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는 ‘마음의 재계(心齋)’를 강조한다. 즉 이름이나 명예를 버리고 무심한 경지에 이르러야 일체의 사물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심재(마음 굶김)’란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심재를 하면, 일상의 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옛날의 '작은 나(self, 小我)'가 사라지고, 새로운 ‘큰 나(Self, 大我)'가 탄생한다. 그런 근본적인 변화가 생겼을 때 명예나 실리 추구에 초연하게 되고, 그 때 비로소 새장 같은 조정이나 정치판, 사회 어느 곳에 있더라도 위험 없이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걷지 않고 자취를 안 남기기는 쉽지만, 걸으면서 자취를 안 남기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어지는 문장은 "사람을 위해 일할 때는 속이기 쉬우나, 하늘을 위해 일할 때는 속이기 어려운 일"이다. 이는 <장자> ’양생주‘ 제14장에 나오는 말이다. 원문은 이렇다. ’絶迹易(절적이) 无行地難(무행지난) 爲人使易以僞(위인사이이위) 爲天使難以僞(위천사난이위).‘
하늘이 시민이다. 민심을 따라야 한다. 민심이 하늘이다. 노자는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넓어서, 성기 기는 하나 새지 않는다)"라고 했다. 하늘의 그물은 구멍이 촘촘하지 못해 엉성하지만 오히려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민심의 그물에 빠져나갈 정치인은 없다. 마음을 굶기고, 민심을 읽어야 한다. 민심만 보고, 자신을 비워야 텅빈 방에 뿜어내는 흰 빛을 볼 수 있다. 민심만 보고, 대오를 정비하여 개혁의 고삐를 다시 쥐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드러난 적폐들을 조금이라도 덜어내야 한다.
이는 꼭 정치에 적용되는 것만 아니다. 우리 개인의 삶에도 적용된다.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심재라 한다. 그런 일이 쉽지는 않다. 세상과 완전히 인연을 끊고 은둔하면 몰라도, 사회에 참여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살기란 몹시 어렵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심재를 하며 마음을 완전히 텅 빈 방과 같은 상태가 되면 그 '텅 빈 방이 뿜어내는 흰 빛', 곧 순백의 예지가 생기는 것을 체험하리라는 것이다.
눈 앞의 암울한 현실에 움츠러들지 말자. 고난은 우리를 파괴할 수 없다. 고난 그 자체는 풍뎅이 한 마리 죽일 힘조차 갖고 있지 않다. 고난이 위협을 발휘하는 것은 우리가 거기에 무릎을 꿇었을 때뿐이다. 우리 삶은 기쁨과 슬픔의 연속이다. 삶의 여정에는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다. 실패와 성공은 번갈아 찾아오기 마련이다. 인생은 파도와 같다. 한 파도가 끝나면 이내 다른 파도가 밀려온다. 그러니 썰물에 한탄하지 말고 곧 돌아올 밀물에 자신의 배를 띄울 채비를 하자. 그 진리를 믿고 용기 있게 나아가자. 그것이 인생이다. 셀라비(c'est la vie)!