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리뷰] ‘유열의 음악앨범’ 묵묵히 제 갈 길 가는 엇갈림의 멜로

[쿡리뷰] ‘유열의 음악앨범’ 묵묵히 제 갈 길 가는 엇갈림의 멜로

‘유열의 음악앨범’ 묵묵히 제 갈 길 가는 엇갈림의 멜로

기사승인 2019-08-23 15:06:05


우연히 알게 된 누군가와 긴 시간 엇갈림과 만남을 반복한다면, 그가 내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다면, 그럼에도 만남을 더 이어가기 힘들어진다면, 그 순간 라디오가 흐른다면. ‘유열의 음악앨범’(감독 정지우)은 머리로 계산되지 않는 문제를 감성과 시간으로 풀어내는 영화다. 마치 라디오 속 사연과 신청곡을 듣는 듯, 조금씩 풀어내는 미수와 현우 두 사람의 이야기에 어느 순간 젖어든다.

1994년 10월 엄마가 남겨준 빵집을 운영하던 미수(김고은)는 아침부터 두부를 찾는 고등학생 현우(정해인)를 만난다. 빵집에서 함께 일하며 설렘을 느끼던 현우는 갑자기 어느 날부터 나오지 않는다. 이후 1997년, 2000년, 2005년까지 미수와 현우는 잠깐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한다. 우연에서 시작했지만 어느 새 필연이 된 두 사람의 인연은 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한다.

‘유열의 음악앨범’이 보여주는 건 분명 미수와 현우가 만들어내는 설렘과 순수한 사랑을 그린다. 하지만 사랑의 동력이 되는 건 반복되는 엇갈림과 시간의 축적이다. 휴대전화가 없어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시대적 환경은 엇갈림의 이유가 됐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과 호감으로 시작한 관계였다. 서로를 기다리고 그리워하는 시간이 쌓여 가벼웠던 감정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사랑 이야기로 시작한 영화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인생 이야기로 바뀐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과 그의 삶을 받아들이는 건 다른 문제다. 과연 기적은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유열의 음악앨범’은 더하지 않고 덜어낸 영화다. 기존 멜로영화들이 신선한 소재로 시작해 진부한 결말에 다다랐던 것과 다르다. 90년대, 라디오, 음악, 청소년 범죄 등 다양한 소재를 손에 쥐고 있지만 그 어느 쪽으로 휩쓸리지 않고 처음 시작한 길을 끝까지 걸어간다. 덕분에 운명이나 사랑 같은 거창한 상징을 둘러싼 이야기를 창밖에서 바라보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대신 평범하지만 반짝거리는 두 남녀의 청춘을 책을 넘기듯 한 장씩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누군가의 사랑을 응원하거나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감정에 공감하고 내 기억을 떠올리며 위로하고 싶어진다.

엇갈림이 반복되는 설정이 인위적으로 느껴지는 순간도 찾아온다. 잘 지낼 수 있었던, 질 살길 바라는 두 사람을 감독이 일부러 떨어뜨려 놓는 것 같은 느낌에 거부감이 들 수 있다. 대본과 배우의 힘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배우 김고은은 어떤 장르의 어떤 역할을 맡아도 진짜 같은 순간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하다는 걸 다시 알려준다. 미수의 언니 은자 역할을 맡은 배우 김국희는 조연상을 휩쓸어도 아깝지 않을 놀라운 감정연기를 보여준다.

오는 28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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