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디지털 성범죄의 연원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제작팀 게이즈 닥스(Gaze Docs). 팀원들은 유사한 디지털 성범죄가 계속해서 재발하는 원인에서 여성혐오를 발견했다. 여성을 상품화·대상화하는 혐오 문화가 여성 대상 범죄를 부추겼다. 비디오테이프에서 텔레그램까지 변화하는 플랫폼과 결합하면서 여성혐오는 변종 성범죄를 낳았다.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포스트 n번방의 등장도 불가피했다.
여성혐오를 몰아낼 방법으로 팀원들은 교육에 주목했다. 성교육학교 라라스쿨의 운영진을 만나면서다. 라라스쿨은 생애주기별 필요한 성지식을 전달하는 소규모 그룹강의를 기획·진행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성인지감수성을 제고하고, 젠더폭력을 예방한다는 목표 하에 약 3년간 총 1511시간에 걸쳐 4만1485명을 교육했다.라라스쿨은 ‘성교육이 세상을 바꾼다’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사회에 뿌리내린 여성혐오와 왜곡된 성인식을 교육을 통해 몰아낸다는 포부다. 이수지·노하연 라라스쿨 대표는 게이즈닥스와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행동이 폭력과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사람들이 의도치 않게 상대방의 성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신체접촉이 타인에게는 불쾌감과 공포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수를 지적받고, 타인의 입장에 공감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상황은 충분히 개선될 수 있다. 이 대표는 라라스쿨의 성교육이 이 같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례로 노 대표는 스티커 떼기 놀이를 소개했다. 초등학생 대상 교육의 일환인 놀이는 팔, 다리, 얼굴 등 각자의 몸 곳곳에 스티커를 붙여두고, 이를 서로 떼어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놀이 시작 전 교육에서 아이들은 타인과 접촉하기 전 꼭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놀이가 시작되면 동의를 구하지 않고 친구의 몸에 붙어있는 스티커를 떼어내는 아이들이 나온다. 친구의 실수를 보고 아이들은 “그건 잘못된 행동이야”라며 “나 이거 떼어도 돼? 하고 물어본 다음에 떼어내야지”라고 친구에게 설명해준다. 짧은 교육이 아이들의 행동에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의무교육과정에서 성교육을 이수한다. 학교에서 이뤄진 성교육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표는 교육 시기와 방향성을 지적했다. 유네스코에서 제시하는 국제 성교육 표준안에 따르면 성교육을 시작해야하는 연령은 5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초등학교에서 본격적인 성교육이 제공된다. 국제 표준보다 2~3년가량 늦은 시기에 성교육이 시작되는 것이다. 게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평생 성교육을 접할 기회가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
교육의 내용도 편협했다. 유아에게는 주로 유괴 예방교육이 이뤄진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로는 성폭력·성희롱 예방교육을 접한다. 유아기와 청소년기에 걸쳐 사람들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성범죄를 피하는 방법을 반복적으로 배우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성범죄의 가해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 가르쳐주는 성교육은 없었다. 성범죄 피해자에게 ‘네가 더 조심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2차 가해가 빈번히 발생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노 대표는 “성인지감수성과 동의·비동의 개념을 배울 수 있는 자리는 드물다”고 토로했다.
이 대표와 노 대표는 그동안 정부가 성교육 개선에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교육당국이 주도한다면 충분히 변화를 일으킬 수 있었지만, 시대착오적 성교육이 지속되도록 방치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거리에 붙어있는 마스크 착용 지침 안내문, TV와 인터넷에서 접하는 개인위생 수칙 등을 보고 이제는 누구나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을 씻는다”며 “불과 수개월만에 위생관념과 감염병에 대한 경각심이 180도 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성교육을 개선하고 왜곡된 성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쿠키뉴스는 게이즈 닥스와 함께 모금을 시작합니다. 텀블벅 <한국 디지털 성범죄와 게임체인저 : Gaze Docs>으로 모인 소중한 후원금은 다큐멘터리 ‘Molka’(가제)의 촬영·편집·번역 작업에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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