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의 선방이다. ‘해치지않아’(감독 손재곤)는 생각지 못한 웃음을 만날 수 있는 영화다. 원작 웹툰의 설정을 빌려온 망해가는 동물원 소재로 이만한 완성도의 영화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엉뚱한 길로 흐르는 것을 제외하면 그렇다.
‘해치지않아’는 폐점 직전의 동물원 동산파크를 살리기 위한 이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코미디 영화다. 주인공인 생계형 수습 변호사 태수(안재홍)는 외부인의 시선으로 동산파크를 지켜보다가 점점 그 일원이 되어가는 인물이다. 그가 동물이 없으면 동물 탈을 쓰자는 아이디어를 내고, 콜라를 마시며 관객몰이에 성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변호사인 그가 하루아침에 동물원 원장이 된 데에는 누군가의 음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태수는 동물원과 직장 모두 잃을 위기에 처하고 만다.
영화는 동물 대신 인간이 동물원에서 동물 연기를 한다는 황당한 설정을 꼼꼼하게 설득시킨다. 동물원에 동물이 없을 리 없다고 믿는 관람객들의 맹점을 뒤집는 것이나, 동물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남아있는 직원들의 속사정 등 동산파크를 둘러싼 이야기가 하나씩 펼쳐진다. 동물원을 넘어 사회 시스템의 문제로도 확장된다. 태수와 동산파크가 처한 상황은 특정 개인의 악의로 발현된 것이 아니다.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던 끝에 의도치 않게 피해를 보는 것이 누구인지를 영화는 조용히 가리킨다.
다만 결말로 갈수록 동물원의 경영과 동물들을 다루는 태도는 조금씩 어긋난다. 인물들은 모두 각자가 원하는 것을 추구하는 동시에 선의를 베풀고 싶어 한다. 언뜻 보면 그 두 가지를 한 번에 이루는 것 같지만, 조금 다르게 보면 모두 잃은 것처럼도 보인다. 이들의 선택이 정말 동물들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개인의 이익을 충족시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잘못하면 해피엔딩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일 위험도 있다. 이야기를 최대한 설정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올바른 방식으로 전개하다 보니 길을 잃은 모양새다. 잘 쌓아온 코미디가 허무해졌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관객들을 해칠 의도가 없는 무해한 영화다. 자극적인 코믹 요소를 활용하지도 않고, 이야기의 흐름도 자연스럽다. 대단한 사건인 것처럼 과장하지도 않고, 배우들의 연기로 웃음을 쥐어짜지도 않는다. 동물을 다루는 태도 역시 불편함이 없다.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충족시키고 스토리를 전개시킨다. 기본을 지키지 못하는 수많은 영화들 속에서 ‘해치지않아’는 칭찬 받을 자격이 있다.
여러모로 영화 ‘극한직업’(감독 이병헌)이 떠오른다. 의도치 않게 원래의 딱딱한 직업과 정반대의 서비스업에 뛰어든다는 설정이나, 엉뚱한 발상으로 대박을 터뜨리는 전개가 그렇다. 다섯 명 정도 되는 인물들의 캐릭터로 코미디를 유발하는 것이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도 비슷하다. 같은 제작사가 개봉 시기도 비슷하게 잡았다.
배우들은 각자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현실에 발붙인 캐릭터를 연기한 동산파크 멤버들보다 배우 박혁권, 한예리가 보여주는 다른 세상 사람 연기가 눈에 확 띈다. 특히 한예리의 연기 변신은 눈여겨볼 만하다. 15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