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금토극 ‘배가본드’의 차달건(이승기)은 첩보액션물 주인공 치고는 평범한 이력을 가졌다. 국가가 신분을 보장하는 비밀요원도 아니고 특수훈련도 받지 않았다. 다만 그는 얼떨결에 키우게 된 어린 조카를 책임지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고 때리고 맞고 넘어지는 스턴트맨이었다.
액션배우라는 꿈이 있지만, 더 나은 생계를 위해 스턴트마저 관뒀을 때 달건은 비행기 사고로 조카를 잃는다. 달건은 조카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고가 거대한 음모에 의한 것임을 파악하고 다시 진실을 찾기 위해 달리고 떨어지고 쏘고 매달리고 뒹군다. 발붙일 곳 없는 낯선 땅에서.
배우 이승기는 ‘배가본드’에서 차달건이 꿈꿨던 액션배우의 모습을 보여줬다. 온몸을 내던졌던 그의 액션은 드라마의 첫 회부터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이승기의 고군분투와 함께 드라마 속 차달건의 액션도 성장했다. 액션만큼은 여느 작품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드라마가 탄생한 것이다.
‘배가본드’ 종영 전인 지난 15일 서울 도산대로 한 카페에서 만난 이승기는 “차달건의 액션 시퀀스 중 70~80%를 직접 소화했다”고 밝혔다. 화면의 긴장감 면에서 배우가 직접 액션을 소화하는 것과 대역이 하는 것의 차이가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승기는 “직접 액션을 하면 화면에 긴박감이 살아나는 것을 보면서 점차 욕심이 났다”고 털어놨다.
본격적인 촬영 전부터 오랜 시간 공들였고 액션을 찍을 때마다 미리 연습했지만, 실전은 쉽지 않았다. 이승기는 “액션은 사고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몰라 준비를 꼼꼼하게 하는 한편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촬영을 진행했다”고 귀띔했다.
“달리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하도 뛰니까 나중엔 미리 몇 번을 뛸 수 있다고 말씀을 드리고 시작했죠. 헬리캠과 동선을 맞춰 정해진 구간을 몇 번이나 전력을 다해 뛰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바닥에 뒹구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넘어지기 전에 아플 게 보이니까요. 그렇지만 그 순간 주춤하면 그건 NG니까, 과감하게 했어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게 과제였죠.”
극 중 차달건이 달리는 차에 매달렸던 건 간절하게 바라는 바가 있어서였다. 그렇다면 이승기는 무엇을 위해 달리고 넘어졌을까. 액션 장르 ‘배가본드’를 선택한 이유에 관해 묻자 이승기는 “정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액션 드라마라고 출발해도 제작환경 상 액션 퀄리티를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아요. 초반에 큰 규모의 액션을 보여주다가 점차 사라지는 거죠. 이 드라마는 그런 부분에선 정말 만족스러워요. 우리나라 드라마 역사상 액션에 관해선 정말 좋은 가이드라인을 남겼다고 생각해요. 이런 작품이 하나 있으면 우리나라의 훌륭한 제작진들이 조금씩 기준점을 높여가지 않을까요.”
“힘들지만 영상을 보면 하길 잘했다는 마음이 든다”며 액션 장르만의 중독성에 관해 말하던 이승기는 ‘배가본드’ 시즌2에 대한 기대감도 내비쳤다. 시즌2 제작에 관한 말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시즌2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결말”로 끝난 만큼, 또 다른 이야기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달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는 이승기는 사실 멈추는 것을 어려워하는 성격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을 “워커홀릭에 최적화된 캐릭터”라고 표현하며 “쉬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최근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여유를 찾되, 필요할 땐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겠다는 것이 여기까지 숨 차게 달려온 이승기의 다음 행보다.
“너무 오랫동안 치열하게 달려왔는데 어느 순간 제가 지친 게 느껴졌어요. 이대로 가다 보면 완전히 ‘번아웃’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샌 모든 일을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으려고 해요. 이렇게 말하니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네요.(웃음) 잘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건, 제가 하는 모든 일에 지나친 책임감을 느끼지 않으려 한다는 의미에요. 뭐든 잘해야 할 것 같고 어느 순간에도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생기니 버겁더라고요. 제 주변엔 제가 믿을 수 있는 동료도 많고 제작진도 많으니, 잘하려는 욕심을 내려놓으려고요. 대신 이제는 제가 걷고 있는 길에서 조금 더 깊게 들어가 봐야 할 시점인 것 같아요. 무엇을 하건 이승기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요.”
인세현 기자 inout@kukinews.com / 사진=후크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