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개학이 연기되면서 수확하지 않은 브로콜리가 슬프게도 화사한 꽃을 피웠다. 뽑지 않은 무밭에선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했고 겨울을 난 배추꽃은 유채꽃보다 더 진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밭에서 자라는 마늘도 곧 수확 철인데 지난겨울 버려졌던 귤이 겹쳐진다. 양파는 또 어떨지...
제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가시리의 유채꽃밭을 모두 갈아엎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미 제주의 명소로 이름이 난 곳이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유채꽃밭을 갈아엎은 이유가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이라는 설명에 한편으로는 생각이 복잡해진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곳곳에서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오름과 숲에 온갖 꽃들이 와글와글 피어나고 있지만 집을 나서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다. 제주를 걷는 기쁨 중 하나가 철마다 새롭게 피는 낯선 꽃을 찾아내고 그 이름을 익히는 것인데, 모두들 몸을 사리고 외지인들을 경계하니 조심스럽기만 하다.
거의 반나절 넘게 검사를 하고 입원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정이 났다. 담당 의사에게 백병원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입원에 필요한 검사결과를 모두 복사해달라고 요청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어머니를 태우고 갈 사설 구급차를 부탁하고 문 앞에서 망연히 서서 차를 기다렸다. 마치 새털이 내려앉듯 내 어깨에 손길이 닿았다. 하루 종일 어머니를 담당했던 응급실 간호사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위로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웠는데 구급차는 거침없이 달렸다. 차들은 신기하리만큼 길을 잘 터주었다. 인천에서 을지로까지 30분 남짓 걸려 도착했는데, 어머니는 여전히 의식이 또렷하지 않았다. 혈당과 혈압을 하루에도 몇 번씩 재며 식사량을 조절하기도 하고, 누워있는 시간을 줄이며 몸을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도록 애썼지만 집에서 가족이 보살필 만큼 어머니 상태가 가볍지 않았다.
응급실에 도착해 다시 급하게 혈액검사를 하고 담당의사가 결과를 보고는 ‘지금 상황이라면 당장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포타슘 수치가 높다’고 말한다. 칼륨을 포타슘이라 부른다고 부연 설명을 하고는 혈액 내의 수치를 낮추는 응급치료를 한 후 입원실로 올라가서 치료하며 경과를 보자고 한다.
관장을 위한 약물을 주입하고 대기하고 있는데 응급실 문이 벌컥 열리며 피가 철철 흐르는 환자가 침대에 실려 들어왔다. 순간적으로 거의 모든 의사와 간호사가 모두 달려들었다. 환자는 무엇 때문인지 피를 흘리면서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나면서 그 환자는 조금씩 진정이 되는 듯했는데 이번엔 어머니 침대에서 문제가 생겼다. 간호사들이 정신을 차릴 겨를도 없이 몰려왔다.
4월 초 주말을 피해 가파도 배를 예약했다. 들어가는 가는 배 시간에 따라 나오는 배 시간도 정해지는데 길어야 세 시간 남짓 머물 수 있다. 가파도 올레가 4.5km 정도의 거리여서 세 시간 정도면 충분할 듯했지만 매표창구에서 나오는 시간을 한 시간 늦추어 달라고 요청해 오전 11시 배로 들어갔다가 오후 3시 20분 배로 나왔다.
가파도와 마라도 가는 배는 모슬포항이 아니라 약 1km 남쪽에 있는 운진항에서 출발한다. 4월 초의 평일이었는데도 운진항 주차장엔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가파도 청보리밭 축제는 없겠지만 청보리밭 소문을 듣고 찾아온 승객이 적지 않았다. 가파도까지는 5.5km 정도여서 이십여 분 정도 가만히 앉았다가 내렸다. 잠시도 쉬지 않고 즐겁게 떠드는 사람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가파도 선착장에 내려보니 여기에서도 자전거를 빌려주고 있다. 조만간 전기자전거와 삼륜차까지 들어올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면 걸으며 가파도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우도에서처럼 불쾌한 마음을 간직하고 가파도를 나서게 될 것이다. 둘레가 4.2km 남짓한 작은 섬이니 굳이 탈것에 의지하지 않아도 자분자분 걸으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한가하고 즐겁다. 가파도 역시 바다에서의 화산 폭발에 의해 생겨난 섬이지만 해변의 바위 색은 전혀 달랐다.
오른쪽 바닷가 길을 잠시 걸어 암반 위에 놓인 커다란 바위를 만났다. 보름바위라고 하는 이 큰 왕돌은 사람이 함부로 올라가거나 그 위에 걸터앉으면 태풍이나 강풍이 불어 큰 재난이 생긴다고 한다. 반대쪽 동쪽 해안에는 어멍, 아방 돌이라 하는 큰 바위가 둘 있는데 여기도 역시 사람이 올라가면 파도가 높아진다 하여 바위에 올라가는 것을 금기시 하고 있다. 바다에 기대어 살면서 늘 높은 파도를 피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바닷가 길에서 얕은 언덕을 오르면 드넓은 보리밭이 펼쳐진다. 풍력발전기가 더해지니 얼핏 참 목가적인 풍경이다 싶다. 바람이 잔잔한 날이어서 풍력발전기의 날개는 돌지 않고 있었다. 풍력발전이 환경 친화적인 발전 방식이기는 하지만 날개 돌아가는 모양에 비해 소리는 꽤 위협적이다. 그 소리 때문이었는지 풍력발전기 여럿이 설치된 조천의 숲엔 새들이 보이지 않았다.
평평한 보리밭이었지만 간혹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바위가 보였다. 그냥 바위이겠거니 했는데 고인돌로 추정된다는 설명문이 보였다. 고창의 고인돌 공원도 과거엔 논과 밭이었다. 사람들은 성가신 큰 돌을 피해 논과 밭은 일구었었다. 움직일 엄두도 못 낼 만큼 큰 바위를 곁에 두고 울타리 삼아 살기도 했다. 가파도 보리밭의 큰 바위는 아직 발굴이나 조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은 듯했다.
보리밭 가장자리에 밟혀 넘어진 자국이 보인다. 더 들어가지 못하도록 줄을 쳐 두었다. 어떤 곳엔 아예 일부를 베어냈다. 빨강, 노랑, 혹은 파랑색 칠을 한 의자가 놓여 있기도 하다. 청보리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 중 일부는 생각 없이 다자란 보리를 짓밟으며 들어간다. 조금 더 멋지게 보이는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뿐, 이 보리밭을 일구는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는다. 봉평의 메밀밭에도 그런 사람들은 있었고, 유채밭에도 있었다.
그래도 가파도 사람들은 담장에 그림을 그리고 가꾸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매년 15개의 상장과 장학금을 받으며 한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다는 가파초등학교 이야기를 읽으며 더 많은 아이들이 이곳에서 꿈을 키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곳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흔적 남기지 않고 다녀가기를 바란다.
기고 오근식 1958 년에 출생했다. 철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철도청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원도 인제에서 3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복직해 근무하던 중 27살에 성균관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졸업 후 두 곳의 영어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으며, 인제대학교 백병원 비서실장과 홍보실장, 건국대학교병원 홍보팀장을 지내고 2019년 2월 정년퇴직했다.
[쿠키뉴스] 편집=이미애 truealdo@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