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라미란의 코미디가 통했다. 영화 ‘정직한 후보’(감독 장유정)는 정치 소재의 무게를 덜어낸 자리에 코미디를 채웠다. 불필요한 과장과 오버 없이 상황에 맞는 적절한 코미디를 잘 살려냈다. 기분 나쁘지 않은 유쾌한 상황의 연속이다. 기본을 잘 지키니 시종일관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정직한 후보’는 전형적인 인물들이 살아가는 익숙한 현실 세계에 한 가지 판타지적인 설정을 넣었다. 입에 발린 거짓말로 먹고 살던 인물이 진실만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만든 것. 4선을 노리는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은 순수한 마음에서 정치에 입문한 당시와 달리 이젠 당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거짓말쟁이 국회의원이 됐다. 국민들과 지지자들 앞에선 물론이고, 남편과 시어머니에게도 그들이 듣기 좋은 말들을 아주 쉽게 늘어놓는다. 정치를 위해 멀쩡히 살아 있는 어머니도 죽은 것으로 하고 아들의 병역 비리도 덮는다. 어떻게 하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노하우가 가득한 그에게 진실만 말하는 입은 골칫거리가 된다.
현실을 살아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던 주인공이 신이 내린 만화 같은 일을 겪으며 개과천선하는 이야기는 흔하다. ‘정직한 후보’ 역시 줄거리와 설정을 듣는 순간부터 결말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쉽게 예측되는 영화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건 정치인과 거짓말을 하나로 엮었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해야 하는 정치인이 거짓말을 하는 건 누구나 알고 있지만 믿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 모순을 정면으로 건드린다.
‘정직한 후보’는 처음부터 노회한 정치인이 거짓말을 기막히게 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보고 있으면 ‘저 정도면 국회의원 할 만하다’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이후 그가 얼마나 거짓된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거짓말을 못하게 된 주상숙의 모습은 관객들이 조금도 보고 싶지 않은 진실인 동시에 보고 싶었던 모습이다. 이 같은 아이러니는 영화의 비현실적인 설정을 덮어준다. 대신 그 순간순간에 터지는 코미디를 즐길 수 있게 한다.
진실과 거짓의 세계를 연결해주는 건 주상숙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확실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주상숙 덕분에 ‘정직한 후보’는 뻔하고 익숙한 판타지를 막힘없이 풀어나갈 힘을 얻는다. 주상숙 역의 라미란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뻔뻔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숨김없이 보여준다. 관객들은 매번 예상보다 조금 먼저 치고나가는 라미란의 호흡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몰입도는 높아지고 코미디에 웃음이 터진다.
동명의 브라질 영화를 원작으로 하는 ‘정직한 후보’는 선거를 치르며 몇 가지 난관을 넘는 주상숙을 그린다. 어머니의 죽음과 학교 재단 비리, 아들 병역 문제 등이 있다. 이는 양날의 검이다. 주상숙의 과거 업보와도 같은 이 난관들은 영화 내내 번갈아 가며 주상숙을 괴롭히고 위험에 빠뜨린다. 반대로 이 난관을 해결하며 영화는 앞으로 나아간다. 또 영화 속 세계관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동시에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든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는 알겠으나,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 점이 아쉽다.
큰 웃음에 대한 욕심 없이 상황에 몰입하는 배우들의 태도가 좋은 코미디를 만들었다. 인위적인 연극과 같은 상황들을 연극적이지 않게 연기한 배우들의 공이 크다. 이제부터 웃긴다는 신호 없이 훅 들어오는 편집도 좋다. 주연으로서 라미란의 연기력과 존재감이 폭발하는 영화다. 다음달 12일 개봉. 12세 관람가.
이준범 기자 bluebell@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