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덕에서 동쪽으로 걷기 시작해 서쪽을 향할 때부터는 제주도 남쪽의 해안 길을 걷게 된다. 남쪽 해안 풍경은 거칠고 남성적이다. 표선의 모래해변을 지나 중문색달해변까지 단 한곳도 편안하게 바닷물에 손을 적실만한 곳이 없다. 완만한 해안은 용암이 흐르다 순식간에 식으며 생긴 거친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끝없이 파도를 일으켜 바위에 부딪친다. 사람들에게 명승지로 알려진 외돌개와 대포동 주상절리 해변은 오금을 저리게 하는 낭떠러지다. 완만한 해변이든 낭떠러지 해변이든 걸으며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그러나 날씨는 여성적이어서 겨울에도 바람은 매섭지 않고 햇살은 따뜻하다. 한겨울인데 들국화는 여전히 싱싱하게 피어 있으니 가을이 아직 머물고 있는 겨울이다. 1월이 가기도 전에 애기동백이 거의 다 지고 매화 소식을 들었는데 천지연폭포 위의 걸매공원엔 어느새 매화마저 지고 있다. 2월이 시작되자 유채꽃이 지면서 제비꽃이 보이고 진달래가 피고 있으니 봄인듯하다. 여름이 가까울 때 피는 장딸기 꽃까지 보고는 이제는 정말 봄인 줄 알았는데 한라산이 이고 있는 눈은 차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이 가을의 길인가, 겨울의 길인가 아니면 봄 길인가.
길을 걷다가 땀이 나 옷을 한 겹 벗고 오름에 오르고 보면 어느새 매서운 바람이 스며든다. 빗방울이 듣는 듯해 부지런히 길을 재촉하다 보면 다시 햇빛이 보인다. 날씨 변덕이 예사롭지 않다. 제주에서 영등할망이 조화를 부리기 시작했다. 영등할망은 음력 2월 초하룻날에 영등하르방, 영등대왕 등 여러 식솔을 거느리고 서쪽의 한림읍 귀덕리로 들어와 보름에 우도를 통해 나간다. 영등할망은 제주에 들어와 머무는 동안 바닷가의 보말을 까먹으면서 다음 해에 수확할 미역, 천초, 소라, 전복 등 해산물의 씨앗을 뿌린다. 이 기간에는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서는 안 되며 빨래도 해서는 안 된다. 삼월 초순까지는 걷기도 쉽지 않겠다.
걷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몸이라도 움직이려면 재활치료는 불가피했지만 퇴원해 동생집으로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닌 더 이상 재활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기를 거부했다. 내가 근무하던 병원에서만큼 친절하고 참을성 있게 어머니를 대할 물리치료사는 없었다. 게다가 당신의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면서 어머니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렸다.
퇴원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대소변 기능이 멈추었다. 결국 하복부에 작은 구멍을 내고 요관을 방광에 삽입하는 시술을 받았고 적어도 이틀에 한 번씩은 관장을 해야 했다. 식사와 몸 씻기, 관장까지 모든 병수발은 아버지의 몫이었다. 20대 초반부터 평생 연탄공장에서 일을 해온 아버지는 호흡기능이 정상의 50퍼센트를 겨우 넘고 있었으니 말하자면 환자가 환자를 돌보는 상황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동생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체 하며 4년이 지났다. 그동안 동생들은 사업을 접었고 나는 빈손으로 사십대 중반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즈음엔 이미 내가 살면서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다만 내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세상에 나갈 때 나보다는 훨씬 더 좋은 출발점에 설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생각만으로 살았다. 그러나 세상은 늘 마음먹은 대로 살아지지는 않는다. 우리나이로 마흔다섯이 되던 2002년 봄 내 삶이 완전히 끝났다.
가까이 있었고 그의 흔적을 자주 보았는데도 관심이 없었으니 굳이 가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김영갑갤러리 두모악에서 눈에 익은 편안한 돌하르방을 보고는 그제야 내 주변에 얼마나 그가 가까이 있었는지 알았다. 그의 하르방을 함덕 해변에서 만났고 동백동산에서 보았다. 이들 돌하르방은 두 팔로 모래를 짚고 편안히 앉아 있거나, 카메라를 메고 있거나,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사람을 반긴다. 모두 20년째 북촌 돌하르방공원을 가꾸고 있는 김남흥 작가의 작품이다.
돌하르방공원은 2000년부터 제주 토박이 화가인 김남흥이 기획하고 가꾸어 2005년 문을 연 야외 미술관이다. 그는 제주의 진짜 아름다움을 돌에서 찾았다. 그 중심에 돌담이 있고 돌하르방이 있었다. 제주에 남아 있던 48기의 전통 돌하르방을 재현하면서 한편으로는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돌하르방을 주제로 공원을 꾸미기 시작했다.
돌하르방공원은 조천-함덕 곶자왈 지대의 너무 깊지도 않고 얕지도 않은 숲속에 자리하고 있다. 차를 이용하거나 함덕에서 택시를 타거나 아니면 북촌에서 10여분 걸어가야 한다. 성인 기준 입장료가 6,000원이다. 하루 300명만 입장할 수 있다. 얼핏 생각하면 참 친절하지 않은 관광지다. 그러나 이는 입장객을 위한 속 깊은 배려다. 누구든 여기선 등 떠밀리지 않고 천천히 걸을 수 있다.
마치 음식 재료 본연의 맛을 잘 끌어내고 버무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한 상을 차려내듯, 5,000여 평의 숲속에 돌하르방을 주제로 토박이 예술가가 상상력을 더했다. 그렇게 돌하르방공원을 찾아오는 이가 평생 기억할 아름다움을 마련해 놓았다. 걸으며 제주 전통의 돌하르방과 그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다양한 몸짓과 표정을 가진 돌하르방들과 함께 어울리는 곳이다.
이 숲속 공원에서는 모두 돌하르방과 친구가 된다. 돌하르방의 품에 안기고, 끌어안고, 함께 하트를 날리며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길 따라 만나는 돌하르방과 한 시간쯤 어울리며 놀고 나오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너무 넓어 지치지 않고 너무 좁아 아쉽지 않다. 그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맺혀있던 응어리를 풀기에 딱 적당한 만큼 걸으며 작가가 준비한 따뜻함을 보고, 보듬으며 느낀다.
돌하르방공원에 들어가면 바삐 걸어갈 필요 없다. 입장객에게 제공하는 입구 찻집 할인권을 들고 커피든 차든 한 잔 마시면서 잠시 앉아 이곳저곳에 눈길을 주다보면 단순히 돌하르방만 길 따라 세워둔 무미건조한 공원이 아님을 알게 된다. 제주 돌을 다듬어 만든 탁자 위에선 작은 인형이 골프를 치고, 다이빙을 준비하기도 하고 해변에 누워 쉬기도 한다. 벽엔 그의 그림이 걸려 있고 곳곳에 크고 작은 소품 장식이 정겹다. 실내에서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바깥 풍경을 즐기다가 이곳 분위기에 익숙해지면, 비로소 걸으며 돌하르방과 함께 어울려 놀 준비가 되었음을 알고 일어날 때이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쿠키뉴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