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오동 전투’는 제가 이유 없이 선택하고 만든 첫 영화예요. 만드는 게 너무 당연했거든요. 오히려 카메라로 뭔가를 찍으며 일하는 사람으로서 늦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근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영화 ‘봉오동 전투’의 원신연 감독은 인터뷰 내내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봉오동 전투’에 대한 반응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까봐 걱정하고 또 걱정했다. 영화 개봉 직전에 진행한 인터뷰라 더 예민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그의 말엔 확신이 가득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했고 잘 담아냈다는 자신감이 보였다. 먼저 원 감독은 자신이 ‘봉오동 전투’를 만들며 걱정한 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역사 왜곡에 대한 걱정이 많았어요. 그 다음이 고증에 대한 오류였고요. 영화 속 캐릭터가 그 시대에 살아있는 캐릭터가 아니라 현대적으로 보여서 관객들에게 괴리감을 주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제일 많았어요. 역사적 고증에 있어 오류나 왜곡은 철저하게 준비하고 조사한다 해도 실체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최대한 조심하게 돼요. 사실 창작 작업은 즐거운 작업이에요. 없는 걸 만들어내고 만들어낸 것에 생명을 부여해서 관객들이 보고 융화되거나 재미를 느끼죠. 감동 받거나 철학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역사 영화는 분명 제한된 면이 있어요. 조심해야 될 것이 많죠. 순수 창작물보다 해석할 여지도 많고요. 시나리오 작업할 때 그런 부분들이 어려웠어요.”
원신연 감독은 “이렇게 공부했으면 정말 좋은 대학 갔을 것 같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던지며 웃음 지었다. 그만큼 당시 역사에 관한 공부를 많이 했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역사 자료를 많이 찾아본 수준이 아니었다. 배경에 등장하는 소품 하나까지 어떤 자료를 근거로 만든 것인지 설명하는 설정집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봉오동 전투’는 이미 7~8년 전부터 영화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었던 소재였다. 청산리 전투보다 덜 알려진 독립군 승리의 역사를 영화로 재현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봉오동 전투’를 준비하던 제작사 관계자와 감독들도 많이 만났다. 대부분 극적인 요소를 더 넣어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봉오동 전투’를 준비하면서 극적인 요소를 넣자는 제안을 많이 들었어요. 실제 기록에 영화적인 걸 덧입히는 것보다는 더 영화적인 분위기로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제안이었죠. 완성된 ‘봉오동 전투’엔 홍범도 장군이 등장하지 않지만, 같은 소재를 준비하던 분들은 대부분 홍범도 장군 중심의 이야기를 생각하셨어요. 전 반대였어요. 사실에 근거한 영화로 만들고 싶었죠. 철저히 기록에 남아있는 역사를 중심으로 만들면서 시대정신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을 지키고 싶었어요. 지금의 ‘봉오동 전투’는 남아 있는 기록에 독립군의 줄거리와 사연을 입혀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에요. 영화적인 설정으로 관개들의 흥미, 집중도를 높이는 것 보다는 그 시대가 더 많이 느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봉오동 전투’는 개봉 전 환경파괴 논란으로 진통을 겪었다. 지난해 11월 강원도 동강 유역에서 촬영해 보호식물인 동강 할미꽃이 멸종시켰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에 ‘봉오동 전투’ 측은 지난 6월 원주군청의 허가를 받고 촬영했으나 환경청과 논의가 누락되는 실수가 있었다고 사과했다. 이후 복구 작업에 나섰고 동강 촬영 분량을 폐기한 후 재촬영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다시 이 논란이 언급되자 거꾸로 환경단체에서 논란에 왜곡된 부분이 있다는 입장도 밝혔다. 원 감독은 조심스럽게 환경 관련 이야기를 전했다.
“속이 상해요.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환경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어요. 전투 영화니까 총과 포탄을 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규모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환경을 신경 안 쓴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매일 회의할 때마다 환경 얘기를 했어요. 촬영 일차표에 ‘동물이 움직이니까 자동차 경적을 울리지 마십시오’, ‘풀 밟지 마십시오’라고 적혀 있고 그게 다 남아 있어요. 촬영하기 전부터 그렇게 조심하면서 진행했어요. 동강 촬영에 들어갈 때도 적법절차를 밟았어요. 허가를 받고 들어갔는데 환경청에 또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걸 환경 운동 하시는 분들을 통해서 뒤늦게 알게 됐어요. 그 이후에 내셔널 트러스트나 환경회의 등 그 분들과 환경적인 입장에서 저희가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 조항과 기준을 만들자고 했어요. 지금까진 그런 매뉴얼이 없었거든요. 사실 카메라를 들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것부터 뭔가를 밟고 소음을 내는 것 자체가 환경 훼손의 시작이에요. 피디협회와 감독협회와도 연계해서 드라마나 광고 촬영을 할 때 필요한 매뉴얼을 만들고 배포하고 있어요. 부정적인 일이 발생했으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게 가장 정확한 얘기 같아요.”
마지막으로 원 감독은 ‘봉오동 전투’를 만날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국뽕’이라는 비판에 답할 수 있는 이야기도 했다. 그는 ‘국뽕’ 대신 ‘긍지’라는 표현을 썼다.
“영화를 보시는 관객 분들도 분명 느끼실 거예요. 저 상황에서 인물이 좀 더 저렇게 가면 끝이라고요. 영화가 자신을 자극한다는 걸 아시는 거죠. 어떤 이야기나 감정으로 자극하든 충분히 느껴져요. 만드는 사람은 더 잘 느껴요. 어떻게 하면 관객들을 감정을 자극할지 정말 잘 알죠. 그 경계를 어떻게 정하느냐가 쉽지 않은 게 문제예요. 전 ‘국뽕’이 아니라 긍지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모든 걸 바쳐서 지켜낸 나라에서 우리가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잖아요. 그분들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관객들이 판단하실 것 같아요.”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 사진=박효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