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1295일 만의 공식석상. 강정호가 23일 오후 2시 서울 상암 스탠포드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등장하자 카메라 플래시가 연신 터졌습니다. 단상에 서서 짧게 고개를 숙인 강정호는 미리 준비한 사과문을 천천히, 그러나 더듬으면서 읽어 내려갔습니다.
“2018년부터 메이저리그 음주 치료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4년째 금주 중입니다. 앞으로도 금주를 이어가는 게 남은 생의 목표입니다. 제 잘못을 돌아보고 야구 선수 강정호, 인간 강정호로서 성실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이젠 저도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변한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용서 받기엔 모자라지만 팬분들에게 제 잘못을 속죄하고 싶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바칠 준비가 돼 있습니다. 비판을 묵묵히 감내하면서 새 사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다시 한 번 모든 국민, KBO 팬분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죄송합니다.”
강정호는 지난 2016년 12월 만취 상태로 차를 몰다 사고를 내 발각됐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과거에도 두 차례 음주운전 사고를 범한 사실이 드러났고, 삼진 아웃 제도에 따라 법원으로부터 실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 취업 비자 발급에 어려움을 겪은 강정호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시즌에야 메이저리그로 복귀했습니다. 시범경기에서 연이어 홈런을 때려내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정규시즌에는 경기 감각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경국 방출됐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강정호는 국내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지난달 프로야구위원회(KBO)에 복귀 의사를 타진했죠. 상벌위원회 결과 1년 유기 실격 및 봉사활동 300시간 징계를 받았습니다. 사실상 복귀길이 열린 것이죠. 강정호의 원 소속 구단인 키움 히어로즈의 검토가 긍정적으로 마무리된다면 KBO에서 뛰는 강정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됩니다.
상벌위 결과가 나온 뒤 에이전시를 통해서만 사과문을 발표했던 강정호는 지난 5일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자가격리를 거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적으로 팬들 앞에 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강정호가 공식석상에 선 것은 지난 2016년 이후 4년 만입니다.
여론의 손가락질을 감내하면서 일본도 아닌, 국내 프로야구로 복귀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4년 만에 팬들에게 전하는 사과 메시지의 내용도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강정호는 이날 같은 말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면서 핵심을 회피했습니다. 그가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언급한 단어는 ‘어린 아이들’, 그리고‘ 변화된 모습’ 이 두가지였습니다.
▲ 비난 여론 감수하면서까지 KBO 복귀 선택한 이유는?
“예전에는 야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미니카에서 선교사님을 만나 정말 많은 회개를 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아직 부족하지만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가족들에게 꼭 보답하고 싶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야구할 자격이 있는지, 정말 수 없이 많이 생각해봤습니다. 하지만 정말 제가 변화된 모습을 KBO팬들이나 국민들에게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선수 생활을 관둘까도 수없이 고민했습니다. 자격이 없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어린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변화된 모습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유소년 야구선수들에게 재능 기부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직접 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다릅니다. 한국에서 뛰면서 학교를 방문해 아이들과 훈련을 하고 싶습니다. 직접 전해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한이 선수 은퇴 이슈에 대해서는) 많은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노력 하나 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강정호의 향후 계획은 연봉 및 재능 기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구단에서 받아주신다면 첫 해 연봉 전액을 음주운전 피해자들에게 꼭 기부하겠습니다. 이후에는 음주운전 방지 캠페인에 참여하겠습니다. 기부도 꾸준히 하겠습니다. 음주운전 사고를 줄이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저는 야구인입니다. 은퇴하는 순간까지 비시즌, 유소년 야구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야구장 밖에서도 열심히 봉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속죄하고 노력하겠습니다. 기회를 한 번만 더 주시길 간곡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꿈을 짓밟는 행동을 한 것 같아서 재능 기부를 하러 가면서도 그 아이들이 좋아해주는 모습에 더욱 더 미안했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 느꼈습니다. 아이들에게 힘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프로에 들어와서 야구를 길게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나태해졌던 것 같습니다. 자만했습니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인성도 중요하다는 걸 어린 선수들이 한 두명이라도 알게 된다면 저는 만족할 것 같습니다. 제 경험담을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친구든, 가족이든 초심을 잃지 않게 도와주는 분들이 필요합니다. 유소년 선수들에게 결코 초심을 잃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 키움과의 구체적인 대화는 아직
“김치현 단장님과 한 번 통화했습니다. 제 심정을 이해해주셨어요. 디테일한 얘기는 안했지만 김치현 단장님께 정말 미안하다는 얘기를 드렸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한국에서 야구를 못하게 되더라도 어린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친정팀이라고 해서 절 무조건 받아줘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팬분들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받아주신다면 더 좋은 팀이 될 수 있게끔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