한국일보 기자와 통화했다. 통화 말미에 기자는 올해 7월 30일부터 동국대경주병원에서 발생한 혈액종양내과 의료공백 사태를 보도한 것으로 해당 병원의 사직 의사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해당 기사는 혈액종양내과 전문의 1명이 홀로 약 200명의 환자를 담당하다 사직하면서 의료공백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환자들이 겪은 혼란과 피해를 다룬 내용이었다. 

명예훼손인가, 고통받는 환자들의 목소리인가 

내가 한국일보 기자에게 제보자를 연결해 기사가 보도되었는데, 해당 기사로 인해 기자가 형사고소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미안함과 책임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8월 13일 자 한국일보 기사 “200명 홀로 맡던 암 전문의 사직··· 이틀 전 사직 통보, 지역의사·가족 막막”과 환자의 부고 소식을 알린 8월 28일 자 기사 “어느 지방 병원 장례식장에서 온 부고”를 여러 차례 반복해 읽었다. 
기자에게서 들은 고소 사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사직 의사의 퇴사 이유가 사실과 다르다는 주장이고, 또 하나는 사직 의사에게서 치료받은 환자가 200명보다 적다는 주장이었다.

2025년 8월 13일 자 “200명 홀로 맡던 암 전문의 사직··· 이틀 전 사직 통보, 지역의사·가족 막막” 제목의 한국일보 기사 일부 (출처: 한국일보)


그러나 기사에는 사직 의사가 한국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자세한 퇴사 사유는 알려드리기 어렵다”고 답한 사실이 명시되어 있고, 퇴사 사유는 병원 관계자의 설명을 인용해 보도되었다. 또한 환자 수 역시 보건복지부와 경주시 보건소, 경주 의료계 관계자 취재를 통해 확인된 내용이었다. 기사 어디에도 사직 의사의 실명이나 특정이 가능한 정보는 공개되어 있지 않다.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가 성립하려면 ‘비방할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제보자를 연결했고, 취재·보도 전 과정을 알고 있는 나는 이 기사에 ‘비방의 목적’이 있었다는 주장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비방은커녕 오히려 환자가 치료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했던 기자의 모습만 기억된다. 

의사 1명에 모든 것을 맡겨온 경주권 지역 책임의료기관의 현실

우리 부모님은 경주에 거주하고 계신다. 올해 89세인 아버지가 노환으로 잦은 응급상황을 겪으면서, 나는 경주와 울산의 여러 병원을 오가며 지역의료 현실을 체감해 왔다. 동국대경주병원은 경주 지역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이다.

이 병원에는 지난해 혈액종양내과가 신설되어 전문의 2명이 진료를 시작했지만, 1명이 먼저 사직했고, 이후 남은 1명의 전문의가 약 200명의 외래환자를 홀로 담당해 왔다. 추가 전문의 충원이 이뤄지지 않자, 결국 남은 전문의 1명마저 사직하면서 올해 7월 30일부터 대규모 의료공백 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제보자의 아버지와 같이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 중이던 암 환자들은 급히 포항이나 울산으로 전원해야 했고, 경주시 보건소에는 보호자들의 민원이 쇄도했다.

“이틀 후 진료 중단”이라는 병원의 일방적 통보

제보자인 림프종 환자의 아들과 나는 처음 통화한 날은 7월 28일이었다. 바로 그날, 병원은 환자들에게 혈액종양내과 진료가 이틀 후인 7월 30일부터 중단된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환자는 올해 3월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86세의 고령이었지만, 해당 병원의 혈액종양내과 의사를 믿고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시작했고 치료 경과도 나쁘지 않았다. 퇴원을 앞두고 폐렴에 걸렸고, 그 와중에 진료 중단 통보를 받았다.

급히 대구의 상급종합병원으로 전원을 시도했지만,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그 사이 폐렴은 더욱 악화해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이후에는 전원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혈액종양내과 전문의가 없는 상황에서 환자는 흉부외과 등 다른 진료과 의사들에게 치료받다가 결국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정부도 보건소도 “방법이 없다”는 말뿐, 환자는 어디로 가야 하나

이런 상황에 환자의 아들은 혼자 남은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의 사직으로 동국대경주병원 환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세상에 알려 정부가 나서 이러한 사태를 신속히 해결해 달라며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 제보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에 연락해, 관할 보건소를 통해 제보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7월 29일, 제보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는 회신을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의료인이 사직해 의료공백이 발생하더라도, 정부나 보건소가 취할 수 있는 법적 조치는 사실상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은 병원에 신속히 전문의 채용을 권고하는 것뿐이었다. 

의료인에게도 사직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암과 같은 중증질환 환자를 두고 떠날 때는 충분한 전원 기간 확보와 같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되어야 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는 이번 제보가 지역의료 공백으로 인한 환자들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정부와 국회에 지역의료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입법적 개선을 촉구할 중요한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보도자료 배포를 결정하는 한편, 지역의료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한국일보 기자에게 취재를 요청하고 제보자인 환자의 아들을 연결했다.

"혹여 치료에 불이익이 갈까”, 제보자가 삼켜야 했던 걱정들

2025년 APEC 정상회의가 올해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경주에서 열렸다. (출처: 경주시청 공식 누리집)


당시는 경주에서 열릴 2025년 APEC 정상회의를 약 3개월 앞둔 시점으로 준비가 한창일 때였다. 

제보자는 이런 상황에 경주에서 가장 큰 병원에서 혈액종양내과 의사 부족으로 의료공백 사태가 발생했다는 기사가 다수의 언론에 보도될 경우 병원이 비난을 받고, 그 여파가 환자 치료에 어떤 불이익으로 돌아가지 않을지 크게 걱정했다. 이에 한국환자단체연합회에서는 보도자료 배포 대신 보건복지부에 재발 방지 관련 제도와 입법을 요청했다. 

한국일보 기자에게도 의사 개인 비난이 아닌 의료공백의 현실과 재발 방지 대책에 초점을 맞춰 보도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자 역시 환자의 치료를 최우선으로 고려해, 감정적 비난 대신 사실관계와 제보자가 의사에게 보낸 절제된 편지 내용을 중심으로 기사를 구성했다. 이렇게 8월 13일 자 한국일보 기사와 환자가 사망한 8월 28일 자 부고 기사가 보도되었다.

환자단체 대표가 함께한 림프종 환자의 마지막 30일

나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이면서 한국백혈병혈액암환우회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림프종은 혈액암의 일종이다. 나는 7월 28일부터 환자가 사망한 8월 28일까지 한 달 동안 제보자와 거의 매일 통화했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내가 목격한 제보자는 아버지가 연고지에서 편안하고 최선의 치료를 받게 해드리고자 백방으로 노력하는 효심 지극한 아들이었다. 그가 동국대경주병원을 선택한 것은 아버지를 위한 최선의 결정이었을 뿐, 결코 그가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할 이유는 아니었다. 

86세 고령의 림프종 환자에게는 유일한 완치 방법인 조혈모세포이식이 불가능하다.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와 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선택하면 생명 연장의 가능성은 있지만, 합병증으로 사망할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반대로 수혈이나 진통제 처방과 같이 소극적인 치료를 하면 생존 기간은 짧지만, 삶의 질을 유지하며 가족과 함께 남은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낼 여유가 생긴다.
경주에 거주하는 환자가 적극적인 치료를 선택하면 서울이나 대구의 상급종합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소극적인 치료를 선택하면 가까운 경주나 포항, 울산의 2차 병원에서 치료받는다. 

제보자는 림프종 진단을 받았을 때 소극적인 치료를 할지 아니면 서울이나 대구에 가서 적극적인 치료를 할지 고민스러웠다. 그때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인 사직 의사가 동국대경주병원에서도 림프종 치료가 가능하다며 권유해 믿고 치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의사는 치료를 시작한 지 4개월 만에 사직하고 병원을 떠났다.

“아버지를 내가 죽인 것 같다”는 유족의 평생 갈 죄책감

한국일보 기자와 통화를 마치고 제보자에게 전화했다. 제보자는 경주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경주에 내려가면 카페에 한번 가보고 싶다며 안부를 전하면서 조심스럽게 한국일보 기자에게서 전화가 왔는지 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기자에게서 전화 온 적은 없다고 했다. 제보자는 아직 한국일보 기자가 형사고소를 당한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카페 위치를 묻자, 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보낸 슬픔에 본인은 아직 카페에 나가지 못하고, 현재 아내가 카페를 운영 중이라고 했다.

제보자는 “아버지가 병원과 의사를 잘못 선택한 본인 때문에 일찍 돌아가신 것 같다.”며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86세 고령에 림프종 진단을 받고 적극적인 치료를 하면 50% 이상 사망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제보자는 “고령의 환자가 림프종 치료 중 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은 본인도 알고 있다. 하지만 혈액종양내과 의사의 치료를 받지 못한 채 한 달을 버티다 돌아가신 건 너무 억울하고, 아버지께 죄송스럽다.”고 했다. 

제보자는 치료할 병원을 서울이나 대구의 상급종합병원이 아닌 혈액종양내과 의사의 말만 믿고 2차 병원인 동국대경주병원을 선택했다. 그런데 1명뿐인 혈액종양내과 의사가 전원할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주지 않고 치료 4개월 만에 갑작스럽게 사직했다. 이로 인해 아버지가 혈액종양내과가 아닌 흉부외과 등 다른 진료과 의사에게서 치료받았다. 

병원은 경주에서 열리는 2025년 APEC 정상회의 준비에 악영향이 미칠까 봐 단체의 보도자료나 기자의 언론 기사 보도를 막는 것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사직한 혈액종양내과 의사는 돌아와 달라는 환자들의 간절한 요구를 외면했다. 그 한 달 사이 제보자의 아버지는 사망했다. 혈액종양내과 전문의가 아닌 다른 진료과 전문의가 치료해서 환자의 아버지가 일찍 사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제보자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에게 치료만 받았어도 이렇게까지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사직한 의사에게 책임은 없는가?

사직 의사가 한국일보 기사로 얼마나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는지, 사회적 명예가 실추되었는지, 병원과 어떤 갈등이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혈액종양내과 전문의를 믿고 지역 2차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을 선택한 86세 림프종 환자가 갑작스러운 사직으로 혈액종양내과 전문의 부재 속에 다른 진료과 치료를 받다 한 달 만에 사망했다. 그 아들은 평생 지울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이 사실을 알린 기자를 형사고소한 사직 의사의 선택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국일보 기사에 실린 환자의 아들이 사직 의사에게 쓴 편지 일부를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만약 교수님께서 병원을 떠날 계획을 조금이라도 일찍 알려 주셨더라면, 저희는 치료 대신 남은 시간을 함께하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재발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가족 모두가 납득했을 것입니다. 교수님도 잘 아시듯 항암치료 이후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런데 전문의가 부재한 상태로 고령의 환자가 남겨진다면, 그 위험과 부담은 고스란히 환자와 보호자의 몫이 됩니다. 

교수님의 개인적인 사정이나 병원과의 사정을 이해하려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나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로서, 이번 결정과 그 과정을 저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저 개인에게도 평생 지울 수 없는 치명적인 기억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저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죄책감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선택을 바꿀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를, 저희는 잃었습니다. 

다만, 보호자로서 이 말씀을 전하지 않고는 마음을 놓을 수 없어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그동안 진심으로 감사드렸고, 동시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com
이찬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