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스파이 영화가 이렇게 귀여울 수 있다니. 영화 ‘마이 스파이’(감독 피터 시걸)는 지구를 구하는 비밀 첩보 스파이가 가장 가지 않을 길을 택했다. 거구의 스파이가 아홉 살 꼬마 여자 아이가 대립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코미디, 서로의 부족한 면을 채우며 진짜 우정으로 나아가는 장면은 의외의 감동을 자아낸다.
전선에서 활약하던 군인 출신으로 새롭게 CIA 스파이가 된 JJ(데이브 바티스타)는 첫 현장근무에서 연기력과 센스 부족으로 일을 망친다. 무기상에게 팔릴 위기에 놓인 핵무기 설계도를 확보하지 못한 것. 실패한 그에겐 변수가 많은 현장임무 대신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평범한 모녀 가정을 감시하는 덜 중요한 임무가 주어진다. 스파이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내근직 해커 바비(크리스틴 스칼)와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JJ는 눈치 빠르고 심심한 9세 소녀 소피(클로에 콜맨)에게 스파이라는 사실을 들키고 만다.
‘마이 스파이’는 모든 세대가 함께 볼 수 있는 가족용 오락영화다. 총과 칼로 악당들을 때려잡는 몇 장면을 제외하면 아기자기한 드라마와 설레는 로맨스가 주를 이룬다. 제목에 ‘스파이’가 들어간 것이 맞는지 확인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기존 장르 문법을 깨는 신선한 접근도 눈에 띈다. 누군가와 손쉽게 사랑에 빠진다거나 친해진 두 사람이 갑자기 스파이로 호흡을 맞추는 황당한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액션에 의지하지 않고 업무적인 것과 일상적인 것의 균형을 유지하는 꼼꼼한 이야기로 분량을 채운다.
인물의 전형성을 의식하지 않는 것 역시 장점이다. 덩치 큰 어른 스파이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9세 여아가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스파이의 폭력성을 억제하거나 아이의 뛰어난 재능을 강조하는 억지 균형을 지양한다. 각자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두 사람의 조화는 자연스럽고 간결하게 그려진다. 다만 가족에 대한 평면적인 시각은 아쉽다. 소피의 바람대로 JJ는 가족 내 아버지의 부재를 채우며 새로운 가족 관계를 형성해간다. 스파이에 대한 전형성을 깨는 것이 가장 큰 무기인 영화에서 아버지-어머니-딸로 구성된 가족을 지향점으로 그리는 건 이중적인 태도로 읽힐 수 있다.
평범하고 뻔한 장르영화, 혹은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영화에 지쳐있던 관객에게 ‘마이 스파이’는 반가운 영화가 될 수 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어벤저스’ 시리즈에서 드랙스 역할로 존재감을 보여줬던 WWE 출신 배우 데이브 바티스타의 새로운 면모도 눈여겨볼 만하다. 오는 29일 개봉.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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