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절대 쓰러지지 않을 것 같던 엽문(견자단) 사부가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눈물을 흘리거나 병약한 모습은 없다. 대신 사부의 마지막 싸움과 그 의미를 곱씹게 한다. 그의 무술 실력은 여전히 강하고 단단하지만, 어딘가 쓸쓸하다.
영화 ‘엽문’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엽문4: 더 파이널’(감독 엽위신)은 암에 걸린 상태에서 아들의 미래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 엽문의 모습을 그린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들의 미국 유학을 알아보기 위해 이소룡(진국곤)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향한 엽문. 그는 중국의 전통무술을 외국인들에게 전파하는 이소룡과 갈등을 겪고 있는 태극권 사부이자 중국총회의 수장인 만종화(오월)를 만난다. 만종화 설득에 실패해 아들의 추천서를 받지 못한 엽문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만종화의 딸을 구해주며 현지 중국인들이 겪는 문제와 조금씩 얽히게 된다.
‘엽문4’에서 엽문은 대단한 업적 대신 자신의 메시지를 남기는 데 집중한다. 엽문은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초반부 관객들에게만 공개한다. 그 때문에 엽문이 극 중 만나는 사람들과 관객이 받아들이는 건 크게 달라진다. 중국총회의 인물들은 대의가 아닌 자신의 이익(아들의 추천서)을 위해 움직이는 엽문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관객들은 아들에게 어떤 미래가 더 좋을지 고민하는 아버지로서 엽문의 고뇌를 읽을 수 있다. 엽문과 다른 인물들이 가진 정보의 격차는 필연적인 갈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갈등은 다시 봉합되기 어려운 여러 갈래의 이야기로 퍼져나간다.
엽문의 이름을 건 영화에서 엽문의 싸움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예상가능하다. ‘엽문4’가 보여주는 높은 완성도의 액션 역시 늘 그렇듯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싸움의 결과만 중요한 건 아니다. 무술을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태도, 힘을 잘못된 방식으로 다루는 이를 볼 때의 분노, 싸울 때는 싸워야 한다는 정신 등 엽 사부의 많지 않은 대사와 표정들은 이전 시리즈와 다르게 묵직한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을 예감한 대가의 고뇌와 행동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미국인을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단순한 캐릭터 다루는 점은 흥을 깬다. 펼쳐놓은 이야기에 비해 급하고 억지스러운 마무리로 이어지는 이야기의 개연성도 부족하다. 현재 미국과 중국의 대치 상황, 홍콩과 중국의 갈등을 간접적으로 담아내는 대사와 상황들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다만 한 명의 감독과 한 명의 배우가 11년 동안 이어온 네 편의 시리즈를 압축하는 회상 장면은 긴 시간 ‘엽문’을 사랑해온 팬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되지 않을까. 오는 1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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