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특별한 변곡점 없이 물 흐르듯 흘러간다.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감독 김초희) 속 찬실은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속으론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결심이 섰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의 행동과 표정,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로 유추할 뿐이다. 그렇게 찬실이의 삶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의 내면에서 어마어마한 변화가 시작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영화 프로듀서로 10년을 살아온 이찬실(강말금)이 실직하며 시작하는 이야기다. 찬실에겐 몇 가지 새로운 일들이 일어난다. 새로 이사 간 집에서 집주인 할머니(윤여정)와 가까워지고, 친한 배우 소피의 집에 가사도우미로 일을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젊은 독립영화 감독 김영(배유람)을 만나 설렘을 느끼고, 주변을 맴도는 장국영 유령(김영민)도 만난다. 대체 그녀의 앞날은 어떻게 되는 걸까.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찬실이 다시 취직을 하거나 뚜렷한 꿈을 갖게 되는 결말로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가까이 다가가 지켜본다. 그가 겪는 일들과 하는 말들엔 뚜렷한 영화적 맥락이 보이지 않는다. 과장된 코미디나 극적인 사건도 없고, 기승전결 같은 구조도 읽히지 않는다. 찬실이의 리듬과 생활 패턴을 따라가면 그만의 맥락이 보이기 시작한다. 찬실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욕망하고 어떤 일이 잘 맞는지 몰라도 무슨 생각을 할지 이해하고 함께 웃게 된다. 무엇 하나 되는 일 없어 보이는 찬실이가 복이 많아 보이는 순간도 슬며시 찾아온다.
가까이에서 보는 찬실이의 일상 희극은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기운을 준다. 누군가의 해석이나 이유에 대답하기 위한 긍정은 아니다. 그가 스스로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 중요하다. 스쳐지나갔던 주변인들과의 대화와 태도는 온통 힌트가 된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 아는 것 같았던’ 찬실의 할머니처럼, 찬실도 배움이나 결심보다 그저 알게 되는 것에 가까운 과정을 겪는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느끼는 즐거움과 쾌감은 색다른 경험이다.
평범한 개인의 일상을 유쾌하게 그려낸 일본영화에 가깝다. 첫 장편 주연을 맡은 배우 강말금의 처음을 기억하기에 좋은 영화다. 찬실이 사는 공간처럼 불편하거나 유해한 요소가 없는 깨끗함이 어떤 언어보다 많은 것을 설명해준다. 다음달 5일 개봉.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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