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생활 9개월이 지나면서 생각해 보니 밖에 나가 있던 날보다 집에서 지낸 날들이 더 많았다. 한 달 살아보기 위해 왔다면 하루하루가 아까워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어딘가 가야할 곳을 찾아내고 일정을 채우며 알뜰하게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1년 살기를 시작하고 보니 무엇이든 급할 필요가 없었다. 조급해 하지 않고 천천히 제주의 바람, 하늘, 풀, 꽃을 즐겼다. 비 오고 바람 부는 날이면 바람에 날리는 빗줄기가 보기 좋았고 많이 걸어서 피곤한 다음 날엔 늦잠자고 일어나 멀리 보이는 수평선과 한라산 자락의 오름 능선 바라보는 것으로 편안했다.
가끔은 이웃 사람들이 가꾸는 텃밭에서 자라는 상추, 부추, 양파, 마늘, 양배추, 감자와 무가 자라는 모습을 살피며 시간을 보내도 지루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자라는 풀과 꽃의 이름 알아내곤, 뽑아서 버려야 할망정 그 풀을 더 이상 잡초라고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게 되었으니, 큰일을 해낸 듯 뿌듯하기도 했다.
누구에겐 부질없고 무의미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내겐 즐거움이었다. 올레 코스마다 풀과 꽃이 발걸음을 붙잡으니 부지런히 걷는 사람들보다 2~3 시간은 더 걸렸다. 30분이면 충분하다는 오름에 오르면 3시간 넘게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세상 일 다 잊고 바라보는 들꽃은 늘 예뻤다.
평온한 일상이 원하는 만큼은 이어지지 않았다. 뇌졸중의 심각한 후유증으로 침상생활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정기적인 병원 진료였다. 당시는 아직 운전을 배우지 않았던 때였으니 병원에 한 번 다녀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고양시에서 인천으로 이사 후 가까운 곳에 준 종합병원이 있었지만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다닐만한 거리는 아니었다. 다행이 이 병원에서 간호사가 환자를 방문해 채혈을 하고 그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제도가 있었다. 2주일에 한 번 간호사가 집으로 와서 혈압을 재고 채혈을 해서 혈당을 비롯해 어머니 건강관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혈액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약 처방은 보호자 자격으로 병원에 가서 받았다.
나름 여러 가지를 고려해 어머니 건강관리를 잘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잠깐의 방심이 화를 불렀다. 실직 후 새로운 일을 하며 부모님과 함께 생활한지 2년째 접어들던 때였다. 2004년 봄이 거의 지나가고 있던 그날 아침 식사를 마친 어머니가 불안하게 보였는데 순간적으로 의식을 잃었다. 화들짝 놀라 119 구급차량을 요청해 다급하게 대학병원 응급실에 갈 수 있었다.
의식 없이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는 어머니 곁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몇 번이고 뇌졸중으로 인한 오른쪽 편마비 상태와 대소변 문제, 그간의 진료와 혈액검사결과, 복용하고 있던 약과 그날 아침의 혈압과 혈당, 식사내용 등을 소상히 이야기 했다. 어머니가 검사실로 이동한 뒤 응급실 대기실에 있던 아버지에게 다시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백사장은 말 그대로 흰 모래밭이라는 뜻이다. 뭍에서는 대부분의 해수욕장에 백사장이 있다. 제주는 해변의 모래밭이 많이 발달하지는 않았지만 이름이 알려진 해수욕장마다 독특한 모래 색을 가지고 있다.
우도 산호해수욕장의 모래 색이 가장 희다. 인근 바다에서 자라는 홍조류에 의해 만들어진 탄산칼슘 덩어리가 잘게 부서져 만든 모래인데 거의 순백에 가깝다. 제주 서쪽의 금능해변과 곽지해변, 북동쪽의 함덕해변과 김녕해변, 남쪽의 표선해변 등의 모래는 주로 조개류의 껍질이 잘게 부서져 쌓인 모래여서 매우 곱고 밝은 색이다. 중문색달해변의 모래는 검은 화산암 모래에 잘게 부서진 조개류 껍질이 섞여 있는데 거친듯한 모래색이 갈색에 가깝다.
제주시 서쪽의 이호테우 해변과 동쪽의 삼양해변은 모래가 검다. 특히 삼양해변은 모래의 색이 훨씬 더 검어서 아예 ‘삼양검은모래해변’으로 불린다. 검은 모래는 주로 제주 화산암이 잘게 부서진 모래이지만 오랜 세월 잘게 부서진 조개껍질 조각들이 섞이면서 그 색이 조금씩 연해지고 있다. 늘 바닷가에서 하얗게 반짝이는 모래에 익숙한 터여서 이호테우나 삼양해변의 검은 모래는 느낌이 새롭다.
제주항에서 직선거리로 4km 남짓의 거리에 있고 화북공업지구가 인근에 있어 삼양동은 제주의 전통 촌락의 모습을 벗고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삼양해수욕장 뒤는 반듯하게 토지구획정리가 끝나 오래된 집들이 하나 둘씩 도심의 빌딩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이러한 토지구획정리과정에서 뜻밖의 유적지가 나타났다.
이 유적지 일대에서는 이미 1970년대에 고인돌이 확인되었고, 1986년에 적갈색토기(赤葛色土器)와 갈아 만든 돌도끼 등의 유물이 발굴된 바 있다. 제주대학교박물관이 1997년부터 1999년까지 2년 동안 발굴조사를 한 결과 기원전 1세기 전후의 주거지 236기를 비롯하여 석축담장, 쓰레기 폐기장, 마을 외곽을 두른 도랑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삼양동유적은 제주도에서 한반도의 대표적인 청동기·초기철기시대 유적으로 탐라국(耽羅國) 형성기 제주 선주민문화(先住民文化)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현재는 삼양동선사유적지를 전시관과 공원으로 꾸며 개방하고 있다.
삼양동의 또 다른 보물은 원당봉이다. 제주 해안에 있는 오름들은 지미봉, 서우봉, 사라봉, 도두봉 등 오름이라는 명칭 대신 ‘봉’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조선시대에 봉수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당봉은 원나라 기황후가 왕자를 얻기 위해 삼첩칠봉(三疊七峰)을 이루는 이곳에 세운 원당(元堂)에서 이름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7개의 작은 봉우리로 이루어진 원당봉은 분화구가 북쪽을 향해 벌어져 있고 그 분화구 자리에는 습지가 있었다. 지금은 분화구 자리에 절이 들어서 있고 습지는 연못으로 바뀌어 있다.
둘레는 3,411m, 해수면으로부터의 높이는 170.7m, 오름 아래에서 능선까지의 실제 높이는 120m이다. 오름 중턱으로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걷다보면 서쪽에서 사라봉과 제주항은 물론 제주 시내가 한 눈에 보이고 동쪽으로 가면서 한라산과 그 동쪽의 오름 능선, 그리고 함덕의 서우봉이 눈에 들어온다. 이 둘레길의 동쪽 끝에서 오름 능선으로 올라가면 다시 서쪽으로 능선길을 따라 내려와 분화구의 절집 마당에 선다. 많은 사람이 찾는 오름은 아니지만 둘레길과 능선길에서 만나는 제주 북쪽의 다양한 풍경이 아름다워 눈이 호강하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곳이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