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승한 날 프랑스 국민은 하나가 됐다. 피부색도, 종교도, 사는 곳도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프랑스 국기를 휘두른 그날 이후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축구가 그들 삶을 바꾸진 않았다.
‘레 미제라블’은 프랑스 파리 몽페르메유에서 벌어진 경찰과 시민의 갈등을 다룬 영화다. 경찰인 스테판(다미엔 보나드)은 지방에서 몽페르메유로 전근 온 첫날부터 불신과 폭력이 가득한 낯선 세계에 놀란다. 적응할 시간도 없이 아기사자 도난사건을 쫓던 중 동료들과 함께 예상치 못한 사건을 겪는다. 경찰이 사건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진다.
파리 시민들도 잘 모르는 외곽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그들 만의 세계는 충격적이다. 스테판의 시선으로 영화는 관객들을 낯선 세계로 끌고 간다.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상식이 적용되는 그곳은 얕보이지 않기 위해 더 강해져야 하는 야만의 세계다. 힘과 힘이 부딪히며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균형이 깨지는 순간, 경찰을 포함한 지역 주민들의 민낯이 모조리 드러난다. 카메라는 고발 다큐멘터리처럼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인물들이 보여주는 진실을 끈질기게 따라간다.
극영화지만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화법으로 그린 작품이다. ‘레 미제라블’이 담아낸 현실엔 엔터테인먼트나 예술이 낄 자리가 없다. 현실을 응시하고 그 시선의 집요함으로 메시지를 담는 다큐멘터리처럼 영화는 특정 인물에 몰입하거나 선악을 구분하지 않고 냉정하게 사건을 서술한다. 감독이 실제 사는 동네에서 직접 목격한 이야기로 구성했다는 사실은 현실과 극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영화를 본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교외지역 빈곤 실태 조사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 역시 단순히 영화로만 바라보기 어렵게 한다.
누군가를 응원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운 영화다. 대화가 불가능하고 통제되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누군가의 추악한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들은 고통스럽다. 결말로 향할수록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기대할 수 있던 희망마저 하나씩 무너진다. 2005년 파리 소요사태가 두 달간 이어진 이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는 사실은 무엇이 이렇게 만들었는지, 정말 나아지게 할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게 한다. 150년 전 빅토르 위고가 쓴 소설이기도 한 ‘불쌍한 사람들’이란 의미의 제목이 점점 적절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영화에서 시민들, 아이들이 보여주는 분노와 말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감독이 짚어낸 문제의식과 보여주는 방식, 그 아래에 깔린 순수한 분노가 영화의 매력과 의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배우의 길을 걷게 된 이사 페리카의 변해가는 눈빛 연기는 영화의 백미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주는 눈빛은 오랫동안 관객의 기억에 남을 가능성이 높다.
오는 15일 개봉.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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