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코로나19의 장기화 또는 제2의 코로나 사태에 대비해 보다 구체적인 ‘원격진료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면진료’의 원칙은 유지하지만 이러한 긴급상황에 대비해 환자와 의료진을 보호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이다. 실제 원격진료를 도입한 국가들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비대면진료가 환자를 돌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자 2월24일부터 ‘전화상담 및 전화처방’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감염 우려로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안전하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시행되면서 의료기관 내 혼선은 지속되고 있다. 특히 그간 원격진료 자체가 법적으로 금지됐고, 의료기관에도 관련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여서 불편한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시행 초기에는 전화처방 관련 공문이 의료기관에 전달되지 않아 진료를 거부하는 곳이 발생하기도 했다. 환자들은 “자기들(의료기관)은 공문 받은 것 없다고 직접 병원에 와야 한다고 한다”,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고 하더라. 거부만 여러 차례 당했다”고 호소했으며, 의료기관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전화상담 건수도 10만건이 넘어섰지만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2월24일부터 4월12일까지 종별 전화상담 현황을 보면, 전화 상담·처방에 참여한 기관은 모두 3072곳으로 총 처방횟수는 10만3998건으로 조사됐으며, 종별로 살펴보면 ▲상급종합병원 14곳 ▲종합병원 109곳 ▲병원급 의료기관(병원·요양병원·치과병원·한방병원 포함) 353곳 ▲의원급 의료기관(의원·치과의원·한의원 포함) 2596곳으로 나타났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진료에는 여러 스텝이 필요한데 시스템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비대면 진료를 하라고 하니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환자에게서 요청이 들어오면 간호사가 의사에게 전달하고, 의사가 가능하다고 할 때 다시 전화를 해 의사와 연결하고, 환자 상담 후 처방전은 어떻게, 어디 약국에 보낼지 정하고, 간호사와 원무과가 이를 다시 전달하고 하는 모든 작업을 수작업으로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전화처방 시스템이 잘 돌아가려면 당연히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그런 것도 없이 하라고 하니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 배경에는 원격진료를 금지하는 의료법에 있다. 의료계 또한 국민의 건강권을 훼손할 수 있다는 이유로 비대면 진료를 거부해왔으나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지자 일시적으로 동참한 것이기 때문에 충분한 대처가 어려웠다.
이에 일각에서는 감염병과 같은 위기 상황에 대비해 전화처방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대면진료’가 원칙이긴 하지만 특수한 상황을 대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원석 고려대 안산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비대면 진료가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얼굴을 보고 진찰을 해야 충분한 진료가 이루어지지만 특수한 상황이라면 비대면 진료가 필요하다”면서 “이번에 코로나에 감염됐거나 의심된 환자들을 진료한 의료진이 감염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사람 간 전파가 이루어져 대면 진료가 어렵다면 비대면 진료를 활용하는 게 도움이 된다. 실제로 경증환자를 치료한 생활치료센터에서도 비대면 진료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또 의료기관 내 감염 우려로 환자들이 내원을 안 하면서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도 있었다. 이런 분들은 받아야 할 진료를 못 받아 오는 건강상 손실이 더 크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약을 처방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일례로 중국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속 암환자 진료의 최우선순위로 ‘원격진료’를 꼽았다. 지난 22일 중국 국립암센터의 요청에 따라 실시된 ‘한‧중‧일 국립암센터 간 코로나19 감염관리’ 화상회의에서 허지에 중국 국립암센터 원장은 “원격의료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암환자를 돌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면서 “특히, 코로나19가 고령 암환자의 사망률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가용한 제도와 시스템을 다 동원했다”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은숙 국립암센터 원장도 “한국 역시 한시적으로 비대면진료를 활용했으며, 병원 내 감염을 막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최원석 교수는 “비대면 진료를 계속 이어가는 것에 있어서는 고민이 있지만 IT기반 원격진료는 전 세계적인 트렌드이다. 의료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의 경우 진료를 아예 안 받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라며 “우리는 이를 활성화한다기 보다 제한적인 상황에서, 코로나19처럼 비대면 진료가 필요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적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는 없고 정부, 의료계, 환자들의 설명과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대중 교수도 원격진료 시행을 준비해야 한다는 방향성에 동의했다.
김 교수는 “실제로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보름씩, 한 달씩 치료를 안 받다가 혈당조절이 안 되는 등 증상이 심해져서 병원에 온 사람들이 있다.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만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고 되어있기는 하지만 전화 목소리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비대면 진료도 끝날 거다. 냉정하게 말해 환자입장에서도 오진이 우려되는 비대면 진료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가는 것도 옳지 않다. 이번에는 아무런 준비가 안됐기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런 상황이 또 발생했을 때도 지금 같은 진료를 하지 않도록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대면 진료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장은 “원격의료가 도입되지 않았던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 건강권을 가지고 실험할 수 없기 때문에 대면진료라는 큰 원칙을 훼손할 수 없는 것”이라면서 “원격진료나 전화상담은 환자가 다칠 수 있다. 환자의 걸음걸이, 피부상태, 눈의 황달기 등을 종합적으로 봐야 진단이 가능하지 환자의 말만 듣고는 못한다. 혈당수치만으로도 환자상태를 평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심지어 우리나라는 의료접근성도 좋기 때문에 구태여 원격진료를 안 해도 되지만, 지금은 전시상황이니까 어떤 것도 용납되는 거다. 평상시에 이렇게 하라고 하면 인권의 문제로 넘어간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진료 후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는 불분명하다. 주사 하나만 잘못 놔도 법적 다툼을 하는데 오진 등의 사고가 나면 정부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반문하며 “의료계가 못하겠다는 게 아니다. 응급상황에 준해 이런 진료를 해야 한다면 의료계와 충분히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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