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6월은 현충일과 6·10 민주항쟁 기념일, 6·25전쟁 기념식, 제2연평해전 추모식이 있는 ‘호국보훈의 달’이다. 사전적으로 ‘호국보훈(護國報勳)’은 ‘나라를 지키고 나라를 위해 힘쓴 사람들의 공훈에 보답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정작 스스로를 희생한 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로 하는지를 고민하는 이들은 많지 않아 보인다.
이에 호국보훈의 달을 기념해 쿠키뉴스에서는 ‘호국보훈의 달’ 특집기사를 통해 국가유공자들의 오랜 숙원들이 무엇인지, 유공자가 바라본 보훈정책의 문제점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봤다. 나아가 제도개선을 위한 정부와 정치권의 노력을 짚어보고, ‘호국보훈’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정부는 국가유공자를 잉여인간으로 본다”
국가유공자들의 정부를 향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만 국회가 참전용사 명예수당 인상 등 5~6개 지원강화 관련 법안을 쏟아내며 국가유공자의 처우개선에 발 벗고 나선데 반해, 정부는 엇박자를 걷거나 제자리걸음도 모자라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이지만 일부 국가유공자들 사이에서는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오히려 국가 재정과 사회에 부담만 가중시키는 잉여인간 취급한다는 인식도 갖는 모습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25일 호국보훈의 달 정부포상식에서 “생활조정수당과 참전명예수당을 인상해 국가유공자와 유족의 명예로운 삶을 지원하고, 국립묘지를 확충하겠다”는 말도 그들에겐 와 닿지 않는 듯하다.
대구의 한 상이군경 유공자는 “몸 상해가며 국가를 지켰지만 돌아오는 것은 가난과 편견, 신체적·정신적 고통 뿐”이라며 “국가가 이제는 국가유공자라며 주는 몇 안 되는 혜택마저 포기하라 강요한다. 우리가 잉여인간이냐”고 성토했다. 지난 5월 1일로 국가보훈처가 업무지침을 개정해 실시한 ‘보훈급여금 선택적 포기’에 관한 문제제기다.
보훈처에 따르면 해당 지침개정은 국가유공자들에게 지급되는 ‘보훈급여금(보상금과 수당)’이 많아져 보건복지부 의료급여 등 기초생활수급과 지자체별 지원정책에서 탈락하는 사례를 발생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훈급여금 중 일부를 선택적으로 포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취지로 진행됐다.
이를 두고 국가유공자들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라거나 ‘현장감 없는 탁상공론의 전형’이라는 혹평을 내렸다. 부산의 한 국가유공자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예우와 보상을 이야기해 획기적으로 달라지나 했는데 내놓은 게 선택적 포기”라며 “예우를 포기하면 기초연금이니 의료급여 대상에 넣어주겠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한탄했다.
이어 “현충일이니 추모식이니 한다며 현충원을 찾아 절이나 하고 실현되지 않는 말로만 약속을 남발하는 것을 보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러니 유공자들의 반감이 커지는 것”이라고 꼬집으며 “쓸데는 없고 찾으러 가라며 냉대나 하는 명패뿌리기는 그만하고 유공자들이 현실적으로 무엇을 어려워하고,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살펴 현실감 있는 정책을 펴야한다”고 했다.
◆ 가장 시급한 문제는 ‘급여금 소득산정제외’… 해결은 ‘하세월’
노용환 국가유공자를 사랑하는 모임(국사모) 대표는 ‘국가유공자 예우의 선택적 포기’와 같은 논란이 있는 제도가 만들어진 배경을 기초연금이나 의료급여 등 기초생활보장체계와 국가보훈체계의 단절문제로 풀이했다. 복지제도 설계과정에서 보훈대상자 등에 대한 고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엇박자 정책이나 국가유공자들에게 상대적 피해를 초래하는 정책이 나온다는 것.
대표적인 예로 노 대표는 만65세 이상 국가유공자들의 ‘기초연금’ 수급대상 제외문제를 꼽았다. 그는 “유공자 지위의 선택적 포기라는 해괴한 정책도 결국 보훈급여금이 복지체계에서만 ‘소득’으로 계산되는 문제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훈급여는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다쳐 경제활동 등 생활에 제약을 받는 유공자들에게 국가가 보상의 차원에서 지급하는 것”이라며 “보상금을 소득으로 그것도 100% 산정하는 것은 소득세법상 소득이 아니라는 국세청의 유권해석과도 맞지 않을뿐더러, 장애인수당을 100%, 근로소득은 52만원을 공제하는 것과의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보훈처도 문제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훈처 관계자는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을 기억하고 보답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책무이며, 국가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의 가치적 기여를 반영해 보상하는 보훈보상은 일반적 사회복지와는 차별성을 가져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후 “근로소득·사업소득의 경우 소득인정액 산정시 실제소득에 비해 축소돼 인정되고 있으나 보훈급여금은 소득인정액 산정 시 전액 소득으로 인정돼 보훈대상자가 다른 노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초연금 수급에 불리한 측면이 있다. 이는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했다.
덧붙여 “기초연금 제도에 있어서도 국가유공자는 국가를 위해 희생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보다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공자들에게는 일반복지영역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며 “보훈급여금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정도에서 일정 금액을 소득산정에서 제외하는 등의 방안이 마련돼야한다”고 강조했다.
◆ 국회, 개정안들 쏟아내지만, 정작 논의는 안 돼… ‘민원해소용’?
이처럼 국가유공자가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지원금, 국민연금, 의료급여 등 사회의 복지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보훈급여금이 소득산정에서 제외될 수 있도록 관련 법안들의 개정이 요구된다.
이에 20대 국회에서만 보훈급여금 소득산정 제외를 위한 법안이 5개나 발의됐다. 보훈급여금 인상이나 대상 확대 등 국가유공자 처우개선 관련 법안은 국회의 의안정보시스템에서 ‘유공자’를 키워드로 찾았을 때 총 213건에 이르는 개정안이 확인됐다.
21대도 개원 1달이 채 안 된 25일 현재까지 보훈관련 법안이 20여건에 달한다. 이 가운데는 앞서 제기된 국가유공자의 기초연금 수령이 가능하도록 ‘소득산정 기준’을 수정하는 내용의 김정재 미래통합당 의원(포항북)이 대표발의한 ‘기초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도 포함됐다.
이와 관련 김 의원은 “국가유공자 등에게 지급되는 보상·급여는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한 예우인 만큼 유공자 보상과 기초연금 간 각 제도의 취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며 “이번 개정안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유공자 어르신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덧붙여 기초연금을 포함해 사회복지체계에서 국가유공자들이 소득산정 문제로 소외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작위적으로 끼워 맞춘 탁상공론식 정책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가유공자들을 예우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관련 사항도 살펴보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정치권 일각에서는 ‘노력의 한계’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한 야권 관계자는 “사실 지역구 의원들에게 국가유공자 등 보훈단체들의 민원이 많이 들어온다. 그 수도 많아 무시할 수 없는 경우도 많아 관련법들이 하나둘 나오는 것”이라며 “예우향상에 대한 의지도 있겠지만 민원해소용도 많다. 20대에서도 제대로 논의돼 처리된 개정안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했다.
실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유공자 관련 법안들의 처리율은 20대 국회의 전체법안 처리율인 37.8%보다 낮은 약 25.4%다. 213건이 발의돼 대안이 반영돼 폐기된 건과 철회된 1건을 포함해 총 54건이 처리됐다. 국가유공자로만 한정해 찾아본 81건 중에서 처리된 건은 17건으로 처리율은 반올림해 21%에 그쳤다. 소득산정 제와 관련 법안 5건도 모두 임기만료 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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