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사태로 보건산업계가 새 국면에 맞았다. 민간기업의 관심도가 낮았던 신종감염병의 ‘백신’과 ‘치료제’ 개발의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빠른 진단키트 개발 및 보급을 통한 대응능력은 전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듯 한국보건산업진흥원도 감염병과 관련된 R&D(연구개발)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권덕철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은 타 산업분야에 비해 미흡했던 보건의료 분야, 그중에서도 사회적 재난이 될 수 있는 ‘신종감염병’의 치료기술 개발에 집중해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고 국민보건 향상을 이끌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중앙메르스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으로 활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계 지원을 통해 신종감염병에 대응하겠단 포부이기도 하다.
권 원장에 따르면, 올해 진흥원이 확보한 보건의료 R&D예산 4100억원 가운데 250억원을 감염병 예방치료기술 개발 사업에 투입하기로 했다. 그 중 미해결 치료제 도전 기술개발에 74억원, 특히 바이러스성 급성호흡기질환 치료제 개발에 12억을 쓰기로 했다. 매개체 전파 바이러스 감염병 치료제에는 15억을 배정했다. 이와 함께 방역연계범부처 감염병 연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ICT 기술 활용 자가격리자 및 접촉자 관리 시스템 시범사업 및 개선연구’에 11억원을 책정했으며, 오는 4월 출범할 백신상용화기술개발사업단 지원에 119억 5000만원을 예정했다.
권 원장의 계획은 백신 및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지원으로 민간기업의 관심을 높이는 것이다. 그는 “바이러스 치료제나 백신 개발은 다국적기업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분야다. 하나를 개발하는 데 막대한 시간과 자본이 들어가기 때문”이라며 “그래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글로벌화 된 나라에서 신종감염병 유입은 계속 들어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때 공공기관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공공이 안 하면 민간기업의 투자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권 원장은 치료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조기에 환자를 발견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의료현장 맞춤형 진단기술 개발’에 약 52억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의료현장형 해외유입 감염병 진단 감별 기술(열성증상), 신기술을 이용한 난치성 중증 감염 조기 다중진단법(의료기관 감염 및 집단감염), 다종의 호흡기 바이러스 신속 분자진단 기술법 개발(열성증상) 등의 순으로 예산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한국에서 코로나19 진담검사가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저렴한 가격의 진단키트 때문이다. 우리의 ‘빨리빨리’ 문화처럼 키트 개발도 빨랐다”며 “우리나라 스타트업의 의료기기 개발 속도는 매우 빠른 편이다. 기술이 있으니 이를 고도화해 정확도를 높인다면 국제적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또 “지금도 몽골이나 카자흐스탄 등으로는 우리 기업이 개발한 진단키트가 진출해 있다. 미국으로 가려면 FDA를 통과해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로운데 이번 한국의 대응능력이 모멘텀이 되지 않을까싶다”라고 전했다.
권 원장은 이번에 책정한 예산을 투입할 감염병 관련 연구과제 공모를 끝내고 공정하게 선정하기 위해 평가위원단을 꾸리고 있다. 빠르면 이달 중으로 평가단이 구성될 것으로 보인다. 권 원장은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감염병 관련 R&D에 대해선 경쟁률이 높지 않다. 의사들 사이에서도 감염내과는 기피하는 것처럼 당장 수익이 나는 분야가 아니라 민간기업의 관심이 낮다”며 “그러나 이 분야는 사회적 자본, 사회적 재난을 대비하는 인프라라고 생각해야 한다. 때문에 국가에서 지원하는 예산규모도 지금보다 더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당장은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번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가 5년전 메르스 사태 당시 교훈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제도나 조직, 인력, 연구개발을 토대로 예방대책이 나와야 나중에 더 큰 다른 감염병을 막을 수 있다”며 “떡이 커야 여러 사람이 먹을 수 있다. 참여자들을 불러 모으려면 규모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권 원장은 감염병 외에도 치매나 정신질환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R&D 지원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문제의 촉발요인을 조기에 발견해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권 원장은 “R&D라고 하면 제약이나 의료기기, 의료기술 개발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환경과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오는 질병들에 대한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라며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라고 해도 관리범위 내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의약품나 의료기기, 화장품 제조에 필요한 원료‧부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유턴전략’ 계획도 세웠다. 코로나19와 같은 글로벌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국내 자급기반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원료와 부품이 중국에서 들어오는데 현지에서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 원료 수입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부자재 수입을 국내에서 할 수 있도록 유턴전략을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밖에 애로사항과 규제 등도 발굴해 해결하려고 한다. 미래먹거리라고 할 수 있는 보건의료산업에 투자하는 것은 경제발전과 국민건강증진을 위해 필요하다”며 “특히 올해 통과된 데이터3법이 보건의료 분야 R&D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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