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2017년 여름. 김용훈 감독은 서점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일본 소설가 소네 케이스케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몇 편의 시나리오가 투자를 받지 못하거나 캐스팅에 난항을 겪던 김 감독은 제목처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그 순간 이 소설을 영상화시키면 어떨까 생각했다. 자신의 해석과 아이디어를 담아 2개월 동안 시나리오를 썼다. 이후 초고를 가지고 제작사와 투자사와 이야기를 진행했고, 2018년 1월 본격적인 영화화 작업에 들어갔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에서 만난 김용훈 감독은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하 ‘지푸라기’)이 상업영화에서 다루기 힘든 스토리라고 설명했다. 원작을 그대로 가져갈 수는 없었다. 김 감독의 아이디어로 뼈대를 새로 세웠다. 배우 전도연이 연기한 연희 캐릭터를 중반부에 강력한 중심인물로 넣은 것도 감독의 의도였다.
“원작은 흡입력 있고 완성도가 높은 소설이에요. 이 소설의 독특한 구조가 소설로선 재미있지만, 영상화시킬 때 아이디어가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어요. 영화의 뼈대를 다시 세워야 했죠. 원작은 인물들이 태영(정우성), 중만(배성우), 미란(신현빈) 세 인물이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균형으로 끝까지 가요. 저는 중간에 끊고 연희를 등장시키는 걸로 좀 바꿨죠. 또 평범한 인물들이 범죄극을 벌이는 이야기이길 바랐어요. 원작에선 태영이 형사 역할이었지만, 더 소시민적인 느낌에 가깝게 하려고 출입국사무소 직원으로 설정을 바꿨어요.”
소설의 영화화 과정에서 가장 걱정했던 건 상업영화로 만들 수 있을지,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연희 역에 제안했던 배우 전도연의 캐스팅이 큰 힘이 됐다. 또 후반작업에 공을 들였다. 영화가 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해 다양한 버전을 만든 끝에 지금의 완성본에 이르렀다.
“다른 기자님이 ‘지푸라기’의 소문이 안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전 사실 좋은 얘기들만 들어서 몰랐지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개봉일이 미뤄진 영화들이 좋지 않은 결과를 보여준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많은 인물이 나오는 만큼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저런 버전을 만들었고 지금의 완성본은 시나리오와 크게 다를 게 없는 결과물로 나왔죠. 지금처럼 챕터가 있는 버전과 챕터 없이 쭉 이어진 버전이 있었어요.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챕터가 없는 버전을 좋아해줬던 분들도 많았거든요. 뒤에 등장하는 얘기들을 더 놀라워하더라고요. 챕터가 생기면서 그런 점이 희석되는 느낌이 있지만, 관객이 쉽게 따라갈 수 있는 가이드 같은 느낌이 생겼어요. 전 어느 한 인물의 매력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지점에 가장 신경을 썼어요. 마지막까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푸라기’의 배우진은 탄탄하다. 처음 호흡을 맞추는 전도연과 정우성을 비롯해 배성우, 윤여정, 정만식, 신현빈 등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김 감독은 정우성의 싸움 잘하는 이미지를 벗기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촬영 중반에 합류한 전도연의 첫 촬영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고도 했다.
“미란이 학대받는 모습을 지켜보면 여자가 피해자인 느낌이 들어요. 누군가는 그걸 처벌해주길 바라는 상황에서 새로운 여성 캐릭터가 등장해 제압하면 카타르시스가 클 거라고 생각했죠. 연희의 첫 장면은 첫 테이크에서 ‘오케이’를 했어요. 저도 찍으면서 놀랐어요. 전도연 선배님이 리허설 때 ‘어떻게 해’라고 하시면서 정말 어려워하셨거든요. 그런데 ‘레디, 액션’하고 슛이 들어갔는데 확 돌아서시더라고요. 대사도 톤도 너무 좋아서 바로 ‘오케이’를 했어요. 현장 스태프들도 ‘우와’ 하고 놀랐고요. 저도 관객이 느끼는 임팩트와 동일한 느낌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김 감독은 작업한 기간이 길었던 만큼 공개했을 때의 반응을 걱정하고 불안해했다고 털어놨다. 관객들 반응이 무서운 동시에 기대가 됐다. 먼저 공개한 로테르담 영화제에서 좋은 반응을 보고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지푸라기’가 실험적인 영화를 추구하는 영화제 성격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 심사위원상을 받을 줄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관객의 반응과 수상은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전 못 받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왜냐하면 경쟁작을 봤는데 ‘지푸라기’만 색깔이 다른 거예요. 되게 실험적이고 독립적인 영화들이 많았어요. 한국에선 기존 상업영화와 다른 지점이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영화제에선 너무 상업적인 거예요. 그래서 호명이 됐을 때 정말 놀랐죠. 영화제 관계자들 얘기로는 상업영화에 새롭고 실험적인 시도를 한 부분을 본 것 같았어요. ‘지푸라기’ 같은 영화를 환영한다는 측면에서 준 것 같기도 하고요.”
김 감독은 관객들이 ‘지푸라기’를 스토리텔링이 다른 영화로 볼 것 같다고 했다. 기존에 봤던 것과 같은 범죄극이어도 차별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또 주변에 있을 법한 소시민들이 벌이는 범죄극이라는 점도 주목해달라고 했다. 앞으로도 조금은 다르고 새로운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전 기본적으로 서스펜스 구조 안에서 유머를 보여주는 영화를 좋아해요. 그런 영화를 시도해보고 싶죠. 또 장르적인 재미와 형식적인 신선함을 보여주는 얘기들에 관심이 있어요. 새로운 지점에 대해선 의식적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사실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잖아요. 그래도 ‘조금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를 만들어보려고 하죠. 그래서 피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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