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용호 전북도립국악원 교육학예실장, 한국학 박사(Ph.D)
한국의 전통악기 중에 ‘어(敔)’라는 악기가 있다. 종묘제례악과 문묘제례악에 쓰이는 악기로 그 모양은 흰 호랑이, 즉 백호(白虎)와 닮은 모습이다. 조선 역대 왕의 제사음악으로 사용되는 종묘제례악이나 공자(孔子)의 제사를 지낼 때 연주하는 문묘제례악의 악기이다. 이러한 전통악기 ‘어’의 상징과 뜻은 장엄하고 숙연함 그리고 악곡의 마지막 종지(終止)를 뜻한다.
전통 제례에 쓰이는 악기의 편성을 잠시 살펴보면 축, 어, 편종, 편경, 방향(方響)과 같은 타악기들이 제례의 주선율을 이루며 포진해 있으며 더불어 당피리·대금·해금·아쟁 등 관악기들이 선율을 더하여 음악을 만든다. 이러한 전통제례에 쓰이는 악기들 중 오늘 논하고자 하는 특별한 악기는 바로 ‘어’라는 악기이다.
악기의 생김새는 백호를 닮았다. 등에는 27개의 톱날로 되어 있는데 ‘저어(齟齬)’라 쓰고 ‘차아’라 읽는다. 또한 대나무 끝을 세 조각으로 세 번 쪼개 아홉 조각으로 갈라서 만든 채를 갖고 백호 모양의 머리를 치며 연주를 하는데 이 채의 명칭은 ‘견’이다. 생김새도 이처럼 특별하다보니 그의 역할이 참으로 특이하고 절묘하다. 자고로 ‘어’는 연주도 마지막 한번, 음악의 끝을 알릴 때만 사용하는 단 한 번의 악기이다. 그렇지만 이 악기의 연주자는 전체 음악을 모두 알아야 하고 이러한 모든 음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자신의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는 악기인 것이다.
시인이자 수필가 피천득은 자신의 수필집 ‘인연’을 통해 서양악기 연주자 ‘플루트 플레이어’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내용은 연주자가 맡은 악기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논의로 “오케스트라와 같이 하모니를 목적으로 하는 조직체에서는 한 멤버가 된다는 것만도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그리고 각자의 맡은 바 기능이 전체 효과에 종합적으로 기여된다는 것은 의의 깊은 일이다”라는 글이었다.
서양음악이든 우리의 전통음악이든 모든 악기 각각의 역할은 다 중요하다. 서양의 오케스트라나 우리 전통의 제례악이나 그 합을 이루는 음악적 구성원은 다 같으며 각자의 맡은 기능과 역할은 모든 음악에서 중요한 한 부분인 것이다.
우리가 숨 쉬고 살고 있는 사회는 웅장한 연주곡과 같다. 바로 국악의 제례악과 오케스트라의 교향곡과 같은 것이다. 각 자의 사명과 역할을 충실히 잘 해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완성되며 성숙되어 질 것이다. 현재 우리는 ‘코로나19’라는 병마와 한 SNS의 ‘n번방’이라는 못쓸 악마들과 싸우고 있다. 코로나19로 생겨난 약속인 사회적 거리두기·손 씻기·마스크 쓰기 등 이러한 개인의 역할을 충실히 할 때 우리의 국가 ‘한국’은 멋지게 병마를 극복하고 쾌유될 것이요, n번방의 사회적 이슈를 모두가 함께 각인하고 근절한다면 ‘공동체’라는 어울림의 곡은 좀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나 하나 괜찮겠지. 나만 그런가? 에이, 다들 그러잖아...” 이러한 일부분의 모습들은 한국이라는 공동체의 약속과 역할을 저버리는 생각이며 잘못된 판단이다. 전통악기인 ‘어’가 곡 중간에 치거나 마지막에 연주를 하지 못한다면? 만약 오케스트라 ‘플루트’가 아무 곳이나 나와 연주를 진행한다면 어찌 될까? 그 곡은 엉망이 되어 연주곡 전체를 무너트릴 것이요, 연주자 개인도 한 번의 실수에 큰 실망과 과오로 힘들어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함께하는 사회에 대한 규율과 약속을 충실히 바라보고 지킬 때이다. 특히 병마와 패륜이 넘치는 현 세상에서 더욱이 말이다.
더불어 지금이 전통악기 ‘어’의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는 종지의 음악이 필요한 시기임을 우리 모두 다시금 각인하자. 모든 연주자들처럼 우리국민 모두 각자의 사명과 의지를 다하며 그 뜻을 함께 하자. 그리하면 우리의 전통악기 ‘어’의 기능과 역할처럼 모든 시작의 끝을 알리며, 악(惡)이 없는 아정하고 맑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