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구현화 기자 = 텔레그램발 n번방 사태가 재발되지 않게 하는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과 넷플릭스 및 네이버·카카오 등이 망 서비스에 대한 의무를 지게 하는 '넷플릭스법(정보통신망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이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여기에는 독점적 사업자의 무분별한 통신요금 인상을 막기 위해 실시됐던 통신요금 인가제가 폐지되고, 유보신고제를 도입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편 재난상황에서 데이터센터 정보를 보호하는 ‘데이터센터 보호법(방송통신발전 기본법)’은 법사위에서 보류 결정됐다. 네이버 등 인터넷기업들의 거센 비판의 목소리를 일부 받아들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 30년간 이어온 통신사 요금인가제 폐지 수순...시민단체 반발은 넘어야 할 산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법사위와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그동안 통신사들이 준수해온 요금 인가제는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요금 인가제는 독점적 사업자의 무분별한 통신요금 인상을 막기 위해 1991년 도입됐다.
당시에는 황금 주파수와 '011' 브랜드 파워로 무려 6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던 1위 사업자인 SK텔레콤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동안 관행상 SK텔레콤이 통신요금을 허가받으면 KT와 LG유플러스도 SK텔레콤의 인가 내용을 따라 통신요금을 정해 오며 사실상 통신요금의 민간 자율성이 크게 떨어졌다.
최근에는 SK텔레콤의 점유율이 40% 초반대로 떨어지고, 전세계 어디에서도 민간 통신기업의 사전 요금 인가제를 채택하는 나라가 없다는 비판이 불거짐에 따라 법안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 왔다. 20대 국회에서도 여야에서 모두 인가제 폐지 법안이 발의되는 등 컨센서스가 마련돼 왔다.
앞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는 전체회의에서 요금인가제를 신고제로 전환하되, 이용자 보호 등을 위해 15일간 정부심사 기간을 거치도록 의결했다.
이용자의 이익이나 공정한 경쟁을 해칠 우려가 크다고 인정되면 신고를 반려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른바 '사후인가제'의 장치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이에 대한 통신업계와 소비자단체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통신업계는 보다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는 반면, 소비자단체는 통신 요금이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통신사 관계자는 "통신3사 경쟁이 치열한데 요금을 함부로 높일 수 없다"고 오해를 불식시키려 노력했다. 또 다른 통신사 관계자는 "1위인 SK텔레콤에 대한 감독은 지속해야 하겠지만, 인가제 자체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반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 관계자는 "통신 3사가 90% 이상을 과점하는 시장에서 인가제는 통신비 인상을 저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규제"라고 주장하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시민단체들은 2019년 SK텔레콤이 5G 최저 요금제를 7만원으로 정했다가 정부의 허가가 안 나 5.5만원 요금제를 추가한 사례를 근거로 인가제의 효용성을 주장해왔다. 시민단체들은 통신사가 앞으로 자율로 요금을 정하면 통신비 인상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전망하는 한편 앞으로도 통신사에 대한 통신요금 감시를 예고했다.
◇ 'n번방 방지법'과 '넷플릭스법' 통과...네이버·카카오 등 인터넷 기업에 규제 강화
이번 법사위와 본회의에서 가장 관심이 뜨거웠던 인터넷기업 관련 법안은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이다. 이들 법안은 인터넷 사업자(부가통신사업자)에 성범죄물 삭제 등 유통 방지를 하고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할 의무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인터넷기업들의 반대가 거셌던 해당 법안은 법사위와 본회의를 가뿐히 통과했다.
앞서 인터넷기업협회와 체감규제포럼,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벤처기업협회 등 4개 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촬영물의 유통 방지를 위해 이메일이나 개인 메모장, 메신저 등을 들여다봐야 하는 ‘사적 검열’을 강제하는 것인지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인기협은 “민간 사업자에 사적 검열을 강제하는 것이라는 우려가 지속 제기되고 있다”며 “이용자 보호를 위해 어떤 보완사항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 질의했다. 이 같은 지적은 자칫 국내 기업의 검열강화로 대거 ‘메신저 이동’의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업계의 걱정을 반영한 것이다.
이에 대해 여야 국회의원들은 사업자가 모든 이용자의 게시물 및 콘텐츠 전체를 들여다봐야 하고, 민간 사업자에 대해 사적 검열을 강제한다면 명백히 위헌이며, 불법적인 사찰과 감시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안정상 더불어민주당 방송정보통신 수석전문위원은 “이미 22조의 5 조항과 관련 인터넷기업협회(인기협)과 네이버, 카카오 대표들과 전기통신사업법안 초안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불법촬영물의 인지 여부 판단을 사업자에게 전가하는 문제를 지적하여 삭제했다”며 “기존의 규정을 보완해 불법 촬영물 유통을 신고나 요청에 의해 인식한 경우 필요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수정한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이어 “규제대상 사업자 기준에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부가통신사업자’의 의미가 네이버나 카카오 등의 대형 사업자들뿐 아니라 이 같은 기술적 조치를 외면하는 수많은 중소형 사업자들까지 포함하도록 부가통신사업자로 하여 법 적용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지금까지 자정작용에 소홀할 수 있는 인터넷사업자들에게 자체적으로 심의할 수 있는 하나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일례로 해외 인터넷 업체인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은 음란물이나 성착취물, 아동 관련 콘텐츠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자체적으로 게시물 삭제를 해오고 있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이 규정이 모든 정보를 대상으로 하는 조치가 아니라 기존의 ‘불법촬영물’에 추가로 ‘불법편집물’, ‘아동청소년용 음란물’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기술적, 관리적 조치를 규정한 것으로 n번방 사태로 인한 국민적 요구를 최소한으로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해외사업자의 메신저와 SNS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역외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에 대한 법률(정보통신망법)도 통과돼 해외 사업자에 대해 불법정보 유통에 대한 법적 조치를 할 수 있게 됐다.또 불법 촬영물 등의 유통 방지 책임자를 지정하고, 투명성 보고서를 제출하는 의무도 신설했다.
이에 따라 넷플릭스나 페이스북 등 콘텐츠사업자(CP)들에게 적용하기 어려웠던 이용자 보호 의무를 법적으로, 명시적으로 지울 수 있게 됐다. 2017년 말 발생한 페이스북의 접속경로 변경으로 인한 국내 이용자들의 접속 지연과 서비스 중단 사태가 만약 다시 일어난다면 이에 책임을 부과할 법적 근거가 생긴 셈이다.
◇ 데이터센터 보호법은 보류...인터넷기업 요구 반영
이날 통신사에 인터넷데이터센터(IDC)를 운영하는 부가통신사업자도 포함하는 방송통신발전기본법 개정안은 폐기하고 다음 국회로 공을 넘기기로 했다.
이 법은 네이버 등 인터넷기업이 가장 거세게 반대해 왔던 법안이다. 기간통신사업자 등에 비해 공익성과 공공성이 낮은 데이터센터 사업자를 재난관리 대상으로 포함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는 반발이 거셌다.
시민단체 오픈넷은 인터넷데이터센터와 관련 "인터넷의 다양성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보 보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는 인터넷을 이용하는 개인과 기업이 알아서 할 수 있는 사적 영역에 남겨져야 한다"고 정부안을 비판해 왔다.
이어 "가정, 학교, 병원, 회사가 데이터센터를 모두 둘 수 있는데 이들에게 모두 재난관리계획을 세우도록 강제하고 공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다양성에 기초해 이뤄져야 할 인터넷의 발전에 역행할 수 있고 국가 감시의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법안은 데이터센터를 국가재난관리 대상으로 포함해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재난 상황에 소비자의 불편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다. 다만 국회는 인터넷기업에 대한 불필요한 규제를 심화시킨다는 인터넷기업과 시민사회의 비판을 수렴했다.
이날 정보통신3법 외에도 공인인증서를 폐지하는 내용의 전자서명법 개정안, 전파출판물에 대한 정보접근권을 보장하는 국가정보화 기본법, 양자컴퓨터와 양자응용계측 및 소자, 양자암호 통신을 진흥하는 정보통신진흥 및 융합활성화 등에 대한 특별법 등도 통과됐다.
이와 함께 공공안전을 위해 전파차단장치 운용 근거를 마련하고, 전파차단장치 도입과 폐기 시 신고제를, 제조·수입·판매 시 인가제를 도입하는 전파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한상혁 위원장은 “성착취물의 출발은 텔레그램 같은 비밀대화방이나 성착취물이 플랫폼에 공개된 곳에 2차 유통돼 그로 인한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면서 “피해자들은 인터넷 공간에서의 신속한 삭제에 대한 간절한 여망이 있다. 인터넷 사업자들도 내면적으로는 이 법안의 정당성이나 필요성을 공감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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