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오준엽 기자 = 자본주의를 지배하는 기본관념은 자본의 개인소유다. 자본주의에 대한 냉철한 비판을 담은 ‘자본론’의 저자 칼 마르크스에 따르면 이는 태생적 불평등을 촉발하는 개념이자 경쟁을 유발해 발전을 꾀해온 현대사회의 구동원리기도 하다. 그리고 그는 극단적 자본주의가 사회를 지배할 때 사회주의적 갈망과 변화가 촉발될 것이라고 봤다.
이러한 움직임이 최근 대한민국, 그 중에서도 사회의 원칙과 기본을 만들어가는 정치권에서 감지되고 있다. 사회주의적 공유개념이 접목된 정책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 당명으로까지 등장한 ‘기본소득’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주창한 ‘기본주택’,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접목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발전시킨 ‘이익공유제’가 그것이다. 근간에는 정의당에서 시작해 민주당에서 화답하며 논쟁의 불씨가 당겨진 ‘손실보상법’까지 나왔다.
이들의 바탕에는 개인 소유물인 자본의 공평한, 적어도 생명을 유지할 수준의, ‘분배’에 대한 요구가 있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목숨을 영위해 기초적인 경제활동이나마 나설 수 있도록 받쳐주는 소득, 도저히 일상적 경제활동으로 혹은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 높아진 주택가격을 홀로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 꿈과 희망, 미래를 포기하지 않고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쉼터, 극단적 양극화로 인한 불평등을 일부나마 해소할 수 있는 도움에 대한 바람이다.
조금 다른 차원으로 느껴질 수 있는 ‘손실보상법’ 또한 공동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요한 만큼 이를 공동체가 함께 분담하자는 의미에서 ‘분배’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핵심은 사회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서는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자본에 의한 종속이 삶과 죽음을 나누고, 행복과 불행을 가르도록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판단에서 ‘진보진영’이 사회에 화두들을 던지고 있다고 이해된다.
문제는 사회가 이들 ‘공유’와 ‘분배’의 개념과 취지, ‘자본’의 달콤함을 뒤로하고 발생하는 양극화의 폐해를 받아들일 만큼 성숙한가 또는 극단적인 자본주의화가 진행됐는가에 대한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기반을 결국 스스로 내던진 소련(현 러시아)이나 사회주의를 바탕으로 자본주의를 수혈하는 실험을 감행하고 있는 중국과는 또 다른 형태의 실험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만 그 가능성을 얼마 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보여줬다. 지난해 경기도는 기본소득을 주제로 3차례에 걸쳐 ‘2020 도정정책 공론화조사’를 시행했다. 그 최종결과는 참여도민 79%의 ‘찬성’이었다. 반대는 19%에 불과했다. 이는 1차 조사에서 찬성이 50%, 반대가 42%였던 주민인식을 토론과 설득과정을 거쳐 이뤄낸 결과라 의미가 크다.
같은 맥락에서 경기도는 이 지사가 내걸고 있는 ‘기본주택’을 주제로 오는 26일 국회에서 정책토론회를 개최한다. 국민들의 이해를 높여 지지층을 넓히고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익공유제에 대한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강행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더불어 잘 사는 사회’, ‘모두가 행복한 미래’를 바란다는 국민여론을 믿는 눈치다.
하지만 간과해서는 안 될 점들이 있어 보인다. 막대한 힘을 쥐고 있는 자본가들의 주머니를 과연 어떻게 열 수 있을 것인가. 나아가 공평한 분배, 최소한의 수준을 과연 누가, 얼마나, 어떻게 정할 수 있을 것인가도 어려운 문제다. 당장 당신의 주머니에서 얼마를 당신보다 어려운 이에게 줄 수 있는가를 묻는다면 답은 제각각일 것이다.
공론화에 의한 합의가 이뤄지는 과정도 힘들지만, 합의가 이뤄진다한들, 반대하는 이들의 동참은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 것인가에 이르러서는 풀 수 없는 난제를 만난 느낌일 것이다. 독재가 아닌 자유주의 사회에서 과연 이들을 강제할 수 있을 것인지, 분배를 세금에 의해 이뤄낼 경우 조세저항이나 조세정책의 근본적인 불평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장애요인이다.
이처럼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갈 단초가 최근 정치권에 던져진, 나아가 일부나마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손실보상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기본소득 등 여타 제안들과 달리 보다 민생에 가까우면서도 자본주의와 크게 분리되지 않은, 오히려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접근으로 ‘분배’를 고민할 수 있는 주제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그러했듯 집단주의사회가 좀 더 친숙히 받아들일 수 있는 ‘공동의 선’이라는 관념을 내포한다는 점도 긍정적 요인이다. 이를 의식해 정치권도 필요성에 한 목소리를 내며 공론의 장으로 주제를 올린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표’도 의식했을 것이다. 의도가 어떻든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 사회주의적 개념의 접목이 가능할지를 가늠할 새로운 실험이 시작됐다. 과연 우리 정치권의 실험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지, 그 과정에서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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