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 속 ‘뇌세포 신호’ 잡아낸다…새 나노기술 개발

혈액 속 ‘뇌세포 신호’ 잡아낸다…새 나노기술 개발

기사승인 2026-03-10 14:27:39
(사진 왼쪽부터) 이은재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 김진희 의생명연구소 박사, 신용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 노연정 · 이효주 연구원. 서울아산병원 제공

혈액검사만으로 뇌 질환의 활성도를 확인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 개발 가능성이 제시됐다. 반복적인 영상검사 없이도 혈액 속 특정 뇌세포 신호를 선별해 질병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기술이다.

이은재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와 김진희 의생명연구소 박사, 신용 연세대학교 생명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혈액 속에서 특정 뇌세포 유래 신호만을 선택적으로 분리·분석할 수 있는 나노기술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질병 활성도를 반영하는 분자 변화를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대부분의 뇌 질환은 시간이 지날수록 악화되고 손상된 신경세포는 회복이 어렵기 때문에 조기 진단과 지속적인 질병 모니터링이 중요하다. 그러나 뇌는 조직 검사가 어렵고 MRI 등 영상검사만으로는 미세한 질병 변화를 정밀하게 추적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혈액 속 세포외소포를 활용해 뇌 질환 변화를 확인하는 방법에 주목했다. 세포외소포는 세포가 분비하는 미세한 소포로 단백질과 마이크로리보핵산(miRNA) 등 다양한 생체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뇌 유래 세포외소포가 혈액뇌장벽을 통과해 말초 혈액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혈액 기반 뇌 질환 바이오마커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혈액 속 세포외소포가 다양한 세포에서 유래해 특정 뇌세포에서 나온 신호만을 선택적으로 분리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특정 단백질 구조를 모사해 표적 분자를 인식하는 ‘펩타이드 각인 나노복합체(EPIN)’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성상교세포 표면 단백질을 인식하도록 설계돼 혈액 속 수많은 세포외소포 가운데 성상교세포 유래 세포외소포만 선택적으로 분리할 수 있다. 분리 과정은 약 40분 이내에 완료된다.

연구팀은 기술의 임상 적용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시신경척수염 스펙트럼 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분석을 진행했다. 이 질환은 성상교세포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으로 급성 재발이 반복되며 신경학적 장애가 누적될 수 있어 질병 활성도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팀은 서울아산병원 바이오뱅크에 보관된 혈청 시료 147개를 활용해 두 단계 임상 검증을 진행했다. 먼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확보된 환자군 혈청 108건을 분석했으며, 급성 재발 환자 39건, 안정기 환자 49건, 건강한 대조군 20건이 포함됐다.

이어 다른 뇌신경계 질환과의 감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2024년부터 2025년 사이 확보된 환자 39건의 혈청을 추가로 분석했다. 해당 분석에는 시신경척수염 스펙트럼 장애 환자뿐 아니라 다발성경화증, 파킨슨병 환자, 건강한 대조군 등이 포함됐다.

분석 결과 성상교세포 손상을 반영하는 교세포섬유산성단백질(GFAP) 수치는 재발 환자에서 안정기 환자보다 높게 나타났다. 반면 시신경척수염 스펙트럼 장애 진단 지표로 알려진 수분통로 단백질 4 면역글로불린 G(AQP4-IgG) 수치는 재발 환자에서 감소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AQP4 수치는 환자의 나이나 신경학적 장애 정도와 무관하게 나타나 재발 상태를 반영하는 지표로 활용될 가능성을 보였다.

연구팀은 다발성경화증과 파킨슨병 등 다른 뇌신경계 질환 환자를 함께 분석한 결과 질환별로 서로 다른 분자 패턴이 나타나 질환 구별 가능성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세포외소포 내부 마이크로리보핵산에서도 재발기에 특징적으로 변화하는 분자 신호가 관찰됐다.

이은재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이번 연구는 반복적인 영상검사 없이도 혈액검사를 통해 뇌 질환 변화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며 “향후 치료 반응 예측과 개인 맞춤형 치료 전략 수립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찬종 기자
hustlelee@kukinew.com
이찬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