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이 반쪽짜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관련 조직 개편안에 변화가 예상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질본 소속 국립보건연구원을 보건복지부 산하로 이관하는 개편안의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기 때문이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오늘 질본 소속기관인 국립보건연구원과 감염병연구센터가 확대 개편되는 감염병연구소를 보건복지부 산하로 이관하는 방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는 연구원이 이관될 경우 질본 인력과 예산이 감소되고,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 취지에도 맞지 않다는 일부 전문가와 언론 등의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대통령이 숙고 끝에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3일 입법 예고한 조직 개편안의 주요 골자는 감염병 대응역량 강화를 위해 복지부 소속기관이던 질본을 중앙행정기관인 질청으로 승격하는 것이다. 승격된 질병관리청(질청)은 감염병과 관련한 예산, 인사, 조직을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하지만 감염병 관련 업무라고 하더라도 다수 부처의 협력이 필요하거나 보건의료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기능은 복지부에서 계속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감염병 관련 연구를 수행하던 국립보건연구원의 감염병연구센터를 확대 개편해 복지부 소속 국립감염병연구소를 신설하도록 했다. 연구원이 이관됨에 따라 질본의 인력과 예산은 각각 161명, 약 1500억원 가량 줄게 됐다.
감염병 전문가들은 이번 질청 승격 개편안을 두고 행정고시 출신 복지부 인사들의 자리를 만들기 위한 관료주의적 조치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재갑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전날인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질병관리청 승격. 제대로 해주셔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그는 “행안부 개편안에는 황당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질본 산하기관으로 감염병의 기초연구와 실험연구, 백신연구와 같은 기본적인 연구기능을 수행하고 있었던 보건연구원을 질본에서 쪼개서 국립감염병연구소에 붙여 확대해 보건복지부로 이관한다는 계획은 철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복지부에 감염병 전문가가 얼마나 있기에 보건연구원과 감염병연구소 운영을 한다는 말인가. 질본 국장과 과장자리에 복지부의 인사적체를 해결하기 위해 행시출신을 내려 보내던 악습을 연구원과 연구소에서 하려는 건가”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연구원과 연구소는 질청 산하에 남아있어야 감염병 대비 역량 강화에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질청이 감염병 정책과 방역기능, 감염병 연구기능 전체를 아우르는 한국의 감염병 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K-방역의 주역이 될 수 있도록 확실히 격려하고 밀어주어야 할 때이다”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감염병 전문가도 “관료적인 마인드, 생색내기 마인드는 sick and tired(지긋지긋하다)다”라고 비난했다. 이 전문가는 “사스 때도 연구원이 질본으로 확대됐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닌데 정부는 조직을 키우고 자리 만드는 데만 혈안이 돼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론 조직을 키우는 것은 감염병 대응에 도움이 되지만 문제는 전문가가 없다는 것”이라면서 “지금 질본 본부장과 연구원장이 언론브리핑을 하는 게 말이 안 된다. 이들은 현장에서, 또는 백신 만들기에 집중해야 하는 사람들인데 고시 본 사람들만 있고 (브리핑) 할 만한 사람들이 없으니 이들이 언론소통에 나서는 거다. 이 상황에서 본부장이 정은경이라 다행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조직 키우고 자리 만드는 걸 하지 말라는 게 아니다. 제대로 해야 한다. 지금 본부장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보건연구원의 역할이 감염병 대응 업무에 국한되지 않고, 보건의료 전반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개편이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윤태호 복지부 공공보건정책관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국립보건연구원은 감염병 연구만 담당하는 연구조직이 아니다. 보건의료와 관련된 전반적인 연구를 담당하기 때문에 범정부적인 협조체계가 필요하다”며 “또 보건의료의 R&D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해 기능들을 확대시키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복지부에서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됐다”고 설명했다.
임인택 복지부 보건산업정책국장도 “현재 보건연구원은 방역을 지원하는 기술지원 업무와 코로나19 치료제 및 백신 개발 관련 업무를 지원한다. 약이나 기술 개발은 기존의 질본에서 하던 기능과 구분되는 부분이다”라면서 “앞으로는 정밀의료 기반 유전체 의료기술을 개발해야 하고 재생의료사업도 진행해야 하는데 이 또한 기존 질본의 기능과 다른 업무이다. 연구원이 감염병과 관련된 기능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라고 말했다.
관련해 정은경 본부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연구원이 보건의료 연구개발의 컨트롤타워로서 조직이 더 커지고 전문화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청의 소속기관의 형태보다는 복지부의 직접 소속기관으로 발전시키고 확대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질본도 청이 되더라도 연구기능은 필요하다”고 뜻을 밝혔다.
이어 “각 감염병별로의 역학적인 특성을 분석하고 조사하는 연구기능과, 감염병 퇴치와 예방 정책 개발에 대한 연구, 의사결정을 위한 근거 마련 연구 등에 필요한 조직과 인력 확대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행안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한편, 국립보건연구원장인 권준욱 중앙방역대착본부(방대본) 부본부장은 청와대 발표 직후 열린 방대본 정례브리핑에서 관계부처 간 협의를 통해 최종적인 정부안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그는 “보건연구원과 감염병연구소의 이관 방안 여부에 대해 추가적인 검토 필요성이 제기된 것으로 알고 있다. 관계부처 간의 협의를 통해 최종적인 정부안을 만들게 될 것 같다“며 “국립보건연구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우리나라의 생명의·과학 분야의 연구개발 컨트롤 타워가 돼야 한다는 다짐을 했다. 특별히 의학 분야를 본다면 현재의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미래 의학에 대한 비전과 연구 방향을 선도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권 부본부장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논의되고 있다. 향후 논의를 통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면서도 “방역당국의 실무자들의 머릿속 그리고 눈앞에는 오로지 지금 코로나19만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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