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도 탑골공원에 노인들이 올까 의문을 가져 직접 가보기로 했다. 추석 당일 오전에도 노인들이 팔각정과 벤치에 앉아 쉬거나 이야기하고 있었다. 차례는 지냈는지, 가족들이랑 모여서 시간을 보내다 오셨는지 여러 노인에게 물었지만 낯선 이의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가라고 했다.
그러다 한 노인이 대답을 해줬다. 탑골공원에 자주 오느냐고 묻자 집이 근처라 그냥 종종 나오는 것이지 자주 나오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집에 있으면 애들이 눈치를 보니 불편해할까 봐 차례만 지내고 공원을 찾았다는 것. 그래도 명절인데 가족이랑 있어야지 않겠냐는 질문에 “애들이 싫어해. 나도 바람 쐬는 게 더 좋다”라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노인들과의 대화도 비슷했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노인은 “친구들 만나는 게 더 좋다”며, 이어폰을 귀에 꽂고 트로트를 듣고 있던 한 노인은 “가족이 찾아오지 않는다”면서 탑골공원과 종묘 공원을 배회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기를 두려면 탑골공원, 바둑을 두려면 종묘 공원을 오간다는 것.
오전 10시쯤 되자 50여 명으로 늘었다. 노인들끼리 말을 건네는 첫 마디로 “명절은 잘 쇘는가”라고 묻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에 대한 답변은 명절과 다른 이야기가 많았다. 팔각정에 앉아 큰 소리로 해외에 있는 딸과 통화하는 티를 내는 노인도 있었지만 외로워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모여서 하는 얘기의 주제는 대부분 정치였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래도 잘했지”, “옛날이 좋았지, 요새 애들이 뭘 알아”, “조국 법무부 장관 문제가 많아”, “문재인이가 나라를 말아먹고 있어” 등의 발언과 지역 비하 등 다소 과격한 표현도 많았다.
젊은 사람들은 과거에 경험해보지도 않고 책으로만 역사를 배워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노인도 있었다. 다가가서 눈을 마주치면서 경청해봤다. 한 노인이 다가와 “요새 젊은 애들은 노인이랑 대화하려고 하지를 않아. 배운 것도 다르고 경험한 것도 다르니 이야기도 잘 통하지 않고...”라며 “젊은 친구가 노인네 이야기를 들어주니 고맙다”고 말했다.
추석이라고 해서 탑골공원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족 대명절 추석에도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서 있을 뿐이다. 내년, 내후년에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갈 곳 없는 노인들이 몰리는 탑골공원. 노인 빈곤의 문제와 함께 노인의 즐길 거리에 대한 문제의식도 필요하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정녕 없는 걸까.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